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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개막작, '콘티넨탈 25'를 봤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3 _ 아이폰15로 촬영한 화제의 개막작을 본 후기.

프로필 by 안서경 2025.06.02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화제의 개막작, 아이폰 15로 촬영한 영화 <콘티넨탈 ’25>로 라두 주데가 돌아왔다. 그만의 영화 미학과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다. 루마니아의 혼란과 부조리한 현실을 넘어 유럽의 불안한 미래에 주목하고 있다.


라두 주데라는 이름이 곧 루마니아 영화를 대변한다. 그는 <아페림!>(2015)으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차세대 주자로 꼽혀왔다. 크리스티안 문지우나 크리스티 푸이우 같은 선배 감독들이 루마니아의 현실을 냉혹한 리얼리즘으로 담아낸 반면 주데 감독은 활화산처럼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가 빚어낸 2020년대 루마니아 지형도는 복잡다단하다. <배드 럭 뱅잉>(2021)과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2023)는 외설, 노동 착취 현장 같은 주제를 전면에 다루면서도 영화적 실험을 그치지 않았다. 전자가 포르노그래피를 충격적으로 활용한다면 후자는 틱톡과 줌을 통해 새로운 매체와 영화를 넘나드는 형식으로 나아간다. 개인이 직면한 모순적인 사건을 통해, 루마니아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작업. 그의 영화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욕설, 비도덕적인 행위부터 운명의 불확실성이나 지적인 성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동원된다. 급변하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분위기와 과거의 기억(차오셰스쿠의 독재 시절)을 자유롭게 소환하며 장벽이나 한계를 넘어선다. 더욱이 루마니아 광고를 활용한 파운드 푸티지 작업을 통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자유롭게 오가는 전방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된 <콘티넨탈 ’25>는 아이폰 15로 10일 동안 촬영한 저예산 독립영화다. 주데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형식적 실험을 잠시 멈추고, 고전적인 영화 서사로 회귀했다는 점이 놀랍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루마니아의 중부 지역 트란실바니아의 한 도시 클루지에서 법정 집행관을 맡은 주인공 오르솔랴(에스테르 톰파)는 건물 지하의 노숙자를 강제 퇴거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과정에서 노숙자가 자살하는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지울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헝가리계 루마니아인 오르솔랴에게 민족주의적 차별까지 더해지면서 점점 무력감에 빠져든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급기야 가족 여행에서 빠지고 홀로 방황한다. 한마디로 수심에 가득 찬 그의 얼굴이 영화의 심상을 대변하고 있다. 주데는 비극적인 드라마와 코미디를 혼합한 스타일로 도시의 주택 문제,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까지 파고든다.

영화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하나는 공공 의료가 무너진 사회를 고발한 영화 <라자레스쿠 씨의 죽음>(2005)처럼 리얼리즘적 시선으로 묵묵히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 또 하나는 제목에서 쉽게 연상되듯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유로파 ’51>(1952)을 향한 오마주다. 로셀리니는 아이를 잃고 절망에 빠진 이레네(잉그리드 버그만)를 통해 당시 유럽의 암울한 공기를 담아냈다. 주데 역시 자국인 루마니아를 넘어 유럽 전체의 혼란과 마주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에도 영혼이 소진된 오르솔랴를 구원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74년 후 잉그리드 버그만을 대신해 유럽의 고통을 짊어진 이의 초상을 마주하게 된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전종혁
  •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