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달라진 라스베가스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화려한 야경과 카지노가 전부는 아니다. 스포츠와 함께 먹고 마실 모든 것을 갖춘 라스베이거스의 오늘.

프로필 by 고영진 2024.12.03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낮과 밤 사이, 모호한 경계에 머물러 있는 듯한 분위기의 공간. 여기저기서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게임 머신이 시선을 빼앗는다. 카지노에서 마실 것 하나씩을 곁에 두고 게임에 한창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진풍경.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서라면 쉽게 마주할 장면이다.
오후 6시쯤 도착한 패리스 호텔(Paris Hotel)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들릴 듯 말 듯 흐르는 온화한 선율의 피아노 연주 대신 한국의 금요일 밤을 방불케 하는 대화와 음악 소리로 가득한 로비. 밤이 가까워지자 호텔 안팎으로 화려한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난다. 10년 전, 배낭여행을 왔을 때 느꼈던 이 도시의 첫인상이 떠올랐다. 이제는 기억도 흐릿해진 대학생 시절이지만 캄캄한 밤에도 어디서나 화려한 네온사인이 함께였던 풍경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매일이 축제처럼 흥겨운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역동적이다.
달라진 것도 있다.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즐길 거리가 훨씬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패리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미식축구 경기장, 얼리전트 스타디움(Allegiant Stadium)을 보며 한 생각이다. 2020년 7월 개장한 이곳은 미국 프로 풋볼팀 레이더스의 홈 경기장이기도 하다. 62에이커(약 7만6천 평)의 면적을 자랑하는, 네바다주에서는 가장 큰 오락 장소다. 접이식 잔디 구장과 날씨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는 반투명한 지붕, 최대 7만2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는 NFL 경기 외에도 콘서트나 기타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기에도 충분하다. 2022년에는 BTS의 공연으로 총 20만 명(4회 기준)을 동원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드라이빙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스피드베이거스.

드라이빙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스피드베이거스.

2020년 개장한 미식축구 경기장, 얼리전트 스타디옴.

2020년 개장한 미식축구 경기장, 얼리전트 스타디옴.

분수쇼로도 유명한 벨라지오(Bellagio) 호텔 앞은 다가올 F1(Formula 1) 레이싱 경기를 위한 좌석을 지어 올리는 데 한창이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일상과 관광의 장소인 도시 전역은 최대 속도 340km/h를 자랑하는 고속 직선 구간과 복잡한 코너링 구간을 겸비한 경기장이 된다. 3.8마일(약 6.12km) 길이의 서킷은 야경 명소로 꼽히는 벨라지오 호텔을 비롯해 시저스 팰리스, 베네치아, 스피어 등 랜드마크로 통하는 스폿을 모두 관통한다. 이 시기에는 F1 경기 관람에 특화된 호텔 패키지 숙박 상품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피트 레인과 진입로 구간이 포함된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 플라자(LV Grand Prix Plaza)도 막바지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약 5만 평 규모의 부지에 들어선 이곳 내부에는 4층짜리 그랑프리 피트 빌딩도 자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실내와 야외를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행사를 주최할 수 있는 공간. F1 경기가 끝난 후에는 콘서트 무대나 각종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쓰일 예정이다.
F1 경기가 개최되는 11월 하순이 아니더라도 놀거리는 많다. 실내 골프장 톱골프(Topgolf)가 대표적이다. 언뜻 보기엔 한국의 실내 골프 연습장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골프에 관심이 있다면 반나절은 거뜬히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혼자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할 때 즐길 거리는 배가된다. 4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요일과 시간대마다 가격이 상이한데, 화려한 야경을 누리고 싶다면 3층 이상을 선택할 것. 세계 최대 규모의 원형 대관람차라는 하이롤러(High Roller)까지 한눈에 담기는 뷰와 함께 골프를 즐길 수 있다. 골프채를 처음 잡아보는 초보자를 위해 오락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물론, 술과 음료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스트립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만달레이베이 호텔 안에 오픈한 미니 골프장 스윙어스 크레이지 골프(Swingers Crazy Golf)도 눈여겨볼 것. 런던에서 처음 시작된 이곳은 뉴욕, 워싱턴 D.C. 등의 도시를 거쳐, 미국 서부에서는 최초로 라스베이거스에 문을 열었다. 골프 외에도 룰렛과 뽑기 등 술과 함께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많다. 무려 호텔 내 3개의 층을 쓰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데는 이유가 있다. 슈퍼카를 타고 F1의 짜릿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 스피드베이거스도 인기다. 인솔자 동행 하에 슈퍼카를 타고 서킷을 내달려볼 수도 있지만, 면허가 없는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난생 처음 겪는 속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괴성을 지르는 것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지는 짜릿함에 압도되는 경험이었다.
프렌치 레스토랑 브래서리 비의 방어 세비체.

프렌치 레스토랑 브래서리 비의 방어 세비체.

스피어에서 만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우라’.

스피어에서 만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우라’.

최신 기술의 집약체인 세계 최대의 구형 공연장, 스피어(Sphere)도 빠질 수 없다. 짓는 데만 무려 3조원이 투입됐다는 이곳은 메인 스트립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지만,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내어 꼭 들러야 할 가치가 있다. 외관에만 약 1백20만 개의 LED를 설치해 실감나는 영상을 송출하는 탓에 하이롤러를 타고 멀리서 본 스피어에 만족한다는 후기도 많지만 하이라이트는 단연 내부에 있다. 신비한 홀로그램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지만 미리 예약해둔 스피어 쇼를 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50분간 상영되는 영상의 제목은 <Postcard from Earth>. 전 세계의 면면을 압도적인 크기의 풀 스크린 위에 펼쳐 놓는다. 영상을 통해 본 사막과 마을, 산과 바다는 마치 눈앞의 것처럼 생생했다. 음향은 물론 온도와 바람, 진동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어 곳곳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라스베이거스는 스포츠를 즐길 때 빠질 수 없는 먹고 마시는 일에도 진심이다. 호텔과 길거리 곳곳에서 등장하는 스타 셰프들의 업장에서 짐작했다. 어쩌면 자국에서보다 인기 있는 건 아닐까 했던 영국 셰프 고든 램지의 광고는 어느 호텔에서나 눈에 띄었다. 고든램지버거의 본점은 물론 넷플릭스 시리즈 <헬스 키친>의 주방을 재현한 동명의 공간도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위치해 있다. 미국 최고의 요리 서바이벌 예능 <아이언 셰프>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셰프 바비 플레이도 자주 보이는 이름 중 하나다. 그가 올해 초 시저스 팰리스(Caesars Palace) 호텔 안에 문을 열었다는 프렌치 레스토랑 브래서리 비(Brasserie B by Bobby Flay)에서는 최고의 랍스터 요리를 맛봤다. 시그너처라는 랍스터 아벡 프리츠는 물론 랍스터 샌드위치와 굴을 필두로 한 해산물이 다양하게 제공된다. 브래서리 비로 향하는 길에는 한식당 먹바(Mokbar)의 오픈을 예고하는 팻말도 발견했다. 뉴욕에서 이름을 알린 한인 셰프 에스더 최가 팬프라이드 만두, 비빔밥, 라면 등 한국 전통 요리를 기반으로 하는 메뉴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다. 이쯤에서 반가운 소식 하나. 지난 10월 26일부터 인천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운항하는 직항 항공편이 주 7일로 늘었다. 이건 아시아에서 한국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옵션이다. 라스베이거스의 각종 스포츠 경기와 액티비티, 게임, 다채로운 미식 신을 더 가까이서 경험할 기회다.

Credit

  • 사진/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