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꿈인가요? 비현실적인 포지타노의 풍경

아말피 해안 포지타노에 자리한 유서 깊은 호텔 르 시레누스(Le Sirenuse). 현대미술가들과 꾸준히 협업을 이어온 이 호텔이 새로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니콜라스 파티의 풀사이드 아트워크를 공개했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07.16
객실에서 바라 본 수영장 전경.

객실에서 바라 본 수영장 전경.

나폴리역에 내리자 도통 현실 감각이 없었다. 사흘간 베니스비엔날레 일정을 마치고 북부에서 남부로 반도를 종단해오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호텔 르 시레누스에서 열리는 아티스트 니콜라스 파티의 신작이 공개되는 행사에 가는 길. 인비테이션에 적힌 글자가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던 차, 굽이진 163번 도로에 들어서자 멀미가 시작됐다. 줄어드는 말수에 나폴리 출신 드라이버 빈센조는 도착 10분을 남겨두고 야경을 눈에 담으라며 차를 멈춰 세웠다. “저기 리갈리섬에서 여신 세이렌이 부르는 노래가 들리지 않아요?” 그가 오랜 신화를 빌려 너스레를 떨었다. 파도 소리만 들리는 해안가, 가파른 언덕 위에 집들의 불빛이 콕콕 박혀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캄캄하고 빛나는 첫인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종소리에 잠이 깼다. 알람벨이 아니라 영롱하다 못해 경건해지는 종소리를 듣고. 르 시레누스의 모든 방에는 테라스가 나 있는데, 내 방 바로 앞에서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 종탑이 보였다. 협탁 위 푸른색 커버로 감싼 소책자가 눈에 띄었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1953년 <하퍼스 바자> UK에 기고한 글을 분철한 것으로 오기 전부터 호텔 PR 매니저가 귀띔해주었던 기사다. 이 글은 작은 어촌을 SNS 피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휴양지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과 <분노의 포도> 두 권의 소설을 집필한 뒤 휴가 차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포지타노를 방문했다. 그가 오기 두 해 전인 1951년, 대대로 나폴리 귀족이었던 세르살레 가문의 네 남매는 별장을 58개의 방을 품은 호텔로 레노베이션하면서 르 시레누스를 탄생시켰고 스타인벡이 여기 머무르면서 인연을 맺었다. 기사는 비단 이탈리아 남부에 대한 매혹적인 단상뿐만 아니라 16~17세기 무역의 요새로서 온갖 귀중품이 모였던 포지타노의 역사, 1800년대 후반 미국으로 대규모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뉴욕에만 포지타노 전체 인구의 두 배 남짓한 포지타노인들이 살게 된 일화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아우른다.
마틴 크리드의 작품이 설치된 ‘돈 워리 바’의 낮과 밤.

마틴 크리드의 작품이 설치된 ‘돈 워리 바’의 낮과 밤.

대낮에 본 호텔은 소설가의 표현처럼 ‘한 가족이 오랫동안 사용하던 별장’ 같은 인상을 줬다. 종종 부티크 호텔을 묘사할 때 ‘누군가의 집’ 같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지만 좀 달랐다. 대대로 추기경과 시장, 항해사와 탐험가를 배출한 가문이 실제 수집한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는 걸 눈치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복도에 놓인 캐비닛과 엘리베이터 옆 거울까지 단 하나도 같은 디자인의 가구가 없었다. 나폴리 출신 화가들의 르네상스 시대 회화와 고가구가 어우러지고, 야외 레스토랑과 수영장에는 바로크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조개 문양 오브제,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양식 모자이크 테두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설립자 프랑코 세르살레의 관심사가 주로 과거를 향해 있었다면, 이어서 호텔을 맡은 아들 안토니오는 과감히 현대미술의 터치를 더했다. 그는 2015년부터 영국 출신 큐레이터 실카 릿슨-토마스와 함께 ‘아티스트 앳 르 시레누스(Artists at Le Sirenuse)’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마틴 크리드의 네온 조명 설치작품이자 바의 이름이 된 ‘돈 워리 바(Don’t Worry Bar)’를 필두로, 알렉스 이스라엘, 리타 아커만 등 여러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호텔에 머물며 자신의 작품을 보물찾기놀이 하듯 배치해두었다. 모든 층의 수색을 마치고, 호텔 맨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비밀스러운 출입문이 산책길과 이어져 있었다. 돌계단이 즐비한 산책로를 걸으며 “포지타노는 결코 새하얀 리넨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닐 곳”이 아니라던 스타인벡의 문장에 또 한 번 공감했다.(안토니오는 자신의 두 아들은 매일 이 길을 올라 학교에 갔다며, 트레킹화를 준비하란 말을 왜 하지 않았냐는 볼멘소리를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마틴 크리드의 작품이 설치된 ‘돈 워리 바’의 낮과 밤.

마틴 크리드의 작품이 설치된 ‘돈 워리 바’의 낮과 밤.

이윽고 11번째 협업을 축하하는 행사가 시작됐다. 니콜라스 파티의 선택은 대담했다. 길이 18미터, 폭 5미터의 수영장 전체를 캔버스로 삼은 것. 스위스 로잔의 목가적인 마을에서 자란 그는 수차례 동양 산수화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혀왔다. 풍경 연작 <Landscape>를 연상시키는 신작은 니콜라스 파티가 오일과 물감이 아닌 재료를 사용해 만든 최초의 작품이다. 작가는 직접 모자이크 타일에 쓰는 소프트웨어 툴을 익힌 다음 이탈리아 모자이크 제조사 비사차에 제안해 20mm 정사각형 타일을 2백여 종류의 컬러 팔레트로 완성했고, 오늘날 몇 남지 않은 모자이크 숙련공(모자이키스트)인 루치아노, 마르첼로 파브리치 형제가 수공예 마감을 담당했다.
“이것은 산일까요, 구름일까요? 아니면 파도이거나 연기일까요? 이 분홍색을 띤 부분은 마치 산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듯 그가 말했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린 그 한가운데 살아갈 뿐이죠. 구름은 비를 통해 물을 생성하고 그것은 파도가 됩니다.” 의미심장한 말을 이어가더니 돌연 수영장 한가운데 있는 황금색 원형 타일을 가리키며 “물론 이걸 태양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수영장에 뛰어들 때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경험이 될 테고요!” 하며 아이처럼 웃었다. 뉴욕 스튜디오에 머물다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르 시레누스로 향한다는 그는 가족들과 함께 편안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했다.(행사 전날, 자신의 작품이자 풀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가장 이탈리아적인 삶의 방식이 스며들어 있는 장소에서 중국의 수석과 동양 사상에 영감받았다는 작가의 말을 듣자니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내내 구름이 낀 흐린 날이었다. 연보랏빛 하늘에 짙은 차콜색 먹구름이 뒤섞이고, 샴페인을 홀짝이며 서울과 뉴욕, 유럽 전역과 홍콩에서 온 갤러리스트와 아트페어 관계자들과 함께 하염없이 지중해를 바라봤다. 누군가 “흐리지만 스기모토 히로시 작품 같아서 더 멋진 걸요” 하고 말하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사로잡힐 만한 풍경이었다.
처음으로 완연한 해가 뜬 마지막 날. 이번에도 돌아가는 날 가장 날씨가 좋은 법칙이 유효한 것에 통탄하며, 바람은 차지만 잠시라도 푸른 지중해를 더 보려고 테라스에서 조식을 먹고, 레몬나무와 라벤더가 드리워진 비탈 언덕을 혼자 오르내렸다. 돌아가는 우버에서는 차창 밖을 보며 오직 스타인벡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포지타노는 깊이 스민다.(Positano bites deep.) 머무는 동안 실제 같지 않은 꿈과 같은 곳이며, 떠나고 나서야 손짓하며 부르는 실존하는 장소가 된다.” 엊그제 밤 전망대가 되었던 갓길에는 수십 대의 스쿠터와 올드 카가 서 있었다.

Credit

  • 사진/ 르 시레누스, Brechenmacher & Baumann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