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팝업스토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메타버스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의 단어처럼 쓰일 때만 해도 인류의 베이스캠프는 데이터센터로 옮겨가는 듯 보였다. 영화 <13층>이나 <매트릭스>에서 그린 미래가 허황된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었으며 상점에 가지 않아도 옷을 디테일하게 비교하고 자신의 퍼스널 컬러에 맞는 립스틱을 고를 수 있었다. 다 늘어진 애착옷을 입고 방구석에 앉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었다. 동시에 현실의 자아는 화려하고 강렬한 경험을 원했다. 그 욕망이 가장 먼저 발현된 것이 미식이었다. 어차피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배달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면하기 위한 특별한 한 점이 필요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맛있는 것들은 많이 먹어봤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진귀한 식재료 어디 없을까, 익히 알던 식재료를 창의적으로 풀이한 요리는 어떤 셰프가 잘했더라, 플레이팅이 아름다워 눈으로 먹는다는 표현이 절묘한 레스토랑은 어디일까. 탁월한 맛과 식감, 귀한 재료를 찾아 미식 기사를 뒤지고 뒤지다 다음과 같은 문장에 시선을 고정하게 됐다. 영화 <라따뚜이> 속 레미의 이름을 빌려 그 내용을 살짝 변형해 소개하자면 대략 이렇다. “올해도 자신의 레스토랑에 또 하나의 별을 추가한 맨해튼 최고의 스타 셰프 레미는 소고기 중에서도 50g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부위를 위해 나머지는 아낌없이 버린다.”
한 점을 먹기 위해 나머지는 버린다고? 비용 문제도 있고, 해당 요리에 쓰이지 않는 부위를 다른 요리에 활용하는 식당도 많겠지만 상대적으로 맛이 덜한 부위의 재료들이 버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양이 폐기된다. 그 전에 농가에서부터 상처가 나거나 모양이 고르지 않은 과일이나 채소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질 위기에 처하는데, 그 중 살아남은 재료마저 온전히 쓰이기가 어렵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식재료가 낭비되는 현장을 경험한 후 못난이 채소들을 병조림으로 만드는 울퉁불퉁 팩토리 조찬희 대표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레스토랑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막내이다 보니 식재료를 씻고 선별하는 업무를 주로 했어요. 그때 제일 많이 골라내고 버렸어요. 특히 채소나 허브류는 선별하는 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했죠. 대파같이 생긴 ‘리크’라는 채소가 있는데 겉면을 벗겨내서 안쪽의 아주 작은 흰 부분만 사용한다든지, 미니 당근은 조금이라도 크면 또 못 쓰고, 허브 같은 것도 작고 동그란 것들만 고르고 골라요. 음식에 사용하지 못하는 재료들은 스텝밀로 먹기도 했지만 결국엔 버리는 일이 많아서 나중엔 굳이 모아두지도 않고 바로 버리곤 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아까웠는데 일이 너무 고되고 다른 일도 빨리 해야 되다 보니 점점 식재료 골라내고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갔어요. 그런 저를 보면서 이러면 안 되겠단 생각을 했죠.”
유려하게 흘러가는 파인 다이닝의 우아한 플로 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일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대면이 익숙해지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 공간의 힘을 절실하게 실감한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모이고 있는 팝업스토어가 그렇다. 인스타그래머블한 포인트와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팝업스토어는 자연히 그 외관이 멋지거나 화려할 수밖에 없다. 일정 기간을 점유하는 팝업스토어의 특성상 지어진 구조물은 철거해야 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폐기된 자재들은 또 거대한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 팝업스토어를 밟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는 성수동의 일주일 매장 임대료는 1억원이라고. 임대료가 5년 만에 최대 3배나 오르는 동안 폐기된 쓰레기들은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쓰레기 배출량의 정량적인 데이터는 없습니다. 저희가 아는 범위에서 말씀드리자면 일반적으로 무대장치에 쓰이는 철재 가설 구조물과 같은 것을 활용하지 않는 한 대부분 팝업스토어를 만드는 방식은 주로 합판과 목재 각상을 사용하는데요. 팝업스토어나 전시가 끝나고 전량 폐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는 목재류 폐기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대부분 도장(페인트)이나 시트지 작업이 되었던 것들이라 재활용이 어려워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폐기해야 합니다.” 빌드웰러(Builddweller) 김유석 대표의 말이다. 공간 경험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 요즘, 김유석 대표는 빌드웰러를 통해 지속가능한 공간을 위한 ‘모듈러 시스템’을 만든다. 가장 변화의 주기가 짧고 폭이 큰 상업공간 시장에 집중해 가변형 상업공간 인테리어 솔루션을 진행하고 있다. 팝업스토어부터 단기 전시공간까지 인테리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 필요한 기간만큼 렌털할 수 있다. 이동형 매장을 위한 집기 및 인테리어도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있다. 빌드웰러에서는 팝업스토어 종료 후 모든 자재를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한다. “렌털 기간이 종료된 모든 집기와 설치물은 본사로 운반해 모듈러 파츠 단위로 해체하여 보관합니다. 이렇게 보관된 모듈러 파츠들은 다음 프로젝트에서 다시 렌털을 통해 사용되고 있어요. 폐기하는 자재가 없기 때문에 배출되는 쓰레기도 없습니다.”
빌드웰러가 제작한 노티드 팝업스토어. 기간이 끝난 후 다른 곳에 이동 설치할 수 있다.
쓰레기가 무서워 아무것도 못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간과하는 것도 문제다. 페스티벌 같은 행사에 모두가 컵과 용기, 식기까지 지참해 모이는 건 이상적인 일에 가깝다. 트래쉬버스터즈는 이러한 행사에 다회용기를 대여하고 수거하고 세척하는 브랜드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다회용기 누적 사용량 2천5백만 개를 돌파했다. 2021년 9월에 약 57만개, 2022년 9월에 9백40만 개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다회용기를 사용한 숫자만큼이나 일회용품을 줄인 셈이다. 이상준 브랜드 마케팅 책임 PD는 다회용기가 있는 축제를 경험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다회용기를 더 많은 곳에서 접하고 사용해보면서, 일회용품보다 다회용기가 좋다는 걸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확실히 점점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끼긴 해요. 축제에 오시는 분들과 기획하시는 분들 모두 일회용품 문제 해결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계시거든요.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할수록 이런 변화가 우리의 당연한 일상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