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와인애호가
최근 몇 가지 와인을 시음했다. 모두 테이블 와인이라 여겨 와인셀러나 냉장고에 보관하다 꺼내 코르크를 딴 뒤 바로 시음했다. 그중 한 병이 아르헨티나의 카사레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카사레나 시너지 배럴 리저브 블렌드(Casarena Sinergy Barrel Reserve Blend)’였다. 2018년 빈티지로 아르헨티나 와인답게 말벡 품종이 70%로 나머지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20%, 카베르네 프랑이 7%, 프티 베르도가 3%를 차지했다. 말벡 품종으로 만든 레드와인이 70% 사용되고 나머지 품종이 각각의 함량으로 섞여 있다는 뜻이다.

2018년 빈티지이고, 숙성잠재력이 있는 어느 정도 있는 와인이기에 2~3년 뒤에 마시면 달라지겠지만 지금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때 스쳐 지나가는 생각. ‘아, 실패네.’ 입맛을 다시며 다른 업무 때문에 정리를 위해 코르크로 막은 뒤 와인셀러 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와인셀러를 보다가 카사레나 시너지 배럴 리저브 블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버릴까 하다 별생각 없이 테이스팅 잔에 조금 따라 향을 맡았다. 미네랄 향이 거의 사라지고 검은 과실류의 향과 오크향이 주로 났다. 미디움 바디에 가까워져 있었고, 아주 강하게 도드라지던 탄닌도 사라졌다. 적당한 산도와 아직 거칠지만 전보다 탄닌이 부드러워졌다. 그런대로 먹을 만한 와인이었다. ‘음, 나쁘지 않은데?’ 시음을 위해 와인을 연 직후가 아직 공기와 제대로 접촉이 안 됐기 때문에 숨을 쉬지 못했다면 이틀 간 공기에 산화되면서 와인이 제대로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더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이제야 제 가격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날 다시 동일한 와인을 시음했다. 검은 과일류의 향이 아주 폭발적으로 느껴졌다. 옅은 오크향이 나고, 미디움 바디에 적당한 산도와 부드러운 탄닌, 그리고 이전에 못느꼈던 당도가 살짝 느껴지며 여운이 길게 이어졌다. 이 정도면 가성비가 나쁘지 않은 꽤 괜찮은 와인이었다.
이렇게 한 병의 와인이라고 하더라도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맛과 향에 큰 차이가 난다. 동일한 빈티지의 와인도 마찬가지다.

에어레이터
브리딩은 대체로 어린 와인이거나 혹은 탄닌이 많고, 스파이시한 향이 강한 풀바디의 와인에 필요하다. 반대로 오래된 와인이나 가벼운 와인의 경우 브리딩을 하게 되면 오히려 와인의 풍미가 더 떨어지게 된다. 와인을 미리 열어둘 시간이 없다면 에어레이터를 활용하면 된다. 와인 병에 끼우는 도구로 공기와의 접촉을 순간적으로 늘려 와인의 풍미를 살려주는 도구다. 크게 비싸지도 않아서 와인을 좋아한다면 집에 하나 정도는 두는 게 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