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애의 아이〉를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시골 병원의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아마미야 고로’는 아이돌 걸그룹 B코마치의 센터 ‘호시노 아이’의 팬이다. 어느 날 아이가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허망하고 슬픈 마음으로 그 소식을 접한 고로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자신의 최애인 아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병원에 찾아온 것.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본업으로 복귀하겠다는 아이의 다부진 의지는 고로를 감동하게 만들었고, 그는 아이가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끔 팬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돕는다. 하지만 아이의 출산 당일 고로는 의문의 범인에 의해 살해당하고, 아이는 쌍둥이를 낳는다. 놀랍게도 아이의 두 아이는 전생을 기억한 채로 환생한 인물들이고, 그 중 한 명인 ‘호시노 루비’는 고로가 병원에서 마음을 쏟으며 돌보던 환자인 ‘텐도지 사리나’, 다른 한 명인 ‘호시노 아쿠아마린’은 고로의 환생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다시 B코마치 활동을 재개한 아이는 이전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아이는 고로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범인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후 〈최애의 아이〉는 아이를 죽인 자를 찾아나서는 아쿠아마린의 복수극으로 변한다. 알 듯 말 듯한 호시노 아이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연예계에 입성해 그녀의 뒤를 잇는 ‘궁극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연예계의 이면을 곱씹게 하는 순간들과 ‘아이의 남자’이자 쌍둥이의 생부에 대한 궁금증으로 단숨에 모든 에피소드를 다 보았다. 이상하게도 보는 순간마다 찝찝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정주행을 마치고 나서도 오랜 시간 동안 진한 불쾌감을 남겼다. 일본 서브컬처 마니아인 친구 중 하나는 “기본 설정이 키모이(‘극혐’과 비슷한 의미의 일본어 속어)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누구든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궁극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호시노 아이가 임신을 한 채 산부인과를 찾아왔을 때의 나이는 16세다. 왜소한 체구를 하고 눈에 별을 품은 아이가 겨우 열여섯의 나이에 임신이라니. 아이들의 아빠가 누구인지는 아이가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알 길이 없다. 시작부터 다소 당황스러운 설정이다. 심지어는 “아이돌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면 좋을 것 같다”며 아이를 우상으로 삼았던 사리나와 삼촌팬이었던 고로가 쌍둥이가 되어 태어났다. 아무리 친근하더라도 일정 거리 이상을 유지해야만 하는 팬과 스타의 관계가 가장 내밀한 관계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픽션이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쁜, 그야말로 ‘키모이한’ 설정이다.
한편으로는 작품을 보면서 내가 계속 하게 되는 생각도 불쾌했다. 한국의 미성년 여자 아이돌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연예계 활동을 이어간다면? 그러다 그것이 밝혀진다면? 아마 조용히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불필요하지만 흥미를 끄는, 자극적인 기사들이 범람할 테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아이돌의 동창이었다는 이들이 졸업앨범이나 학생증 정도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며 그녀의 평소 행실에 대해 입을 댈 것이다. 사이버렉카의 허무맹랑한 추측성 영상은 알쏭달쏭한 제목과 쓸데없이 모자이크한 썸네일을 달고 사람들의 궁금증을 동력 삼아 널리널리 퍼져나가겠지. 사실상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비난을 받으면서 자필 사과문을 내고, 향후 몇 년간 불가피하게 자숙을 하며 암묵적인 출연 금지를 당할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했다는 사실 외에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말과 글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진실’을 추궁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내몰 것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한 것은, 연예인에게 어떤 이유로든 ‘논란’이라는 딱지가 붙었을 때 익명의 심판관들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의 삶 전체를 판가름하는 경우가 지겹도록 많았기 때문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논란의 네트워크’는 슬프게도 덕질의 필연적인 동반자나 다름없다.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 〈망설이는 사랑〉(안희제 지음, 오월의 봄)은 케이팝 비즈니스 안에서의 논란을 정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논란이라는 범주는 각 사건의 내용과 큰 관련이 없으며, 개별 사건이 생산되고 증폭되며 특정한 방식으로 처리되는 과정 전반의 특성에 기인한다. 사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검색 포털과 연동된 언론 등 관심경제의 원리로 작동하는 행위자들의 연결 안에서 생산되고 증폭되면서 논란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산된 논란은 유행처럼 소비되며, 그 과정에서 특정 주장이 여론에 따라 사실의 지위를 얻으면 일단락된다.”
아이돌을 둘러싼 논란이 불쾌감과 피로감을 주는 이유는, 어느 순간 본질은 흐려진 채 이를 둘러싸고 생산되는 또 다른 논란들 때문일 것이다. 전혀 관심 없는 스타의 논란도 알고리즘을 타고 시야에 들어오는 와중에,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나름의 윤리적 판단을 위해서 논란을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하니 그로 인한 피로도가 엄청나게 쌓일 것이다. 어떤 크고 작은 행동도 눈 깜짝할 사이에 큰 논란이 되고, 사실상 별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실컷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화제가 또 다른 논란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느새 연예계의 당연한 루틴이 되었다. 명료한 정리나 해명 없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논란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된 채 활동을 이어갈 뿐이다. 논란을 소비하는 이들의 주된 관심이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호시노 아이를 좋아했다가 안쓰러워했다가 궁금해했다가 그로 인해 찝찝해지는 과정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득 〈최애의 아이〉를 보며 느낀 불쾌함의 근거는, 복수극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지 않는 ‘호시노 아이 논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생전에 누구와 연락을 했는지,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 누구와 연애를 했는지, 그래서 아이들의 아빠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이를 추적한다. 그리고 재생 버튼을 눌러 이 작품에 탑승한 순간부터 아이를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나도 논란의 적극적인 소비자가 된다. 그런 나 자신을 지켜보는 게 역겹다. 그야말로 ‘키모이’하다. 좋아하는 마음과 궁금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논란을 소비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기에는 폭력적이다.
나는 요즘 누군가를 덕질하기를 망설이게 된다. 이전에는 혹여나 그가 범죄자일까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면, 이제는 다른 종류의 망설임이다. 〈망설이는 사랑〉에 언급된 것과 같이 아이돌의 성적 대상화, 과도한 다이어트와 건강 문제,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 소속사와의 위계관계, 어린 나이부터 긴 연습생 기간을 거쳐 착취되는 구조까지. 그걸 다 알면서도 좋아하는 마음이 정말 괜찮은지, ‘산업의 특수성’이라는 말로 이 모든 것을 뭉개고 넘어가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딜레마가 오로지 팬들의 몫으로 남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케이팝 비즈니스는 팬들이 갖게 되는 이 불쾌함과 찝찝함까지 인지하고 이를 이용하고 있다. 이 괴상한 구조를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의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이 약간은 서글프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