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하신 도멘 투르농 레이디스 레인 빈야드 쉬라즈입니다. 오픈해드릴까요?"
테이블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연인이 마주 앉아 있다. 둘 모두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와인을 바라봤다. 네. 대답을 듣자마자 소믈리에 나이프에 달린 커터로 캡슐을 매끄럽게 벗겨냈다. 시작부터 신뢰도 상승이다.
와인을 오픈할 때가 고객이 와인에 가장 주목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뚜껑을 사용하든 어떤 방식으로 열든 와인은 내용물이 가장 중요하지만 깔끔하게 도려낸 캡슐과 상처 없이 온전하게 뽑아낸 코르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 기대감과 함께 서버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진다.
캡슐을 매끄럽게 벗기는 노하우는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우선 왼손으로 와인을 쥐고 병목 아랫부분의 홈을 이용해 날을 홈 사이에 단단하게 밀착시킨 뒤 손목을 돌려 자른다. 톱니로 된 날은 캡슐을 자른다기보다 찢으면서 자르기 때문에 부스러기나 가루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일반적인 칼날이 캡슐을 더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다. 제대로 잘랐다면 나이프를 돌리며 자르는 힘에 의해 캡슐의 윗부분이 밀려 살짝 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캡슐 사이에 잘 도려낸 선이 생긴 상태에서 나이프를 이용해 잘린 선에서부터 뚜껑 방향을 향해 대각선으로 긋는다. 캡슐을 잘 벗겨내기 위해 한 번 더 겹쳐 긋는다. 커터를 잘린 면 안에 집어넣어 모자를 벗기듯이 들어올리면 된다. 물론 알루미늄 캡슐 하나 벗기는데 항상 이런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다. 혼술용의 테이블와인이라면 상남자 스타일로 캡슐을 돌리면서 힘으로 뽑아버리면 되니까.
알루미늄 캡슐을 벗겼다면 이제 코르크를 뽑을 차례다. 코르크를 뽑을 때는 처음이 중요하다. 스크루 끝의 뾰족한 부분이 코르크의 어떤 위치에 어떤 각도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코르크가 부서지지 않고 온전하게 뽑힐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렛대 원리로 코르크를 위로 거의 다 들어 올렸을 때 속도를 늦추고 옆으로 살짝 꺾어서 마저 뽑는다. 오픈하면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힘을 줘서 강하게 뽑아버리면 병 안으로 공기가 순간적으로 유입되며 ‘뻥’하는 소리가 난다.
샴페인이나 스파클링와인의 코르크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알루미늄 호일을 벗긴 뒤 마개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철사를 풀고, 병을 45도로 기울여 코르크를 누르면서 돌린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차갑게 칠링이 된 상태라도 세게 뽑아버리면 ‘뻥’하는 큰소리와 함께 와인과 기포가 병 밖으로 흘러넘칠 수 있다. 코르크를 누르듯이 돌리면 기압 때문에 코르크가 조금씩 튀어나오고 나중에서 ‘피식’ 소리를 내며 뽑힌다.
코르크를 뽑았다면 와인을 바로 따르는 게 아니라 향수를 시향하는 것처럼 레드와인으로 빨갛게 물들어진 코르크 부분을 코에 가져가 살짝 흔들어 향을 맡는다. 이 향으로 와인의 기본적인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테이스팅을 권하는 것도 소믈리에에게 추천 받은 와인이 아니라면 와인의 맛이 어떤지 물어보는 것보다 와인이 상했는지 아닌지 상태를 체크해보라는 뜻이 강하다. 물론 상한 맛이 난다면 새 와인으로 바꿔달라고 해야 한다. 와인 상태가 괜찮다면 잔을 천천히 흔들면서 향을 맡고 풍미를 음미하면 된다. 와인 미식의 메인 디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