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 스커트는 Prada. 귀고리는 Engbrox. 펌프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여진을 떠올릴 때 사회적인 목소리를 많이 냈던 배우라고 기억한다면, 절 그렇게 만든 것 또한 작품이에요.” 그는 작품을 통해 삶을 배웠다. 불평등이나 억울함에 귀 기울였고,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작품을 고를 때는 제 동물적인 감각을 믿는 편이에요. 재미있으면 ‘덥석’ 잡는데, 폭력적이거나 남성 중심적인 것, 차별적인 시선이 담겼다고 느껴지면 일단 ‘낡았다’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중년의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고, 심지어는 그 기회조차 부족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계층의 여성을 극에서 폭넓게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여자가 반이고 극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이라면, 그중에 절반은 여성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만 최근에는 미약하게 변화를 느낀다. 그런 관점에서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영화 〈헤븐: 행복의 나라로〉는 그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 “본래 남성 배우의 역할을, 캐릭터는 그대로 두고 성별만 바꿨어요. ‘마초 꼰대’ 같은 옛날 경찰서장 역을 제가 맡게 된 거죠. 그것만으로도 새로웠어요. 깡패나 형사 같은 역할도 여성이 충분히 해낼 수 있죠. ‘새로움’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 조금만 비틀어봐도 발견할 수 있어요.”
그에게 또 다른 자극을 주는 건 연극이다. 〈리처드 3세〉 이후 2년 만에 2인극 〈마우스피스〉의 무대에 오른다. “연극을 한다는 건 다시 한 번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과 같아요. 몇 달간 캐릭터에 몰입해 오직 연극만 생각하거든요. 이 과정을 겪고 나면 변화를 느껴요. 제 한계를 돌아보고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들거든요. 배우로서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업이에요.” 그는 주인공 리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나이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예술을 하던 극작가가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 순간 느끼는 절망은 그가 연기를 하며 겪은 어려움과 같다. 원하는 만큼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의 허탈감, 욕심을 내면 낼수록 풀리지 않는 순간들, 그때 겪은 감정을 그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표현해낼 것이다. “연극은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예술이에요. 컷도 없고, NG도 없고, 편집도 없어요. 심지어 음악도 흐르지 않죠. 믿을 건 오로지 내 호흡뿐이에요.” 흥분되고 설레고 긴장감에 몸서리치는 나날들. “막이 오를 때 정말 무섭고 두려워요. 그런데도 왜 자꾸만 다시 무대에 오르냐고요? 이런 감정을 내 인생에서 언제 겪어보겠어요?” 그의 말을 끝으로 어둠이 찾아온다. 오직 고요와 적막만이 감돈다. 그렇게 다시 막이 오른다.
요즘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극 〈마우스피스〉를 연습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설레고 흥분되고 무서운 일이죠. 연극은 제게 마치 ‘모험 여행’ 같아요. 끊임없이 한계를 시험하고 성찰하게 만드니까요. 그래도 다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 김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