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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엔 사랑이 없다

헛헛한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시대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2.13
“이시안이 걔야?” “그럼 해린이 메기고, 이시안이랑 김민재랑 삼각관계인 거야?” “아, 무슨 소리야. ‘환승연애’랑 ‘솔로지옥’이랑 섞였네.”

며칠 전 홀로 카페에서 원고를 쓰는 중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오가는 대화가 귀에 확 꽂힌다. 이번 주에 끝난 넷플릭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연프라고 불리는) ‘솔로지옥4’ 이야기가 분명한데, 왜 ‘환승연애’ 출연진 이야기가 섞여 있는 걸까.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다. 맞다. 헷갈릴 법 하다고, 솔직히 보다 보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한물 갔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동시에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4개 이상이 방영 중이다. 막 방영을 시작한 ‘커플 팰리스2’에 이어 역술인과 무속인의 등장으로 큰 화제가 된 ‘신들린 연애2’가 돌아올 예정이다. K-연애 프로그램들은 시즌을 반복하며 더 큰 세계관을 형성하고 진화를 거듭한다. 논란은 끊이지 않지만 제작진도 시청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출연자들은 뜨겁게 사랑하고, 잔인하게 흔들리고, 최종 선택 앞에서 극적인 결정을 내린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서사를 소비하고, 캐릭터를 분석하며,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연애를 바라는 마음을 발견하고 때론 당황한다. 그런데, 우리가 본 것은 정말 사랑일까?


사랑은 노동이 맞다?

카메라 앞에는 사랑이 없다. ‘연애 서사의 노동’만이 존재한다. 연애 리얼리티 속 연애는 견고하게 짜인 특정 공식으로 작동한다. 출연자들은 단순한 연애자가 아니라, ‘연애를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 대중으로부터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감정보다 ‘시청자가 원하는 연애 서사’를 연출해야 한다.

사진/ 아르테 제공

사진/ 아르테 제공


모이라 와이글은 『사랑은 노동』에서 “현대의 연애는 하나의 노동”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분석처럼 사랑이 아니라 사랑과 연애 관련 노동을 한다. 그의 논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대중이 기대한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곧바로 인터넷에서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여성 출연자는 ‘오버한다’는 말을 듣고, 소극적이면 ‘무성의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남성 출연자는 감정을 드러내면 ‘집착남’이 되고, 리드하지 못하면 ‘무매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애 프로그램 속 젠더 권력 구도는 변화가 참 더디다. 성별을 막론하고 선택받지 못하면 지옥도에 ‘떨어지고’, 숙소에 남아 홀로 먹는 짜장면 한 그릇(솔로정식)은 좌절하고 패배해야 마땅한 루저의 상징이 된다. 익숙한 서사는 반복되고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이거 왜 보고 있지?’라며 자괴감이 밀려 들고 욕하면서도 우리는 본다.


남은 건 사랑 아닌 협찬과 밈

시청자의 뇌리에 남는 것은 러브스토리의 감정선이 아니라, 강렬한 한마디 대사와 인터넷을 떠도는 짤, 특정한 행동과 말투다. 이제 출연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을 찾는가의 여부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연애 서사 속 주인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가’다. 출연자들은 더 이상 ‘순수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서 사랑을 찾는 듯 보여도 서사를 만들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더욱 몰두한다. ‘사랑의 짝을 찾는가’가 아니라, ‘독보적인 밈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사진/ 넷플릭스 솔로지옥 캡처

사진/ 넷플릭스 솔로지옥 캡처


‘솔로지옥4’에서 육준서가 여자 출연자에게 계속해서 “야”를 남발하거나, 상대를 낮게 보는 모습을 보이며 논란이 일었다. 그의 태도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그의 외형적인 포인트를 짚어 요즘 트렌드 키워드 ‘짧고 긴 중안부 논쟁’을 통해 조롱한다. 이처럼 개성 강한 출연자들의 말투와 외모마저 ‘밈’화되고 박제되어 영원히 인터넷을 떠돈다. 누군가는 강렬한 캐릭터로 살아남아 인플루언서나 화제의 인물이 되고, 또다른 이는 조용히 사라진다.

사진/ 넷플릭스 솔로지옥 캡처

사진/ 넷플릭스 솔로지옥 캡처


이들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미션은 눈 앞의 상대가 아닌, 보이지 않는 시청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소비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사랑을 노동하는 출연자는 관계보다 프로그램 속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할지에 더욱 더 신경 쓴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연애하는 캐릭터로 살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이들은 방송이 끝나갈 무렵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구독자를 늘리고, 커플 브이로그 콘텐츠를 만들어 자신들의 서사를 연장한다.

‘나는 솔로’ 출연자들은 현실에서 ‘기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서사를 만든다. 시청률에 집착하는 방송국 사람들은 ‘나는 솔로: 사랑은 계속된다’ 등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신이 난 듯 내놓는다. 쇼는 하나의 시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상에서도 다른 플랫폼에서도 계속 되풀이하며 연애 관계 속 역할 수행을 이어간다.

사진/ TVING 제공

사진/ TVING 제공


SNS에서의 자기 연출, 협찬과 광고, 유튜브 진출이 기본 코스로 자리잡은 지금, 연애 리얼리티는 더 이상 ‘연애의 장’이 아니라 ‘인플루언서 데뷔 무대’에 더 가깝다. 연애에 대한 진정성은 희석되고 화제성만 남는다. 티빙 TVing 에서 올해 야심차게 내놓은 오리지널 예능 ‘환승연애, 또 다른 시작’이 방영하기 전부터 진정성 논란에 휩싸인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씁쓸한 요즘 관계의 단면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현 시대의 연애 방식을 소름 끼칠 정도로 반영한 산물이다. 모든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나(self)’만이 존재한다. 지금의 사랑은 계산된 역할 수행과 관계 유지의 기술이 된 지 오래다. 연애에서는 나를 ‘브랜딩’하고, 관계를 맺기보다 ‘관리’하며, 서로의 감정을 읽기보다 나를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한다.

관계 맺기가 서툰 이유는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것이 그닥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아(ego)만이 앞서는 관계들 속에서 지금 세대가 사랑의 목적과 가치를 혼란스러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진/ 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TV 캡처

사진/ 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TV 캡처


‘나는 솔로’의 영철이들은 상대가 누군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가에 대해선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라는 말을 지르고 본다.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급기야 상대에게 때를 쓰기도 한다. 다 큰 남성이 엉엉 우는데 솔직히 말해 직진남의 모습과 거리는 멀다. 당황스럽다. 때로는 ‘연애하는 자신’을 연출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기에 급급하다.

‘솔로지옥4’ 출연자 중 김태환은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밝히며 ‘문화 대통령’의 꿈을 상대 출연자에게 설파한다. 또 당황스럽다. 결국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사랑이란 감정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랑을 ‘연기’하는 과정 자체를 소비하게 된다. 때로는 조롱과 거센 비난으로, 판타지와 선망으로, 깊은 공감에 기반한 자괴감과 비혼할 결심을 반복하면서.

사진/ 돌베개 제공

사진/ 돌베개 제공


이 시대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연애는 진짜 사랑일까, 노동일까, 아니면 관계라는 포장지로 싸인 자기 연출의 일부일까. 연애와 사랑을 동일선상에 두는 것이 가능할까. 에바 일루즈의 책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발견한 현대의 사랑이 더욱 더 자기 성취와 사회적 자본을 위한 도구가 되어간다는 지적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쇼가 끝난 뒤 밀려오는 헛헛함은 마치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에서 애매한 저녁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집어드는 기분과도 닮아 있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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