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AI가 음악하는 시대

AI가 작곡의 영역에도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창조해내는 것은 음악일까, 혹은 그저 무의미한 멜로디의 연속일까?

BYBAZAAR2020.08.08
트래비스 봇

트래비스 봇

“I learned to shoot his gun/ Truth covered in security/ But I think I'm having fun/ I'll wear this gazeless stare, and when/ This friend you face to prove/ I could eat your heart-shaped box for food./ Gotta find a new complaint/ Until it’s wrong so what it means.”
“난 그의 총을 쏘는 법을 배웠어/ 보안 속에 가려진 진실/ 하지만 난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초점 잃은 눈을 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네가 증명하기 위해 이 친구를 대면할 때/ 나는 당신의 하트 모양 박스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새로운 불평거리를 찾아야 해/ 그게 뜻하는 바가 틀릴 때까지.”
 
이 수상쩍은 내용은 유튜버 펑크 터키(Funk Turkey)가 업로드한 노래 ‘Smother’의 가사다. 아티스트는 일명 ‘너반에이아이(NirvanA.I)’. 너바나의 가사를 AI에게 학습시켜 만든 텍스트에 음악을 붙인 것이다. 말이 안 되는 듯하면서도 또 말이 되는 이 가사는 어쩐지 입에 착 감기는 데다 펑크 터키가 만든 너바나풍의 음악과도 썩 잘 어울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AC/DC를 소재로 한 ‘AI/DC’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 Peppers)를 바꾼 ‘레드 봇 칠리 페퍼스(Red Bot Chilli Peppers)’도 있다. 이 가짜 새 음악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너바나의 모든 곡을 3분 안에 듣는 것 같다.” “다음 목표: 바에서 AC/DC 음악 틀면서 은근슬쩍 AI/DC 음악 끼워 넣기.”
 
디지털 세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음악의 지평이 훌쩍 넓어지고 있다. 그 흐름의 선두에 있는 것은 단연 인공지능이다. 인간의 노동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혹자는 인공지능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AI와 함께할 미래를 ‘디스토피아’라 전망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찬반 논란이나 각자의 의견 개진이 무색하리만큼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에 빠르게 들이닥치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많은 이들이 놀라움과 약간의 비탄에 휩싸였지만 그래도 몇몇 음악가들은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에 진입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다. 창의성, 혹은 알고리즘이 포착할 수 없는 의외성은 ‘인간 예술가’만의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AI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나 잘.
 
유튜버 펑크 터키의 AI가 노랫말을 학습해 새로운 가사를 만들어낸다면, 무려 에이전시까지 있는 AI 뮤지션 ‘트래비스 봇’은 가사뿐 아니라 음악까지 만든다.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캇을 모델로 한 이 AI 뮤지션은 2주 동안 스캇의 음악을 가열차게 학습한 뒤 ‘Jack Park Canny Dope Man’ 트랙을 내놓았다. 이 음악에는 스캇의 독특한 바이브와 리듬, 그리고 그의 인장 같은 말버릇인 “It’s Lit!”도 가사로 등장한다. 스캇의 디지털 쌍둥이라도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에이전시는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스캇처럼 독창적인 느낌을 준다고 하긴 어려웠다. 스캇이라는 모델이 애초에 없었다면, 트래비스 봇의 그 음악성에 정말 깜짝 놀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펑크 터키 유튜브.

펑크 터키 유튜브.

홀리 헌든의 AI ‘스폰(Spawn)’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수많은 악기들이 디지털로 녹음되어 ‘가상 악기’로 쓰이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지만, 이제껏 사람의 목소리는 범접하기 어려운 성역처럼 여겨졌다. 목소리는 한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도 깊게 연결된 데다, 언어나 억양에 따라 소리가 달라져서 디지털로 자연스럽게 구현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든은 오랫동안 목소리에 천착해왔다. 2012년 첫 데뷔 앨범 〈Movement〉에서는 목소리를 조작하거나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전자음을 사용했다면, 2019년 앨범 〈Proto〉에서는 여러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인공지능 스폰을 탄생시켜 그를 협업자로 고용했다. 스폰의 특별한 점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목소리를 지니려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음악을 무작정 학습하지도 않았고, 인간처럼 되기를 맹목적으로 지향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업 앨범 〈Proto〉는 정말 기묘하게 반짝인다. 인간의 목소리는 기계적으로 증강되거나 편집되고, 목소리처럼 들리지만 ‘인간의 노래’는 아닌 제3자의 노래가 들려오고, 인간과 기계의 목소리들은 함께 합창한다. 여기서는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나 기계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Proto〉에서 이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은 채 한데 뒤엉켜 협동하며 음악한다.  
 
AI가 음악하는 이 시대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음악은 아주 오랫동안 서서히 인간의 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음악은 악보에 기록되면서 머릿속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고, 음반이 등장한 뒤로 공연이라는 사건에서 분리될 수 있게 됐고, 전자음악의 발달 이후 악기 없이도 컴퓨터로 수많은 소리를 만들고 합성할 수 있게 됐다. 음악을 정보화해 기록하고, 기계로부터 소리를 끌어낼 수 있게 된 순간, 어쩌면 AI 음악의 탄생이 예견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에 우리는 AI가 만든 음악만을 듣게 될까? 아직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음악을 몸으로 익히고 외우며, 음반이라는 비대면 기술이 탄생한 지 백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공연의 가치를 믿고 있으며, 가상 악기를 편리하게 이용하지만 실제 악기 연주만의 미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끝없이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매체, 그리고 새로운 ‘음악가’가 등장하겠지만 이것이 한순간에 이전 것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홀리 헌든의 〈Proto〉가 들려주듯,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만든 기계가 아니라면 기계와 인간은 서로 공생할 수 있는 협동의 장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음악신에 등장한 이 ‘뉴 플레이어’들은 앞으로 인간과 함께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인간의 음악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가 만드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그저 예민한 귀로 계속 추적하며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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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신예슬(음악평론가)
  • 사진/ Funk Turkey 유튜브,Travis Bott 유튜브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