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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룩 백'을 보고 울었다면

애니메이션 <룩 백>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는지 알 것 같다. 뒤돌아보자. 떠올리자. 그리고 살아가자.

프로필 by 손안나 2024.12.05
해마다 11월이면 우울한 소식이 이어진다지만, 요즘은 유난히 뉴스를 보기가 겁난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내 마음이 유약해진 탓인지, 요즘 ‘유행’한다는 HSP의 흔한 증상 중 하나인지, 세상이 그만큼 각박해진 탓인지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지난 십여 년간 목격한 사회적 참사들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건 아닐지 감히 짐작해봤다. 저널리즘 속 사건사고를 개개인의 비극으로 돌아보고 나면 무력감과 자책감이 온몸을 잠식하는 기분이 든다. 여느 때처럼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운전을 하고 일을 해야 하지만 문득 주저앉고 싶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람이 죽었는데.
<룩 백>의 주인공 후지노는 학교 신문에 네 컷 만화를 연재하는 ‘인싸’ 초등학생이다. 자신의 재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품고 있던 그는 어느 날 같은 지면에 연재를 시작한 은둔형 외톨이 동급생 교모토의 만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두 소녀는 만화라는 공통분모로 친구가 되고 교모토는 비로소 집 밖으로 걸어 나올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다’는 바람으로 미대에 진학하게 된 교모토와 만화가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 후지노는 크게 다툰 뒤 갈라선다. 만화가로 홀로서기를 준비하던 후지노는 어느 날 티비에서 교모토가 다니는 미대에 괴한이 침입해 열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교모토도 거기에 있었다. 후지노는 자기 때문에 교모토가 세상 밖으로 나왔고 결국 죽음을 당한 거라며 울면서 자책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을 이어준 네 컷 만화의 새로운 장면이 바람에 날려 그야말로 만화처럼 후지노 앞에 떨어진다. 후지노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간다. 눈물을 닦고 만화를 그린다.
일본의 다크판타지 만화 <체인소 맨>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는 작중 후지노처럼 그림 그리기에 매진하던 열일곱 살 무렵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했다. 작가는 그때부터 쭉 자신을 따라다닌 무력감에 대해 고백한다. <룩 백>은 작가가 이런 감정을 발산하고자 그린 단편이다. 작품 곳곳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는 이 작품이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헌정임을 짐작케 한다. 작가의 집필 후기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지금 이 단편집을 보니까 배를 엄청 곯으면서 그렸던 일, 내 친구와 그림 연습을 했던 일 등등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왜 암울한 일만 되새겼는지 궁금해질 만큼 즐거운 추억들이었습니다.” 상영 시간이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이 소품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가을 내내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 많은 슬픔을 겪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겠지만 그때의 우리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 슬픔이든 절망이든 고통이든 피하지 않고 모든 감정을 꼭꼭 씹어 삼키는 일. 그게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이 작품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서로의 등을 보며(룩 백) 성장한 두 사람처럼 우리도 그렇게 뒤돌아보고 떠올리자. 온 마음을 다해.

Credit

  • 사진/ 메가박스중앙(주)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