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이 처음이라면? 이것만 알고 가세요
9월 2일부터 5일까지 코엑스에서 ‘프리즈 서울’이 열린다. 벌써 다섯 해를 맞이하는 행사를 둘러싼 신규 섹션과 주목할 작가, 프리즈 위크 동안 놓치지 않아야 할 서울의 전시 다섯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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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지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아트페어가 된 프리즈, 그 시작부터 서울에 오기까지.
- 새롭게 바뀐 섹션과 주요 작품, 아트 나잇 등 올해 프리즈 서울의 핵심을 짚었다.
- 함께 볼 전시와 관람 팁, 변화하는 서울 미술 시장의 현재까지 정리했다.
얇은 비평지가 아트 페어가 되기까지
사진/ Frieze 제공
사진/ 데미언 허스트
1991년 런던에서 미술 잡지 한 권이 창간됐다. 잡지의 이름은 프리즈(Frieze). 고전 건축에서 기둥이 떠받치는 상단의 띠 모양 장식부를 가리키는 단어다. 공교롭게도 데미언 허스트가 골드스미스 대학 시절 친구들과 기획한 전시 ‘Freeze’와 한 글자 차이지만, 창간자들은 훗날 잡지 이름을 정할 당시 그 전시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회고했다. 32페이지짜리 창간 준비호였고, 표지에는 허스트의 나비 그림이 실렸다. 지면에는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허스트의 첫 잡지 인터뷰가 담겼다. 잡지의 창간 인원은 세 명. 매슈 슬로토버와 작가 톰 기들리가 그해 6월 준비호를 냈고, 어맨다 샤프가 한 달 뒤 합류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이십 대들이 친구의 사무실 한쪽에 자리를 얻어 시작한 일이었다.
잡지가 아트페어를 연 건 창간 12년 만인 2003년이다. 런던 리젠트 파크에 텐트를 세웠는데, 돈이 없어 친 임시 천막이 아니라 건축가가 설계한 구조물이었고 이후 프리즈 페어의 시그니처가 됐다. 첫 회 방문객은 2만7천7백 명, 판매액은 약 2천만 파운드. 주최 측조차 예상하지 못한 성공이었다고. 이미 1970년 출범한 아트 바젤이 세계 최대 미술 장터로 자리 잡은 시절이었으니, 후발주자가 택할 수 있는 건 차별화뿐이었다. 자연스레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품 대신에 젊고 실험적인 작업에 눈길을 두는 기조가 지금의 프리즈를 만들었다. 비평지가 예술품 장터를 열었다는 점 역시 프리즈에 유독 큐레이션 섹션이 많고, 그 섹션들에 여러 독립 큐레이터의 이름이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서울’이었을까
2021년 프리즈가 아시아 첫 개최지로 서울을 발표했을 때, 사실 유력 후보는 서울이 아니었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관문은 오랫동안 홍콩이었고, 경쟁자인 아트 바젤은 이미 2013년부터 홍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글로벌 갤러리들이 아시아 총괄 사무소를 두는 곳도 홍콩이었다. 그러나 기존 판이 흔들린 건 지난 2019년부터다.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 정국이 불안정해지고 강력한 중국화 정책이 이어지면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도시 방문 자체가 까다로워졌다. 그 틈을 타 서울이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 결정적인 조건은 세금이었다. 한국은 미술품에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매기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유동성이 미술 시장으로 흘러들며 당시 국내 미술품 재테크 열풍이 분 것도 맞물렸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는 갤러리 가운데 50여 곳이 현재 서울에 상설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올해 크게 달라진 섹션 둘
사진/ 프리즈서울 제공
올해 프리즈 서울은 9월 2일부터 5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고, 한국화랑협회가 운영하는 키아프 서울과 공동 개최된다. 참여 갤러리는 8월 발표 기준 30개국 130개 이상. 이 중 70%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큐레이션 섹션’에 있다. 근현대 거장을 다루던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이 사라진 자리에 두 개의 섹션이 새로 들어섰다.
신설된 ‘머티리얼 프랙티스(Material Practice)’는 LG유플러스와 디자인 매체 디즌(Dezeen)의 후원으로 독립 큐레이터 조혜영이 이끈다. 한국의 오랜 수작업 전통과 장인 정신, 재료에 대한 혁신적 접근에서 출발해, 재료 고유의 성질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모았다. 도자와 섬유, 유리, 금속, 목재, 한지를 다루는 작가들이 나오고, 한옥의 사랑방을 한지로 구현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공간 설치도 포함된다. ‘서울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라는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프리즈가 거듭해온 섹션이 서울에 처음 도입된 경우인데, 라인문화재단 디렉터 고원석이 큐레이션을 맡아 20세기 작가 15인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서구 중심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작가들, 다시 유심히 봐야 할 작업들을 무대에 올린다. 또한 신진 갤러리 중심의 ‘포커스(Focus)’ 섹션은 올해부터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주까지로 그 참여 범위를 넓혔다. 큐레이터 이설희의 자문 아래 설립 12년 이하의 갤러리 16곳이 저마다 한 작가만 소개하는 솔로 프레젠테이션을 꾸린다. 사변적 서사와 디지털 환경 속 유기적 생명, 대안적 우주론에 기반한작업들이 나온다고 하니, 미지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들을 보고 싶다면, 이쪽부터 먼저 돌아볼 것. 메인 섹션인 ‘갤러리즈’에는 85개 이상의 갤러리가 부스를 차린다고 한다. 올해는 신세계그룹이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처음 합류했다.
사진/ MoMa 제공
사진/ 글래드스톤 서울 제공
사진/ 아니카 이 스튜디오 제공
단연 가장 화제가 될 프로젝트는 페어가 이뤄지는 행사장 밖에 있다. 영국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 <더 파인드 서울 The Find Seoul>이다. 특별 제작한 동전 1만 6천 개를 을지로와 한남, 청담, 삼청, 코엑스 일대에 숨겨두고 시민들이 찾아내도록 하는 작업으로, 8월 31일부터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티켓도 예약도 필요 없고, 프로젝트 수익 일부는 유니세프에 기부된다. 전시장 안에는 올해도 굵직한 작품이 많다. 가고시안이 차리는 데미언 허스트의 솔로 부스는 물론, 아니카 이, 양혜규, 바이런 킴의 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김창열의 ‘물방울’ 회화, 쿠사마 야요이의 자화상 <Portrait Yayoi-Chan>(2014)도 만날 수 있다.
‘콜렉티브 야광’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시각예술가 김태리와 전인으로 구성된 듀오로, 올해 4회를 맞은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다. 조각과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오가며 젠더와 신체, 노동을 다뤄왔고, 이번에는 공간의 경계를 재구성한 신작 <파사드 존 Facade Zone>을 공개한다.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는 한국 기반 작가의 신작 커미션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15년간 조던 울프슨과 로렌 할시 같은 작가들이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를 거쳤다. 올해는 문경원·전준호의 참여형 설치작품 <모바일 아고라>도 설치되고, 프린트베이커리(PBG)는 한국 작가 15인과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더 문 자 컨스텔레이션>을 선보인다. 갤러리 부스에서는 카린크네펠부터 서도호까지 솔로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지고, 부산비엔날레와 협력한 프리즈 필름 서울의 상영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처음이어도 괜찮아! 유용한 정보 넷
사진/ 프리즈서울 제공
‘사고 팔기 위한’ 아트페어는 미술관과는 규칙이 다르다. 그러나 몇 가지만 알아두면 훨씬 편해진다.
1. 작품에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게 정상이다. 궁금하면 부스 직원에게 물어보면 되고, 물어봤다고 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격대는 수백만 원부터 수억 원까지 폭이 넓다. 구매가 목적이라면 서두르는 편이 낫다. 페어 첫날인 9월 2일은 초대장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는 프리뷰로 운영되고, 이때 상당수 작품이 팔리기 때문.
2. 사진을 찍어도 되는 부스가 대부분이지만, 촬영 전에는 물어보는 것이 안전하다. 마음에 든 작품은 갤러리 이름과 작가 이름을 꼭 함께 기록해둘 것. 만약 부스 근처에서 어색하게 서성이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일 확률이 높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보자. 운 좋게 즉석에서 작가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3. 티켓은 미리 사두는 게 좋고, 사람이 몰리는 주말보다 평일을 택할 것. 비교할 수 없이 훨씬 여유롭다. 티켓 한 장으로 같은 기간 열리는 키아프 서울까지 볼 수 있으니 체력을 안배해 동선을 짜자. 행사 한 주 전 오픈되는 온라인 프리즈 뷰잉룸을 통해 참여 갤러리와 주요 출품작을 미리 확인해, 보고 싶은 갤러리와 작가를 메모해 가야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4. 2027년 여름에는 한국어 계간지 <프리즈 코리아>를 정식 창간할 예정이다. 페어를 넘어서 한국과 아시아 미술을 다루는 에디토리얼 확장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앞서 샘플호를 올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 현장에서 배포한다고 하니 잊지 말 것.
전시가 끝난 후의 밤: 아트 나잇
페어 개막 이틀 전인 8월 31일 열리는 ‘을지로 나잇’을 시작으로 9월 1일 한남, 2일 청담, 3일 삼청까지 ‘네이버후드 나잇’이 이어진다. 이 기간에는 갤러리들이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다양한 오프닝과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동네마다 성격도, 테마도 다르다. 을지로의 실험 공간들, 한남의 국제적 갤러리들, 청담의 블루칩, 삼청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각각 체험할 수 있다. 부지런히 나흘을 다 돌면 서울 갤러리를 탐방할 수 있어, 페어 티켓이 없더라도 날이 선선해지는 저녁에 마음에 드는 동네를 걸어봐도 좋겠다. 서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느껴질 것이다.
페어 밖 주목해야 할 전시 다섯
페어 앞뒤 기간 동안 국내 전시장이 선보이는 라인업 또한 유난히 이번 프리즈 주간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든다.
1. 리움미술관 《구정아: 우스모스》
사진/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 리움미술관 제공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구정아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은 프리즈가 끝나는 9월 5일 개막해 12월 27일까지 이어진다. 30여 년의 작업을 집약한 전시인만큼 야광과 스케이트 파크, 자석, 향 같은 요소들이 모인다고. 제목의 ‘우스(OUSSS)’는 에너지이자 물질, 우주 자체를 가리키는 작가의 용어. 2025년 프랑스 루마 아를의 《우스의 나라 [강세]》, 올해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의 《우스의 나라 [그라비타]》로 이어진 연작의 세 번째 장이기도 하다. 자력과 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전시라 M2 전시실뿐 아니라 로비와 고미술 상설전시실에서도 작품을 만나게 된다.
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도호》
사진/ MMCA 서울 제공
사진/ 서도호 스튜디오 제공
반투명한 천으로 지은 집들이 서울관에 들어섰다. 집과 이동, 기억을 평생의 주제로 삼아온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이 8월 27일 개막해 2027년 2월 9일까지 이어진다. 서울박스 전시는 12월 18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별도로 열린다. 같은 기간 프리즈 페어장에서는리만머핀, STPI가 서도호의 솔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다. 미술관과 페어에서 한 작가를 이어 보는 드문 기회다.
3. 신세계갤러리 청담 《앙리 알렉산더 레비》
사진/ 신세계갤러리 제공
앙팡리쉬데프리메(ERD)의 옷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전시. 로고와 그래픽부터 회화, 의복, 매장 공간까지 직접 구축하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온 그. 이번 전시에서는 옷을 통해 접했던 레비의 세계를 브랜드가 아닌 ‘작가’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될 예정이라고. 스스로를 디자이너가 아닌 ‘컨셉추얼 아티스트’로 규정하는 작가 정신과 ERD 특유의 반항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분더샵 청담 지하 1층.
4. 아모레퍼시픽미술관 《Sol LeWitt: Open Structure》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또한 프리즈 개막 전날인 9월 1일에 시작한다. 르윗은 작가가 직접 그리지 않아도 지시문(instruction)에 따라 제3자가 실행하면 작품이 완성된다는 방식을 확립한 작가다.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물은 셈.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출발한 순회전을 솔 르윗 재단과 협력해 용산 공간에 맞게 확장했는데, 월 드로잉과 구조물, 회화, 사진, 판화, 아카이브까지 45점을 선보인다. 새롭게 실행되는 월 드로잉을 직접 볼 수 있다.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린다.
5. 퐁피두센터 한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지난 6월 4일 여의도 63빌딩에 개관해 화제를 모은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이 10월 4일에는 폐막한다. 54명의 작가, 112점이 걸렸고, 이 중 91점이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품이다. 또한 특별 섹션 ‘KOREA FOCUS: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에는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이수억, 함대정 등 한국 근현대 작가 11인의 작품 21점이 포함됐다. 한국전쟁 피란민 군상을 큐비즘의 화면 구조로 압축한 이수억의 <6·25 동란>(1954), 동양화 재료에 입체주의 구성을 결합한 박래현의 <노점> 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앞으로의 프리즈
다섯 번째 프리즈 서울을 앞둔 지금, 미술계에서는 원년부터 참여하던 해외 유력 갤러리들이 하나둘 빠지고 있다는 우려를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세이디 콜스 HQ와 노이거림슈나이더, 갈레리아콘티누아가 불참했고, 올해는 페로탕과마시모 데 카를로, 에바 프레젠후버가 빠졌다. 페로탕은 1회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참가하며 가장 주목받는 부스 중 하나였다. 이들은 지난 3월 아트 바젤 홍콩에는 부스를 냈다. 반대로 홍콩을 접고 서울을 택한 갤러리는 올해 없었다. 그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중국은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최상위권 미술 시장이고 아트 바젤 홍콩은 중국 본토의 큰손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곳이니까. 그리고 홍콩은 미술품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자유무역항이기도 하니까. 세계 미술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14%인 반면 한국은 1%에 그친다는 통계도 있다. 업계에서는 홍콩 아트 신이 회복세를 보이며 판세가 뒤집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사이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는 국내 화랑은 3년 전 18곳에서 올해 39곳으로 늘었고, 4년간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던 LG전자가 빠진 자리는 신세계그룹이 헤드라인 파트너로 채웠다. 2027년에는 코엑스에서 DDP로 자리를 옮겨, 보다 집약적인 공간 구성을 바탕으로 각 갤러리와 프레젠테이션이 더욱 돋보일 수 있도록 엄선된 구성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물론 변화가 많다고 해서 프리즈 서울이 가진 본래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프리즈가 시작한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참가 갤러리 50여 곳이 서울에 상설 공간을 운영할 만큼 판이 두터워졌고, 9월 첫 주는 미술관들이 개막일을 맞추는 시기가 됐을 정도다. 서울이 ‘아트 시티’로 발돋움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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