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영속성과 공간의 광활함. 독일 작가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의 작품이 전하는 주요한 메시지다.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이 주로 삶의 한 순간이나 찰나적인 아름다움, 혹은 짧은 순간의 체험을 카메라로 담는 데 집중하는 것과는 다르다. 회퍼는 과거를 환기시키고 현재 주변 상황까지 아우르며 그만의 독창적인 사진을 제작한다.
회퍼는 지난 40년간 서점, 카페, 동물원, 오페라 극장, 공항 등 공공 장소를 담은 사진으로 명성을 얻었다. 회퍼가 공간의 의미를 작품의 주제에 담는 것은 독일 현대사진 계보의 출발점이 되었던 그의 스승 베른트 베허(Bernd Becher)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베허와는 달리 칸디다 회퍼의 사진은 건축물과 인간의 관계에 보다 집중한다. 그래서 회퍼의 작품은 공간이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동시에 사람들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회퍼는 광각 렌즈를 사용해 가능한 한 넓은 공간을 한 화면 속에 담아, 그곳의 정면이나 대각선의 구도를 그린다. 동시에 거대한 사이즈의 사진으로 관객에게 열린 공공 장소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이미지 구성에 있어서 회퍼의 초기작은 사실 현재의 작품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리버풀의 도시 풍경(Liverpool, 1968)’, 1970년대 후반까지 진행된 ‘독일 내 터키 이주민들(Turks in Germany)’과 ‘자국 내의 터키인들(Turks in Turkey)’ 등 회퍼의 초기작으로 알려진 작품을 보면 공간과 인간의 물리적,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공공의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인간의 기록이 보존되고 있는 도서관이나 박물관, 미술관과 같은 공적 장소로 시선을 넓혀나갔다. 회퍼의 작품의 대상이 된 공간은 인간의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고, 문화 활동의 산물로 존재하는 곳이며,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형성된 곳이다. 작가는 공간과 인간, 그리고 특정 피사체와 지리적·공간적 환경과의 유기적 관계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작품 속 인간의 존재는 서서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회퍼는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장소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장소가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명백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오지 않는 손님이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 없는 공간을 사진에 담기로 결정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회퍼의 작품에서 인간의 부재는 한 사회의 질서와 체계의 개념이 완전히 보존되어 완벽하고 이상적인 장소를 만들어낸다.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촬영된 곳은 체계적으로 정돈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엄격한 규칙이나 미리 정해진 특정한 묘사 방식을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고요함과 장엄함을 더했다. 사진 속 이미지는 공간에 남은 인간의 ‘시간 흔적’에 오롯이 집중하며 장소가 가진 ‘기억의 축적’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전달한다. 차가워 보이지만 그의 작품이 서정성을 갖는 이유다. 동시에 다양한 시대의 공간들은 즉각성을 뛰어넘는 기념비적이고 초월적인 가치를 보여준다. 회퍼는 이를 궁전과 극장, 오페라 하우스와 도서관 등에서 찾아내 이 건물들이 인간과 함께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전하고 있다.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