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서울 시장 속 맛있는 한 그릇

시장이 서고 지는 와중에도 따뜻한 음식은 늘 그곳을 지키고 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장표 한 그릇 음식이라도, 그 이야기만큼은 굽이굽이 깊다.

BYBAZAAR2021.02.07
 

시장 안에서

 
금남시장 고향냉면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들어서는 통에 활기가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금남시장 앞 좁은 인도를 지날 때면 자꾸 옷자락을 챙겨야 할 정도로 인파가 많다. 큰 길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리 잡은 고향냉면은 뜨뜻한 구들장 위로 몸을 뉘듯 앉아야 하는 곳이다. 오후 4시, 텔레비전 앞에 한참을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앞자리는 이미 치워져 있었고, 나직한 웃음소리가 잦아든다 싶을 때쯤 고갤 돌렸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떠나는 뒷모습만 시선에 잡혔다. 
이곳이 예전에는 경로당 같기도 했고, 계모임 사랑방 같기도 했죠. 양은 주전자에 믹스 커피를 가득 타 놨어요. 한 잔씩 주려고. 손님 많을 땐 세 주전자씩 탔지.
70년이 넘어가는 이 시장 역사의 32년을 함께한 정경임 대표는 식탁 서너 개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점포에서 보리비빔밥과 만두를 팔며 장사를 시작했다. 촉촉한 나물을 쓱쓱 섞으면 참기름 향이 폴폴 올라오는 보리비빔밥을 찾는 이가 많아져 가게 이름 뒤에 ‘보리밥집’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급기야 정 대표의 남편은 배달 가방을 들고 금호동을 누볐다. 중국집을 제외하고 금남시장에서 철가방을 든 건 이 집이 처음이다. “오토바이도 없이 양손에 철가방을 들고 여섯 곳을 다녔어요. 한 그릇에 8백원씩 하던 때라 장사를 끝내면 천원짜리가 수북하고 그걸 세다가 졸려서 그냥 잠들고요. 없이 살다보니 그게 그렇게 흐뭇했어요. 냉장고 하나를 샀는데 집 산 것보다 좋더라고요. 그런 적이 다 있었네요.” 

30년을 넘게, 초창기 메뉴를 변함없이 이어온 것도 대단하지만 그 세월을 다시 곱씹을 때 ‘재밌다’는 말이 소녀 같은 웃음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것은 더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기름이 꼬숩냐, 어떻게 30년째 맛이 한결같고 맛있냐, 손님들이 와서 던지는 이런 칭찬은 들어도 들어도 좋죠. 할아버지 손잡고 오던 네 살배기 꼬마가 대학생이 되어 와서는 보리밥이 여전히 맛있다고도 하고요. 막 따봉이래, 나보고.” ‘오호호’ 쾌활하게 웃는 정 대표는 오늘 아침도 김치와 고기로 속을 채워 5백 개의 만두를 빚었고, 바로 옆 채소가게에서 공수한 신선한 채소로 보리밥 밑준비를 했다. 봄에는 보리밥, 여름에는 냉면, 겨울에는 만둣국이 잘 나가서 자신의 메뉴 구상이 참 좋았던 것 같다고 설명할 때에도 손에서 대파를 놓지 않았다.
난 여기서 계속 장사하다가 여기서 졸업할 거야, 그냥.
 
경동시장 안동집
안동집 가게 한 구석에 진득이 앉아 김미령 대표와 그의 남편이 손님을 맞는 인사를 관찰했다. “어서 오세요.”라는 말이 먼저 손님을 반기는 곳과 다르게 두 대표는 들어오는 손님의 얼굴을 보며 자주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아는 사람, 아는 어르신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다. 어머니가 홀로 운영하던 세월까지 합쳐 총 35년간 이어져온 안동집을 찾는 손님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었을 때 김 대표는 지체 없이 ‘단골’이라고 답했다.
경동시장 근처에 있는 청량리역 노선이 경북, 충북이 많아서 그쪽이 고향이신 분들이 옛날 시골에서 먹던 그 국시가 여기 있다며 일부러 찾아주시죠. 2대, 3대를 이어 단골이 돼요. 그분들 때문에라도 계속해야 해요.
가게 앞 좁은 골목 앞에 서서 김미령 대표가 말할 때 뒤로 다른 가게 간판들이 슬쩍 보였다. 벌교식당, 청주집, 고창식당, 광주식당, 전주백반…. 전국의 농산물 집산지로 기능했던 경동시장의 역할이 안동집과 어깨가 닿아 있는 가게들의 이름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약령시장과 청과물시장을 포함해 제기동, 용두동, 전농동 일대 1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경동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길과 체력을 자주 잃는다. 그때 들러 배를 채우는 곳이 안동집이 있는 신관 지하1층 식당가다. 신관이라고 이름 붙었지만 이 건물의 준공년도는 1982년이며, 계단실을 내려서는 순간부터 세월의 기운이 와락 달려든다. 안동집의 건진국시는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찰기가 적고 고소한 면발을 미지근하게 국물에 말아 후루룩 넘기는 국수다.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맛이 나 한 번만 먹어보면 잔치국수와는 또 다른 영역의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날 촬영 준비로 잠깐 대기 시간이 생겼을 때, 김미령 대표가 가게 한가운데에 앉아 국시 한 그릇을 빠르게 비우는 모습을 발견했다.
출근하면 매일 한 그릇 먹어요. 안 물려요. 전혀요. 액상이 아니라 진짜 멸치를 써서 육수를 내기 때문에 향이 강하게 올라오거나 하지 않죠. 연한 멸치 육수에 콩가루면이 섞이면서 더 담백한 맛이 되고요.
안동식 전통 그대로 만드는 이 국수는 계절을 타지 않는 음식이지만 겨울철에 특히 더 당기는 이유는 고명으로 들어가는 달달한 얼갈이배추 때문이다. “어머니 신조가 물건을 살 땐 돈을 제대로 주고 사라는 것이었어요. 식재료는 그만큼 값어치를 한다고요. 이 시장 안에 들어오는 배추 중에 제일 좋은 배추는 우리 집에서 가져다 씁니다. 김치용 배추, 얼갈이배추 모두요. 흐지부지한 배추로는 이 맛이 안 나오죠.” 10년 전, 빈 방앗간 자리에 에어컨을 설치해 마련한 ‘홀’ 자리도 좋지만, 날이 조금 따뜻해진다면 국수 삶은 것을 코앞에서 바라보며 배추전 굽는 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바’ 자리에서 앉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하며 한 그릇을 비우는 사이에도 콩국수 면발만 사 가는 단골 어르신, 집에 있는 그릇에 국수를 담아가는 단골 어르신들이 안동집을 쉼 없이 오갔다.

 
영천시장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 둘째네
“안녕하세요! 저예요!” 책가방을 메고 쓰러질 듯 몸을 숙인 채 씩씩하게 시장 골목길을 걷던 초등학생이 떡볶이집 앞에서 우렁찬 인사를 건네고 지나간다.
“쟤가 우리 집 단골이지. 쟤네 엄마도 우리 집 단골이야. 따로따로 와서 먹고 가요.” 이종희 대표가 스쳐 지나간 초등학생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보고는 손인사를 했다.
시장 전체에 워낙 떡볶이집이 많기도 많지만, 내가 오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어머니가 개발한 떡볶이 양념장이 맛있으니까 또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첨엔 종이컵에 시식용 떡볶이를 담아서 하교하는 애들부터 공략했죠. 그렇게 애들이 하나 둘 엄마 손잡고 오기 시작했어요.
영천시장은 서대문에 있는 50년 전통의 재래시장이다. 지난 2016년까지 서울시가 ‘서울형 신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영천시장을 지원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전국에 떡과 꽈배기를 납품하는 도매처가 많았던 터라 지금도 그 두 가지 먹거리에 유독 강하다. 그중에서도 손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 떡볶이 집은 이름이 독특하다. 연신내 갈현시장을 주름잡던 ‘할머니 떡볶이’의 창업주 둘째딸이 낸 떡볶이집이라 ‘갈현동 할머니 떡볶이 둘째네’다. “갈현시장이 재개발로 문을 닫게 되면서 어머니는 가게를 접고 첫째, 둘째, 넷째가 각기 다른 곳에 떡볶이집을 열었어요. 어머니가 양념장 비법을 6년 전 여기 문 열 때 처음으로 알려줬다니까요. 바꾸는 거 없이 쓰고 있어요. 결혼하고 영천동 이 동네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았으니 이 시장을 잘 알죠. 유심히 보고 다녔지. 이 시장에 떡볶이집을 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한적한 평일 시간대를 일부러 맞춰 찾아갔는데도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도저히 짬을 내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순대 1인분, 떡볶이 1인분을 열심히 먹다가 손님이 없는 틈에 다시 질문을 이었다. “이 시장의 떡볶이들을 다 먹어보고 저희 집이 입맛에 맞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평소에 떡볶이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맵지 않은 떡볶이라서 그렇죠. 안 매운 고춧가루를 쓰고 있어요. 저희가 아침 9시부터 문을 여는데, 전날 술 드신 회사원들이 와서 이 국물로 해장한다고 하더라고요. 자극이 없고 개운하니까. 몰랐어요, 저도 첨에는. 아니, 그걸 그렇게 드시지 말고 숟가락으로 밀떡을 반으로 딱 잘라서 국물이랑 같이 떠 먹어봐요. 포천에서 받아온 떡을 솥에 한번 푹 끓여서 간이 잘 배었죠? 순대도 맛있어요. 우리 집 야끼만두도 직접 매일 튀겨서 진짜 맛있어요.” 그 뒤로 인근 교육청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와 이 대표는 다시 멀어졌고, 식탁 앞은 또 조용해졌다. 이 작은 영업장에 회사원들이 단체로 회식을 오기도 한다고 했다. 떡볶이 앞에서는 어른도 아이가 되는지 자꾸만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왔다. 해가 지는데도 급할 것이 없는 마음이 되었다.
 
수유시장 단골집
시장 골목을 사이에 두고 가게와 가게가 가깝게 마주보고 있어 평일에도 명절처럼 북적이는 느낌이 나는 수유시장은 의정부와 성북구 일대의 구심점이 되는 대형 재래시장이다.

상가형 시장과 골목형 시장이 맞닿아 있어 규모도 크고, 인근 아파트와 주택가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싸고 질 좋은 물건들이 유난히 그득하다.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시장으로 선정돼 진행된 여러 프로젝트 덕에 두 집 건너 한 집 정도 젊은 사장님이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수유시장 남문과 동문의 중간 즈음에는 순대국밥집 다섯 군데가 줄지어 작은 골목을 이루고 있다.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단골집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집이다. 수유시장은 1966년에 시작됐고, 단골집은 1970년대 중반에 문을 열었다. “저희 집 아저씨가 단골집의 단골이었어요. 여기 순댓국이 입에 맞았다고 하네요? 크기가 자그마한 가게라 주인이 내놓는다고 했을 때 제가 인수했어요. 겁 없이 달려들었어요. 처음엔 손님들이 무섭고 그래서 울기도 진짜 많이 울고요.” 박종숙 대표는 2003년에 단골집을 이어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사골을 많이 넣고 우려 유난히 뽀얗고 진한 국물 덕에 이전 주인의 단골들도, 박 대표의 새로운 단골들도 모두 이 순댓국을 먹으러 시장을 계속 찾는다.
맛이 더 나아졌다고 그래요. 버스회사 다니는 분들, 세무서 다니는 분들 다 이리로 모이는 거야.
식사 시간이 돼 사람들이 들어오자 앞치마를 단단히 동여맨 박 대표가 손님인 것처럼, 주인인 것처럼 테이블 사이를 오간다. 고기가 그득한 순대국밥 한 그릇을 놓을 때마다 한마디 말도 함께 놓는다. “매운 거 좋아하면 청양고추 좀 내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을 바꿔놓기 전에는 이 가게엔 늘 손님이 가득했다. 여닫는 시간이 명확치 않아 어느 때엔 새벽 2~3시에도 가게는 불을 밝혔다. 이른 아침 내장을 손질하며 문 열 준비를 할 때에 손님이 오면 또 순댓국을 내어준다. “지금은 내가 손님들이랑 우스갯소리도 하고, 어떤 분이 막 짜증을 내면 달래기도 하고, 술 취한 사람 내 힘으로 끌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동네 주먹 쓰는 사람이 와서 장사 더 안 하고 싶냐면서 겁을 주기도 했는데 내가 굴할 이유가 없는 거야. 그래서 그런 사람들하고 친해졌어요. 저 사람은 잘 달래야겠다, 저 사람한테는 내가 큰 소리를 쳐야겠다, 그런 게 이제야 보여요.”
미아동에서만 40년을 산 박 대표에게 수유시장은 가장 익숙한 시장이다. 눈으로 잠깐만 훑어도 살 물건들이 유난히 많은 시장, 상인들의 손이 커서 푸짐하게 장바구니를 채울 수 있는 시장. “예전부터 부자 동네는 아니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다보니, 순댓국 한 그릇 먹고 돈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딱 가게에 들어올 때 그게 보이기는 해요. 그래도 뭐 어떡해, ‘그냥 가세요.’ 해야지. 나중에 돈 갖다주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손님이 들어오자 어느새 일어나 고기를 썰던 박 대표는 걷는 속도가 느릿한 할머니가 혼자 앉아 있는 테이블을 보고는 어느새 그 앞에 앉아 말동무를 해준다.
나 사람들 밥 잘 먹여줘서 나중에 좋은 데 가려나? 돈 받아서 못 가려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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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프리랜스 에디터/ 손기은
  • 사진/ 허재영
  • 웹디자이너/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