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집 앞으로 찾아와준 친구들
“대학시절, 굉장히 우울한 시기가 있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친구들이 나를 위해 정말 매일같이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와 와주었다. 집 앞으로 찾아온 친구들과 같이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눴다. 그때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더 깊은 우울에 빠졌을 거다. 정말 고마웠다.” –에디터(여, 29세)
아무 말 없이 같이 밥 먹어준 친구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던 때였다. 너무 외로웠고, 삶의 의욕이 없었다. 친구가 그런 나를 불러서 차에 태워 드라이브를 나갔다. 친구는 나를 가평의 어느 유명한 민물 매운탕 집에 데려갔고 우리는 특별한 얘기도 없이 같이 밥을 먹었다. 뜨끈한 매운탕 국물을 마셨는데, 나의 마음에서도 뜨끈한 무언가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친구는 끝까지 내 문제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저 같이 밥을 먹어주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큰 유대감을 주는지 그때 깨달았다. 얼마 전 나는 그 매운탕 집에 다시 갔다. 그때 내 우울의 근원이었던 남편과 함께!” –공무원 35세
같이 울어주던 지인
“20대 시절, 허무주의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세상이 잿빛으로 보였고 살고 싶지가 않았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피했다. 상처받게 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교회 언니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늘 속 깊은 얘기를 나누던 사이였기 때문에, 그 언니에게는 내 얘기를 하게 되더라.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는데 조용히 듣기만 하던 언니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언니가 너무 많이 울어서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니가 우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내 기분이 가벼워졌다. 마치 날 대신해 언니가 운 것처럼 내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내 슬픔을 느껴준 그 언니가 너무 고마웠다.”
아무도 없는 곳에 데려가 준 선배
“이혼을 하고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아는 선배가 캠핑을 가자고 하면서 나를 차에 태우고 멀리 가더라. 차에서 내려보니 화천. 강이 흐르는 산속에서 선배는 아무 말 없이 장작불만 피웠다. 밤하늘은 너무 아름다웠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상은 고요 했고, 나는 선배가 피워주는 장작불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많이 기분이 나아졌다.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있어준 선배가 ‘이혼 선배’라는 사실도 위안이 됐던 것 같다.” -포토그래퍼 (33세, 남)
심리분석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우울해하는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옆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만 이야기를 들어줄 때는 내 입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들어줘야 한다는 것. 예를 들면, 우울해 하지 마라, 힘내라, 햇빛을 많이 쪼여라, 운동을 해라, 같은 말들은 내 입장이지,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울해 하는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하면서 들으면 상대가 얼마나 힘든지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런 말들은 좋은 의도일지라도 우울해 하는 사람은 일종의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울해 하는 사람은 공격성이 자기 자신을 향한 경우인데, 이러한 말들은 더욱 자신을 탓하고 공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결국 나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고, 상대가 내 입장에서 듣고 ‘정말 힘들겠다’ ‘나라도 너의 상황이면 너무 힘들어 했을 거야.’ ‘지금 네가 힘든 게 너무 당연해’ 라는 식으로 공감하고 듣는다면, 상대는 내가 이상해서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힘들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나랑 같다는 ‘normalization 노멀리제이션’이 이루어지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성이 그만큼 줄어들고, 조금씩 가벼워지게 된다. 우울한 이에게는 당신의 ‘공감’이 최선의 약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