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서울 시장 속 맛있는 한 그릇
시장이 서고 지는 와중에도 따뜻한 음식은 늘 그곳을 지키고 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장표 한 그릇 음식이라도, 그 이야기만큼은 굽이굽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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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안에서

금남시장 고향냉면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들어서는 통에 활기가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금남시장 앞 좁은 인도를 지날 때면 자꾸 옷자락을 챙겨야 할 정도로 인파가 많다. 큰 길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리 잡은 고향냉면은 뜨뜻한 구들장 위로 몸을 뉘듯 앉아야 하는 곳이다. 오후 4시, 텔레비전 앞에 한참을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앞자리는 이미 치워져 있었고, 나직한 웃음소리가 잦아든다 싶을 때쯤 고갤 돌렸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떠나는 뒷모습만 시선에 잡혔다.

이곳이 예전에는 경로당 같기도 했고, 계모임 사랑방 같기도 했죠. 양은 주전자에 믹스 커피를 가득 타 놨어요. 한 잔씩 주려고. 손님 많을 땐 세 주전자씩 탔지.
70년이 넘어가는 이 시장 역사의 32년을 함께한 정경임 대표는 식탁 서너 개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점포에서 보리비빔밥과 만두를 팔며 장사를 시작했다. 촉촉한 나물을 쓱쓱 섞으면 참기름 향이 폴폴 올라오는 보리비빔밥을 찾는 이가 많아져 가게 이름 뒤에 ‘보리밥집’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급기야 정 대표의 남편은 배달 가방을 들고 금호동을 누볐다. 중국집을 제외하고 금남시장에서 철가방을 든 건 이 집이 처음이다. “오토바이도 없이 양손에 철가방을 들고 여섯 곳을 다녔어요. 한 그릇에 8백원씩 하던 때라 장사를 끝내면 천원짜리가 수북하고 그걸 세다가 졸려서 그냥 잠들고요. 없이 살다보니 그게 그렇게 흐뭇했어요. 냉장고 하나를 샀는데 집 산 것보다 좋더라고요. 그런 적이 다 있었네요.” 
난 여기서 계속 장사하다가 여기서 졸업할 거야, 그냥.
경동시장 안동집
안동집 가게 한 구석에 진득이 앉아 김미령 대표와 그의 남편이 손님을 맞는 인사를 관찰했다. “어서 오세요.”라는 말이 먼저 손님을 반기는 곳과 다르게 두 대표는 들어오는 손님의 얼굴을 보며 자주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아는 사람, 아는 어르신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다. 어머니가 홀로 운영하던 세월까지 합쳐 총 35년간 이어져온 안동집을 찾는 손님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었을 때 김 대표는 지체 없이 ‘단골’이라고 답했다.

경동시장 근처에 있는 청량리역 노선이 경북, 충북이 많아서 그쪽이 고향이신 분들이 옛날 시골에서 먹던 그 국시가 여기 있다며 일부러 찾아주시죠. 2대, 3대를 이어 단골이 돼요. 그분들 때문에라도 계속해야 해요.
가게 앞 좁은 골목 앞에 서서 김미령 대표가 말할 때 뒤로 다른 가게 간판들이 슬쩍 보였다. 벌교식당, 청주집, 고창식당, 광주식당, 전주백반…. 전국의 농산물 집산지로 기능했던 경동시장의 역할이 안동집과 어깨가 닿아 있는 가게들의 이름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약령시장과 청과물시장을 포함해 제기동, 용두동, 전농동 일대 1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경동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길과 체력을 자주 잃는다. 그때 들러 배를 채우는 곳이 안동집이 있는 신관 지하1층 식당가다. 신관이라고 이름 붙었지만 이 건물의 준공년도는 1982년이며, 계단실을 내려서는 순간부터 세월의 기운이 와락 달려든다. 안동집의 건진국시는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찰기가 적고 고소한 면발을 미지근하게 국물에 말아 후루룩 넘기는 국수다.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맛이 나 한 번만 먹어보면 잔치국수와는 또 다른 영역의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날 촬영 준비로 잠깐 대기 시간이 생겼을 때, 김미령 대표가 가게 한가운데에 앉아 국시 한 그릇을 빠르게 비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출근하면 매일 한 그릇 먹어요. 안 물려요. 전혀요. 액상이 아니라 진짜 멸치를 써서 육수를 내기 때문에 향이 강하게 올라오거나 하지 않죠. 연한 멸치 육수에 콩가루면이 섞이면서 더 담백한 맛이 되고요.
안동식 전통 그대로 만드는 이 국수는 계절을 타지 않는 음식이지만 겨울철에 특히 더 당기는 이유는 고명으로 들어가는 달달한 얼갈이배추 때문이다. “어머니 신조가 물건을 살 땐 돈을 제대로 주고 사라는 것이었어요. 식재료는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고요. 이 시장 안에 들어오는 배추 중에 제일 좋은 배추는 우리 집에서 가져다 씁니다. 김치용 배추, 얼갈이배추 모두요. 흐지부지한 배추로는 이 맛이 안 나오죠.” 10년 전, 빈 방앗간 자리에 에어컨을 설치해 마련한 ‘홀’ 자리도 좋지만, 날이 조금 따뜻해진다면 국수 삶은 것을 코앞에서 바라보며 배추전 굽는 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바’ 자리에서 앉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하며 한 그릇을 비우는 사이에도 콩국수 면발만 사 가는 단골 어르신, 집에 있는 그릇에 국수를 담아가는 단골 어르신들이 안동집을 쉼 없이 오갔다.영천시장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 둘째네
“안녕하세요! 저예요!” 책가방을 메고 쓰러질 듯 몸을 숙인 채 씩씩하게 시장 골목길을 걷던 초등학생이 떡볶이집 앞에서 우렁찬 인사를 건네고 지나간다.

시장 전체에 워낙 떡볶이집이 많기도 많지만, 내가 오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어머니가 개발한 떡볶이 양념장이 맛있으니까 또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첨엔 종이컵에 시식용 떡볶이를 담아서 하교하는 애들부터 공략했죠. 그렇게 애들이 하나 둘 엄마 손잡고 오기 시작했어요.
영천시장은 서대문에 있는 50년 전통의 재래시장이다. 지난 2016년까지 서울시가 ‘서울형 신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영천시장을 지원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전국에 떡과 꽈배기를 납품하는 도매처가 많았던 터라 지금도 그 두 가지 먹거리에 유독 강하다. 그중에서도 손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 떡볶이 집은 이름이 독특하다. 연신내 갈현시장을 주름잡던 ‘할머니 떡볶이’의 창업주 둘째딸이 낸 떡볶이집이라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 둘째네’다. “갈현시장이 재개발로 문을 닫게 되면서 어머니는 가게를 접고 첫째, 둘째, 넷째가 각기 다른 곳에 떡볶이집을 열었어요. 어머니가 양념장 비법을 6년 전 여기 문 열 때 처음으로 알려줬다니까요. 바꾸는 거 없이 쓰고 있어요. 결혼하고 영천동 이 동네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았으니 이 시장을 잘 알죠. 유심히 보고 다녔지. 이 시장에 떡볶이집을 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수유시장 단골집
시장 골목을 사이에 두고 가게와 가게가 가깝게 마주보고 있어 평일에도 명절처럼 북적이는 느낌이 나는 수유시장은 의정부와 성북구 일대의 구심점이 되는 대형 재래시장이다.

맛이 더 나아졌다고 그래요. 버스회사 다니는 분들, 세무서 다니는 분들 다 이리로 모이는 거야.


나 사람들 밥 잘 먹여줘서 나중에 좋은 데 가려나? 돈 받아서 못 가려나? 천국?
Credit
- 에디터/ 박의령
- 프리랜스 에디터/ 손기은
- 사진/ 허재영
- 웹디자이너/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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