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길어진 계절, 사진가와 포착한 서울의 밤 풍경
여의도 서울달부터 남산의 러닝크루, 밤의 궁궐과 미술관꺼자 누비는 서울 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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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NIGHT, IN SEOUL
산만한 여름밤이 지나고 어둠이 길어지는 시기, 사진가와 서울의 밤을 들여다봤다. 백야의 수선함도, 캄캄한 적막과도 거리가 먼. 서울의 밤은 잠들지 않고, 각기 다른 형태로 움직인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 대온실의 각양각색 자생식물은 한밤에 보면 더욱 아름답고 기묘하다.

춘당지 호숫가 주위를 지켜온 버드나무.
어둑해진 고궁에서
도시에서 재촉 없는 발걸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 해가 지면 서울 4대 고궁에는 느긋하게 산보하는 법을 아는 행인들이 모인다. 궁에는 쉼표가 있다. 무성한 나무들이 무리 지은 광경이 한 폭의 병풍 같기도 하고, 나지막한 담 사이를 거닐면 구태여 수백여 년 전의 역사나 전통을 떠올리지 않아도 한낮의 자극이 진정된다.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조명이 켜진 창경궁 온실 사이로 산책 온 친구들이 웃으며 청하고, 연인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고, 어두운 조도에 플래시를 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매해 봄과 가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은 두 차례 야간 개장을 한다. 올해 경복궁 야간 관람은 9월 28일까지, ‘덕수궁 밤의 석조전’과 ‘창덕궁 달빛기행’은 10월 26일까지, ‘창경궁 물빛연화’는 11월 8일까지 개최된다.

‘88서울’ 멤버 김순규가 후암길을 뛰는 광경.
한밤중 남산을 뛰는 일
밤의 온도를 다르게 감각하는 사람들. 야밤 서울 곳곳에서 전력을 다해 뛰는 이들을 보고, 이렇게 부르고 싶어졌다. 한강공원에서도, 청계천과 홍제천에서도, 남산에서도. 뛰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광경은 더는 낯설거나 이상하지 않다. 벌써 10년째, 몇 명의 친구들이 뛰기 시작해 현재는 100여 명의 크루를 이룬 ‘88서울’ 멤버들이 각자 본업을 마치고 퇴근 후 경리단길에 모였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둘레길을 각자의 페이스대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뛰는 건 그냥 우리 삶의 방식이에요.” 크루를 만든 김용수 파운더가 말했다. 거창하게 달리기의 장점을 늘어놓는 건 낯부끄럽다는 듯이.

‘서울달’을 타며 포착한 여의도 페어몬트 빌딩.
대도시의 야경 감상법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건 인간의 유구한 욕망이다. 거대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태계를 관찰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므로. 밤이라는 필터가 씌워지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반짝 내비치는 섬광들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가만히 도시를 눈에 담는 일은 색다른 행위가 된다. 서울타워, 북악스카이웨이 같은 고전적인 야경 명소를 뒤로한 채 우리는 ‘서울달’에 몸을 실었다. 달모양의 기구를 타고 130m 상공을 오르내린다. 여의도의 마천루 같은 빌딩 사이, 불이 켜진 건물 안 사람들의 실루엣, 정체로 멈춰 있는 차들의 움직임. 바람 소리만 들리고 도시의 소음은 멎은 채, 시시각각 달라지는 고도가 다른 서울의 장면을 내어놓는다.
※ ‘서울달’은 한강과 도심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계류식 가스 열기구. 화~금 12~22시, 토~일 10~22시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아트선재센터의 외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개인전 «적군의 언어» 전시장 사이로 보이는 야경.

삼청 나이트 당시 국제갤러리에서 퍼포먼스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밤에 미술관을 가면
한밤에 음악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일과 미술관을 나오는 일은 분명 다른 종류의 경험이다. 즉흥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기보단 차분히 가라앉은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미술관 야간 개장은 더는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주말 낮에 비하면 한적함을 띤 채 다음 일정을 기약하지 않고 전시에 집중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몰입하는 이들이 채운 정적과 공기가 감돈다. 9월 첫 주 아트위크 기간, 삼청 나이트 현장에서도 파티와 퍼포먼스로 소란한 외부와 달리 전시장 안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듯 고요했다. 볕이 들지 않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나는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 속 이 문장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생활 속에서 감각과 정신이 뒤로 물러나고 추억과 양심의 거울 앞에 영혼이 당당히 서는 시간, 영혼이 의식될 수 있는 시간은 놀랍도록 짧다.” 예술이 자아를 의식하게 만드는 매개라면, 그 자아를 비추는 가장 좋은 방식은 밤에 예술을 감상하는 데 있을지 모른다.
※ 서울의 미술관 및 박물관은 매주 정기적으로 야간 개장을 진행하며, ‘서울의 밤’ 프로그램을 통해 매달 행사를 연다. MMCA 서울관은 매주 수·토 21시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은 매주 금 21시까지, 서울공예박물관은 매주 금 21시까지 전시장을 개방한다. 더 많은 전시와 행사 정보는 ‘서울의 밤’ 홈페이지(culture.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Credit
- 사진/ 전의철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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