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섬부리다리 위에서 본 서귀포 바다. 바다의 색은 한 계절 늦다. 짙은 6월의 바다는 7~8월이 되면 에메랄드빛으로 변한다.
루프를 걸고 상승 중인 프리다이버 장지훈. 그리고 그의 옆을 지나는 자리돔 떼.
섬 옆에 섬 그리고 또 섬. 호랑이가 웅크린 모양의 범섬, 가운데 늠름히 선 문섬, 사계절 상록수로 덮인 섶섬까지. 쉼 없이 작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서귀포항에 당도하자 무인도로 향하는 발길이 모여든다. 난류가 흐르는 제주의 남쪽 바다. 만반의 채비를 마친 낚시꾼 무리 사이로 검은 수트를 입은 다이버들이 하나둘 보인다. 가뿐히 손을 들고 택시처럼 고깃배를 잡아탄다. 섬 한편, 굽이굽이 튀어나온 암석에 두 발을 디딜 틈을 확보하면 이들은 머뭇거림이 없다. 철썩이는 바닷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예측가능한 움직임으로 채워진 도시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광경.프리다이빙을 떠올릴 때 뤼크 베송의 〈그랑 블루〉처럼 수중 낙원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he Deepest Breath〉 속 알레시아 제키니가 터득한 고도의 훈련에 가깝다. 공기통 같은 장치 없이 인간의 몸만으로 물속을 탐험하는 스포츠. 한 번의 호흡으로 차분히 하강하고, 더 깊이 낙하하고, 멈춘 다음 다시 수면을 향해 상승한다. 남은 숨을 알고, 숨 쉬는 일에 모든 정신과 감각을 곤두세운다. 물 안에서 극도로 절제하지만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의 몰입을 담았다.
이퀄라이징을 돕는 프리다이빙 마스크와 물을 막는 노즈 클립.
수심 밖으로 상승 중인 프리다이버 김혜미 & 장지훈.
다이버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들은 수십 미터에 이르는 수영장 혹은 제주도와 울릉도, 이집트 다합과 팔라우 등 다이빙 스팟을 오가며 훈련한다. 7년 차 프리다이버이자 선수로 활동하는 김혜미는 제주 바다의 수온이 찬 겨울에 필리핀 보홀로 떠났다가 촬영 이틀 전 제주로 돌아왔다. 6월 제주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제30회 프리다이빙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물속에서는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져요. 손끝과 발끝의 움직임, 기도와 입안의 숨까지. 그 감각을 잃지 않고 살고 싶었어요. 다이빙을 시작하기 전까지 제가 그렇게 모험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성격인지 몰랐어요. 도전할 수 있는 경험이 없었으니까. 알고 보니 저는 모험심이 강한 성향이더라고요.”바다를 마주할 때 우리가 느끼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탐닉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당장이라도 물속에 뛰어들고 싶은가 하면, 심연이 주는 아찔함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들도 있다. “심해는 매번 새로워요. 들어갈 때마다 달라요. 어떨 때는 공포심을 감수해야 할 때도, 어떨 때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상태로 몰입할 수 있죠. 제주의 바다는 변칙적이에요. 물 위는 잔잔해 보여도, 물 안의 조류는 시시각각 변해요.” 그가 말하는 프리다이빙은 이 양가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두려움을 쾌감으로 치환하며, 고요하고 정적인 바다 안에서 매일 수련한다.(그는 이번 대회에서 핀 없이 수평으로 잠영하는 DNF(Dynamic Without Fins) 종목에서 162m로 한국 여자 신기록을 달성했다.)
태풍이 와도 바다로 가 놀고, 바위를 붙잡고 친구들과 숨 참기 놀이를 하던 바다 소년. 어른이 된 뒤 다시 만난 바다에서 장지훈은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물속에서 소란한 마음이 차분해지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죠. 프리다이빙 챔피언이었던 기욤 네리의 영상을 보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어요.” 정상인의 분당 심박수가 60~100 사이라면, 다이버들은 심해로 향할수록 산소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약 30회를 유지한다. 그는 바다와 더 잘 교감하기 위해 지상에서의 작은 습관을 유지한다. 폐를 부풀려 늑간근을 유연하게 만들고, 모든 숨을 끝까지 내쉬기 위해 횡격막을 컨트롤하는 법을 연구한다. 요가의 호흡법 ‘우디아나 반다’가 일상이다. 물속에서 잡념이 많으면 산소를 더 쓰게 되기 때문에 생각을 비워내기 위한 명상도 한다. 신체를 수중에 최적화시키기 위해 수중 생물처럼 몸을 고도로 컨트롤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2021년 장지훈은 한국 최초로 공식 CWT(Constant Weight with Fins, 웨이트와 핀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하강을 하는 종목) 1백m 기록을 달성했다. 사이프러스에서 열린 국제 프리다이빙 협회 AIDA 주최 대회(Freedom Depth Games)에서 이룬 결과다. “올해 압력평형기술 중 하나인 리버스 패킹 프렌젤을 정복하고 싶어요. 기존에 입에 공기를 채우는 방식이었다면, 기도 뒤로 공기를 보낸 다음 역으로 공기를 내뱉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이죠. 제주에서 훈련을 하며 이 방식을 시도하고 있어요. 매해 바하마에서는 모든 다이버들의 꿈인 ‘버티컬 블루’가 열려요. 수심 2백m가 넘는 블루홀을 만날 수 있는 곳이죠. 머지않아 새롭게 터득한 방식을 그곳에서 선보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