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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끝나고, 개봉을 앞둔 영화 3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5 _ 올해 안에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화 세 편.

프로필 by 안서경 2025.06.02

전주 밖에서 보게 될 영화들


머지않아 극장 개봉을 준비 중인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을 미리 만나본다.


생명의 은인

보육원 퇴소를 앞둔 자립준비청년 세정(김푸름) 앞에 갑자기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폐암 말기인 은숙(송선미)은 천연덕스럽게 “나 좀 살려줘!”라고 외치며 세정의 정착지원금 500만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세정은 그 돈을 사기 당하고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은숙과 돈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한다. 미혼모 쉼터 화재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세정은 엄마의 친구 은숙에게 “왜 온 거죠?”라고 따져 묻는다. 세정은 모르고 살면 더 좋았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 뼘 성장하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다. 숨겨진 과거와 대면하기 위해서 은숙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세계는 반복이라는 사실을 통해 존립하고 있다”는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생이 반복되고 과거가 소환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방미리 감독은 방랑자 은숙과 보금자리를 찾는 세정의 관계를 통해 여성 연대와 유사 가족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두 사람의 결핍을 보듬으며 분신 같은 운명을 완성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얽히고설킨 운명의 끈으로 이어진 사실이 밝혀진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공연을 한 싱어송라이터 김푸름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해온 송선미,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단연 돋보인다.


바다호랑이

세월호의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시신 수습 작업에 참가한 잠수사 나경수(이지훈)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세상을 등진 은둔자가 된다. 어느 날, 해경이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동료 잠수사에 대한 책임을 민간 잠수사 대표에게 떠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영화는 의인이라 불렸던 잠수사들이 잠수병으로 몸이 망가진 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상황을 제시한다. 원작은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로, 잠수병 후유증으로 숨진 고 김관홍 잠수사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 연출은 <말아톤>(2005), <대립군>(2017) 등 다양한 장르로 한국 영화 전성기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정윤철 감독이 맡았다. 정 감독은 팬데믹 이후 영화시장의 침체로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지자 연극적 형식을 차용해 실내 세트에서 저예산으로 촬영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피해자인 민간 잠수사들의 진실을 알리는 데 의미가 있는 동시에 형식적 실험으로 쉽게 말할 수 없는 소재에 다가가는 방법을 재고하게 만들고 세월호 문제를 비롯해 희대의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을 볼 순 없지만 관객은 한 마음으로 실제 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잠수사와 유가족이 서로를 끌어안는 순간 진정한 애도에 이른다.


만남의 집

15년 차 교도관 태저(송지효)는 야간 근무 중 수용자(432번)의 모친 사망 소식을 듣는다. 후배의 오지랖에 못 이겨 적막한 장례식장 빈소를 찾았다가 수용자의 어린 딸 준영(김보민)과 만난다. <딸에 대하여>가 어머니와 딸의 동성 연인 관계를 다룬 것처럼 세대와 삶의 조건이 다른 두 사람이 서서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기다. 아라가키 유이의 차분한 열연이 돋보였던 <위국일기>(2024)에서 소설가 마키오가 친척의 권위적 시선에 맞서 조카 아사와 갑작스러운 동거를 선택하는 것처럼 태저도 홧김에 준영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어한다. 태저는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며 실상은 그저 버티는 삶을 살고 있다. 고독한 태저는 준영에게 햇살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지만 결국 위로를 받는 것은 그 자신이다. 일찍이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인간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듯이 태저는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책임을 느끼면서 삶의 의미를 회복한다. 태저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삶, 즉 심리적 방어막을 폐기시킨 것은 준영이라는 타자다. 두 사람의 만남과 지속적인 관계는 변화를 수반한다. 태저의 침착한 발길을 따라 만남의 집은 단순히 교도소의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 조금씩 확장된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전종혁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