Art&Culture

'올해의 작가상 2020'을 끝낸 정희승이 요즘 몰두하는 것

정희승은 목동 작업실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BYBAZAAR2021.10.15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는 일

〈Untitled #01~#06 from the series Rose is a rose is a rose〉, 2016, Archival pigment print, 78x108cm.〈Untitled #07~#12 from the series Rose is a rose is a rose〉, 2016, Archival pigment print, 78x108cm.
 
〈Untitled〉, 2009, Archival Pigment Print, 119x148cm.

〈Untitled〉, 2009, Archival Pigment Print, 119x148cm.

얼마 전 협업한 〈바자〉 25주년 프로젝트부터 이야기해보자. 어떤 의도로 작업했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Düre)의 〈멜랑콜리아 I〉를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해보고 싶었다.
말한 대로 작가 노트에서 뒤러를 언급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작업이란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곡예와 같고 한 손에는 주사위를 숨기며 은밀하게 예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띠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자신의 멜랑콜리를 숨기려 안감힘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행운이라고 하기에 당신의 작업은 지독한 ‘보는 노동’을 수반하는데. 
화가로서의 프랜시스 베이컨을 좋아한다. 베이컨은 본인 작업을 항상 ‘사고(accident)’라고 표현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작업에는 우연의 요소가 훨씬 더 많이 개입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언젠가 찾아올 그 우연을 기다린다고. 나는 작가마다 그런 기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자주 하는 얘긴데, 뚜렷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작업하면 결코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나 멘탈의 캐파시티를 벗어나지 못한다. 작업은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일종의 실천이다. 그걸 베이컨은 ‘사고’, ‘우연’이라고 표현한 것이고. 물론 그 ‘우연’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다.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고’다. 예를 들어 안경을 찍는다고 치자. 처음엔 안경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보는 노동’을 통해서 그 사물의 용도나 의미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오더라. 그런 과정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인물에서 정물로 시선을 돌린 계기는 무엇인가? 
〈Still Life〉라는 시리즈부터 였는데, 계획을 세워서 시작했다기보다 충동적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픈 욕구에서 비롯됐다. 어린아이들이 낱말 카드로 글자를 배우지 않나. 그런 것처럼 내가 어떻게 사물을 보고 있는지,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보통 사진작가들은 본인이 찍는 피사체가 가진 어떤 의미를 매개로 소통하지 않나. 내 경우엔 작업이 전개되면서 내가 무엇을 찍을 것인가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훨씬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대본을 읽어가며 극중 인물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연극배우의 모습을 찍은 초창기 프로젝트 〈Reading〉 역시 ‘무엇을 찍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2011년에 두산갤러리에서 〈Reading〉 시리즈와 정물 사진 몇 점을 같이 전시했다. 출발선이 완전히 다른 작업이었고, 사물과 인물을 병치시킨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실험이고 모험이었다. 그런데 전시 리뷰를 하면서 그 두 가지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사진 속 배우들의 얼굴이 미묘하다. 사진가가 배우들의 격한 감정에 동요하지도 외면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셔터를 눌렀다는 게 느껴졌달까. 
배우들의 3분 남짓한 모놀로그를 촬영하면 그 안에 무수한 감정의 기복이 남는다. 그런데 수많은 사진을 찍고 거기서 선택되는 한 장은 결국 나 자신을 투영하는 얼굴이더라. 나는 그게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고 느꼈다. 사진가는 카메라 뒤에서 매우 중립적으로 셔터를 누르지만, 결국에 선택되는 건 내가 감정적으로 투영하는 이미지라는 사실이 역설적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 안에 어떤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사진을 보면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연결된 느낌을 받는 게 아닐까.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Rose is a rose is a rose)〉 시리즈는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시작한 작업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전까지는 작업에 사적인 이야기를 담는 것을 극구 거부했다. 사진에 주석을 달고 싶지 않았달까. 이미지를 최대한 미스터리하게 남겨두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2014년도에 지금 이 작업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했다. 환경이 바뀌니 작업 스타일도 바뀌더라. 사진가들은 항상 시간의 때가 묻은 어떤 것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오래된 동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완전히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텅 비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작업을 하려니까 정말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은 그때 시작한 작업이다. 나와 딸의 관계,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 사춘기인 딸이 겪고 있을 심경의 변화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작업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게 됐다. 나로서는 큰 변화였다.
그런 의미에서 국군광주병원을 소재로한 2018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은 또 다른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이 작업이 작가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들었다. 
한 도시의 트라우마틱한 히스토리가 담긴 공간이지 않나. 주로 나와 가까운 곳에서 소재를 찾고 그걸 이미지화하는 사람이다 보니 역사적인 공간을 다루는 것 자체가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 공간을 바라보고, 또 사진으로 담으면서 어떤 점이 가장 고민스러웠나? 
실제로 2007년까지 병원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내가 2017년에 방문을 했으니까 한 10년 정도 방치되어 있었고. 이를테면 모든 유리창이 다 깨져 있더라. 폐허가 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오라라고 할까.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곧장 비극적인 장면을 소환했다. 시간이 멈춘 장소인데, 그곳을 촬영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너무 포토제닉했다. 사진으로 찍으면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달까. 역사적인 사건을 드라마로 소비해버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미지란 것이 워낙 손쉽게 보여지고 휘발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두 가지가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작업했다. 보통 실내 공간을 찍을 때는 와이드 앵글로 시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은 일부러 매우 길쭉하고 좁은 앵글로 촬영했고 3미터 정도의 거대한 사이즈로 프린트했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그냥 쓱 보고 지나칠 수 없게끔 동선을 가로막는 식으로 배치했다. 맞닥뜨릴 수밖에 없도록.
 
〈Room with Revolving Doors-1〉,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00x75cm.

〈Room with Revolving Doors-1〉,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00x75cm.

그런 다음 작품명을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라고 붙였다. 
이미지의 뒷면을 완전히 표백하여 하얗게 처리했다. 그것이 망각된 기억에 대한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이때가 2018년이었는데 사실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진이 빠지고 일종의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비엔날레라는 큰 행사에 참여하게 된 건 감사하지만, 광주비엔날레는 광주라는 도시의 역사를 외면할 수가 없다. 그러나 2년에 한 번씩 이런 식으로 역사가 소비된다는 측면에서는 회의감도 들었다.
사실 관객 또한 일종의 부채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이 생겼다. 나만 이런 회의감을 느끼는 건 아닐 텐데. 이 미술계 안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궁극적인 물음. 다른 작가들은 이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도 궁금해졌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올해의 작가상 2020»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다.
전시에서 선보인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과 〈알코올중독자와 천사들을 위한 시〉에 스물네 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작가에 대해 일반이 가지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지 않나. 작가가 작가를 인터뷰하고 작가를 찍는다는 접근이 신선했다. 
나에게는 다 동료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부터 먹고사는 문제, 슬럼프가 올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을 하는지까지. 작업을 빼고도 작가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 않나. 난지 스튜디오에 있을 때 진기종 작가와 작업실을 같이 썼다. 그런데 진기종 작가가 맨날 고기만 잡으러 다니더라고. 마치 낚시가 본업이고 작업은 취미로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컨템퍼러리 아트라는 게 거의 대부분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도시에서 작품을 만들고 도시에서 전시를 하고. 그런데 진기종 작가는 그것과 완전히 분리된 삶을 ‘동시에’ 산다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낚시터에 동행해서 그가 낚시하는 모습이나 그가 만든 미끼 사진도 찍고. 이런 식으로 동료들과 대화하고, 그 속에서 소재를 찾아서 작업하면서 꽤 회복됐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떤가? «올해의 작가상 2020»이라는 큰 전시의 여운도 거의 사그라진 시점인데.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웃음)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올해의 작가상’ 프로젝트로 이어진 특이한 케이스지만 사실 전시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다. 작가들은 항상 전시를 앞두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아이디어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그런데 또 작업이 전개되면 거기에 빠져들어서 기운을 얻고. 가라앉았다가 상승했다가 이 사이클의 반복인 것 같다.
이런 시기엔 박연주 디자이너와 운영하는 독립출판사 헤적프레스 활동이 새로운 에너지원이겠다. 
헤적프레스 덕분에 나의 작업과 균형을 잘 맞춰올 수 있었다. 특히 작가들과 함께하는 출판 프로젝트 ‘Float’ 시리즈를 통해서 다른 작가의 작업을 면밀하게 관찰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Room with Revolving Doors-2〉,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00x75cm.

〈Room with Revolving Doors-2〉,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00x75cm.

지금 말한 ‘Float’ 시리즈는 전지를 네 번 접어서 나오는 A4 열여섯 장으로 한 권을 만드는 중철제본 인쇄물이다. 펼쳐본다는 것(展市)에 어떤 의미를 두나? 
전시란 결국 작업물을 펼쳐서 보여주는 것이다. 출판을 통해 이 행위를 공간적으로 다르게 해석해보는 차원이 있다. 그러다 보면 전시와 또 다른 형태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A4 사이즈, 16페이지라는 모듈을 선택한 건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이 한 장을 접어서 책으로 만드는 게 가장 콤팩트한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인쇄물은 보안서점이나 더북소사이어티 등 몇 군데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데 딱 3백 부만 발행하고 추가로 출판하지 않는다.
사운드 아티스트 후니다 킴의 출판물 〈Float 3 Space Composition〉은 작가가 퍼포먼스를 위해 만든 디바이스의 매뉴얼북으로 구성했다. 그때그때 초대된 작가에 맞는 기획과 출판 기법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작품의 개념이나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책이라는 형식 안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책이라는 형식 안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을 계속해나가고 싶다. 그렇게 한 권씩 한 권씩 쌓아나가고 싶다.
학부 시절 회화를 전공한 것이 당신의 사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역사적으로 사진과 회화는 경쟁 관계에 있었고 과거에는 ‘사진이 회화적이다’라고 하면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 애매하던 시절도 있었지만(웃음)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회화나 화가가 내 사진의 정서를 이루고 있다고 믿는다. 회화를 경험한 건 나에게 행운이었다. 요즘 헤적프레스에서 백현진 작가의 모노그래피를 만들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그의 작업실에 놀러 갈 일이 많다. 그가 붓질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더 나이가 들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요즘 당신의 머릿속을 부유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주사위가 던져지는 이미지. 저쪽 벽에도 주사위 사진을 붙여두고 자주 보고 있다. 나에게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관련된 것들. 별자리 점, 야바위, 갬블링…. 아마도 다음 시리즈의 소재가 될 것 같다.
2017년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의 타이틀 ‘Stanza’가 당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사진을 시에 비유하니까. 
스탄차는 ‘시가 거주하는 방’이란 뜻이다. 나에게 이미지는 하나의 어휘이고 나는 그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이미 세상에 있는 단어를 선택하고 조합하고 배열하여 한 편의 시가 되듯이 말이다. 〈회전문이 있는 방(Room with Revolving Doors)〉이라는 작업이 있다. 사방이 네모난 박스인데, 네 코너가 회전문으로 이루어져서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에 따라서 그 모양이 끊임없이 변한다. 전시든 책이든 맥락 안에서 어떤 이미지가 그렇게 작동하게끔 만드는 게 나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새롭게 의미가 갱신되는 것. 나에게 사진이란 그런 것이다.  

Keyword

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맹민화(인물)/ⓒ 정희승
  • 웹디자인/ 민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