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마음속에서 꺼낸 이야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마음속에서 꺼낸 이야기

패션 평론가 알렉산더 퓨리(Alexander Fury)와 함께 나눈 이야기

BAZAAR BY BAZAAR 2023.05.07
 
베르사체 밀라노 본사에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그의 팀이 함께 있다.

베르사체 밀라노 본사에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그의 팀이 함께 있다.

 
검게 태닝한 도나텔라 베르사체를 인터뷰한다는 건 그녀의 강력한 영향력에 압도당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탈색한 금발머리, 환한 고양이 미소, 하이힐보다 높은 하이힐, 완벽하게 손질된 손가락에 끼워진 알사탕 크기의 다이아몬드는 그녀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다.
그것은 도나텔라와 베르사체라는 브랜드에 대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매우 여성적이며 섹시하고, 리치한 것. 여기 도나텔라 스타일을 말할 때 ‘리치(reach)’하다는 것은 ‘별들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도나텔라는 얼마 전 밀라노 대신, 제95회 아카데미 어워즈 직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베르사체의 2023 F/W 컬렉션을 선보였다. “흥분됐죠. 정말 좋은 도전이었어요.” 밀라노에 있는 반짝이는 본사(새 건물인 데다 여전히 공사 중이다) 건물의 컨퍼런스 테이블에 앉은 그녀가 말했다. 이 건물은 루이지 에이나우디(Luigi Einaudi, 이탈리아 총리로 우연히도 도나텔라가 태어난 해인 1955년까지 7년을 역임했다)의 이름을 딴 광장에 위치해 있다. 로비 스크린에서는 베르사체의 최근 캠페인 영상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블랙으로 잘 차려입은 이곳 직원들과도 썩 어울리는 영화적 풍경이었다. 오늘 도나텔라는 샤프한 블랙 수트를 입고 있다. 즐겨 신는 플랫폼 힐 위로는 바비인형과도 같은 얇은 허리에서 반짝 빛나는, 메두사 얼굴의 단추가 포인트인 플레어 팬츠가 보인다. 금발 헤어는 결점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마치 오스카 트로피의 골드빛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긴장하고 있다. “저는 언제나 긴장돼요.” 매년 두 번 열리는, 밀라노 스케줄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캣워크 프레젠테이션을 두고 말했다. “패션위크에서는 모두 쇼를 하니까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L.A에서는 저뿐이죠. 모든 관심은(만약 사람들이 주목한다면) 이 쇼에 있으니까요. 실패하면 안 된다고 느껴요. 완벽하게 해내야 하죠.” 그런데 익숙한 활동 반경이 아니라 대체 왜 L.A에서 쇼를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어서요.” 그녀가 말했다. “이건 전혀 다른 경험이니까요.”
그녀의 안전지대로 말할 것 같으면 자신의 말마따나 여기 밀라노다. 오빠 지아니 베르사체가 1972년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던 곳이니까. 그는 1978년 자신의 이름을 딴 컬렉션을 열고 첫 부티크를 오픈했다. 어린 동생 도나텔라가 플로렌스대학교에서 언어 공부를 마치고 그의 브랜드에 합류한 해이기도 하다. 1986년 베르사체는 리졸리출판사가 한때 소유했던, 비아 게수(Via Gesù) 거리에 위치한 4만5천 평방피트의 화려한 바로크 스타일 팔라초를 구입할 만큼 충분히 성공한 상태였다. 베르사체가 이 공간을 구매했을 때 청동으로 주조된 르네상스 스타일의 메두사가 함께 나왔는데, 그는 그것을 브랜드 상징 같은 휘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1997년 그의 죽음 이후 도나텔라는 하우스를 맡아 메두사를 손보고,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베르사체의 맥시멀리즘 미학이 패션의 흐름과 멀어질수록 시련은 더해갔지만, 도나텔라는 힘겨운 사투를 벌였고 결국 정상의 자리를 꿰찼다. “저는 지아니에게 책임감을 느껴요.” 그녀가 말한다. 분명 그는 그녀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2018년 베르사체 패밀리는 하우스의 지분 상당량을 미국 대기업 카프리(Capri)에 약 2조 6천5백30억원에 팔았고, 작년에는 연간 판매 이익만으로 약 1조 3천2백65억원이라는 마법의 숫자를 거뜬히 넘겼기 때문이다.
올해 ‘라라랜드 데뷔’를 하면서 베르사체가 그간 할리우드에서 선보인 적은 없지만 마치 본거지와 같은 느낌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거기 친구들이 좀 있거든요.” 도나텔라가 겸손하게 말한다. 베르사체와 셀리브리티의 관계는 추가 설명이 필요할 만큼 단단히 구축되어 있다. 베르사체는 천문학적인 수치의 돈을 지불하며 1990년대 초 슈퍼모델들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당대 영화와 록 스타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지아니에 이어 도나텔라가 브랜드를 맡은 후 브랜드의 많은 반짝이는 광고 캠페인이 이어졌고, 여기에는 그녀의 친구들과 더불어 마돈나, 엘튼 존, 실베스터 스텔론, 데미 무어, 프린스, 레이디 가가 등 가족과도 같은 멤버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레이디 가가는 2013년 자신의 노래에서 도나텔라를 불멸의 존재로 만든 바 있다. “그녀는 부유하고 금발이지. 그녀는 정말 멋져, 아니 그 이상이야.”
물론 위의 가사는 정확하지만, 한편으론 축소된 표현이기도 하다. 수십 년 동안 도나텔라 베르사체라는 사람은 곧잘 잊혀지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지아니랑 함께 일했음에도 매체들은 그녀를 ‘뮤즈’라는 이름으로 한정시켰고(물론 베르사체 여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는 점에서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오빠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인 반면에 그녀를 향한 시선은 마치 긴 의자에 누워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이나 보낸 사람을 칭하는 것처럼 매우 불공평했다.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가진 가장 큰 오해에 대해 묻자 그녀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지아니가 살아있을 때 제가 일하지 않았다는 것. 금발에 하이힐만 신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돌아다녔다는 것. 제가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말들. 그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뮤즈’가 짜증나는 단어라는 듯 그녀가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한다.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드레스와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스케치. 
 
그렇다면 도나텔라는 당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설명할까. “저는 지아니를 괴롭혔어요.” 그녀가 소리지르듯 말했다. 그리고 웃으며 하우스의 액세서리 파트를 담당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90년대 중반 그녀는 베르사체의 대중적 라인인 이스탄테(Istante)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그녀의 당시 액세서리 라인은 요즘 빈티지 소매상들과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안전 핀으로 장식된 배낭, 장갑과 니하이 부츠, 카보숑 보석이 달린 손잡이가 특징인 실크 프린트의 바로크 핸드백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물론 그녀의 힐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지아니가 하이힐을 만들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신고 걸어다닐 수가 없다면서 낮은 걸 하자고 제안했고, 저는 안된다고 했죠. ‘오빠는 극단적인 디자이너라고. 그러니까 슈즈도 이렇게 가야 하지 않겠어?’라며. 권위를 가진 여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저는 그런 결단을 내렸어요. 물론 오빠가 전진하기 위해서 제가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더 하자, 더 하자’면서 밀어붙였죠.” 
도나텔라는 무엇보다 ‘더’를 좋아하고, 극단적인 것도 사랑한다.(믿거나 말거나, 그녀는 160cm가 살짝 넘는데 앞서 언급한 플랫폼은 그녀를 15cm는 거뜬히 올려준다.) 그녀가 내게 미리 살짝 공개한 2023 F/W 컬렉션 라인이야말로 매우 극단적이다. 날카로운 테일러링이 가미된 의상이 많았고, 크로케 실크로 제작된 부푼 볼가운이 특징적이었는데, 유연한 살색 코르셋 주위를 감싸고 모아진 패브릭이 특히 돋보였다. 이러한 화려하고 입체적인 소재들은 남성을 위한 볼륨감 있는 셔츠로도 만들어졌는데, 이는 90년대 초반 브랜드의 폭발적인 성공을 연상케 했다. 여성 컬렉션에서 가슴과 힙은 꼬임으로 한껏 강조되었고, 패브릭 주름들은 섹시한 굴곡을 돋보이게 했다. 이는 모두 ‘아틀리에 베르사체’(화려한 일상을 사는 0.01퍼센트의 부자들과 프리미어에서 많은 셀리브리티들이 입은 브랜드의 수공예 쿠튀르 라인)에서 활용되던 패브릭 드레이핑 방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패션계는 꽤 오랫동안 스트리트 스타일에서 파생된 것이나 그것을 더 럭셔리하게 만드는 걸 해왔죠.” 도나텔라가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멈추었다. “이제는 쿠튀르로 돌아갈 때입니다. 더 멋진 모습으로 보여주고 힘을 부여하는 드레스로 돌아갈 때예요. 세상에 편승하지 않고 말이에요.”
쿠튀르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의 흐름이라면, 그것은 베르사체의 정수로 돌아가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상을 입고 나 자신을 뽐낼 수 있는 바로 그 레이블 말이다. “지아니는 특히 초반에 이탤리언 저널리스트로부터 섹시한 여성을 위한 옷만 만든다며 비판받고는 했어요. 시크해 보이기 위해서는 지루해져야 하고 눈에 띄지 말아야 했죠. 하지만 그건 지아니가 아니었어요.”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저는 ‘오빠 들어봐. 우리는 여성이 되고 싶고, 남들에게 보여지기를 원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두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대체 세상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했어요.”
분명한 건 도나텔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컬렉션은 최근 몇 년간 특히 더 당당해졌고, 앞서 만들어진 트렌드나 취향에 굴하지 않으면서, 이 복잡한 패션계에서 베르사체만의 주장을 관철시켜왔다. 컬러와 대담한 프린트, 건축적인 실루엣 등 여성의 다양한 체형을 존중하는 의상으로 채워온 것이다. 물론 높은 힐은 빼놓을 수 없다. 도나텔라의 판단으로 만들어진 베르사체의 플랫폼은 큰 히트를 쳤다. 지아니의 과거 최고 인기작에서 가져온, 제니퍼 로페즈가 2000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입은 유명한 정글 프린트 드레스(당시 구글 검색에서 가장 인기있는 검색어가 되었고 결국 구글 이미지의 발명을 초래하기도 했다)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이 그것이다. 2023 F/W 컬렉션은 1997년 지아니의 마지막 아틀리에 컬렉션에서 힌트를 가져왔고, 도나텔라가 스티븐 마이젤과 진두지휘한 2000년대 초반 광고 캠페인 또한 그녀의 무드보드에 붙여져 있었다.
“세상에 나쁜 취향과 좋은 취향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도나텔라가 말한다. “저는 힘 있는 의상을 좋아하는 것이고요. 제가 말하는 힘이란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데 두렵지 않게 하는 것이죠. 1990년대 지아니가 디자인했던 그 시절은 매우 부르주아적이었어요. 수트를 입어야 하고 그레이 같은 컬러에 우아하고 시크해야 했어요. 플랫 슈즈는 저에게 뭐 괜찮았지만요.” 그녀가 마지못해 으쓱했다. 이건 결코 괜찮지 않다는 얘기다. “남성지배적인 사회였어요. 우리는 자유롭지 못했고 보수적이었죠. 여성들은 더이상 섹시하지 않았어요. 저는 지아니에게 밀어붙여서 그걸 하고 싶었던 거예요. 여성의 몸을 찬양하고,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는 데 두려워하지 않게끔 하고 싶었어요.”
 
 
모든 관심이 이 쇼에 있어요. 실패하면 안 되죠. 저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기 위해 자신을 밀어붙이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이건 완전히 색다르죠.
 
도나텔라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무언가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소셜미디어에서 1천만 가까이 되는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고, 그녀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은 그녀 주위에 몰려든다. 그런데 정작 내가 그녀를 향해 셀리브리티라고 말하자 도나텔라는 눈을 굴렸다. “명성 같은 건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플랫폼을 가진 것이 중요하죠. 그들은 항상 제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요즘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성소수자와 같은 움직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적이죠. 지금 시대를 생각했을 때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베르사체는 젊은 성소수자 학생과 크리에이티브한 친구들이 패션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학위 & 멘토링 프로그램을 미국의 패션디자인협회(CFDA)와 함께 운영 중이며, 엘튼 존 에이즈 재단과 함께 기업을 지원하는 일도 진행하고 있다. 도나텔라는 후원과 관련된 자신의 일을 지아니의 유산과 연결하는 행위라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지아니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고, 많은 게이 디자이너들이 숨어있기를 강요받던 시절 자신이 사랑하기로 선택한 사람에 대해 솔직했으니까 말이다.
도나텔라에게 있어서 베르사체는 브랜드 이름이 아니라 가족의 성이기도 하다.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자신의 재임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쩌면 조금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도나텔라는 베르사체에 남아 일할 시간을 세지는 않지만, 오빠가 세상을 떠난 해로부터의 시간은 헤아린다고. 그것은 단지 지아니가 사랑하는 형제였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와 함께 일했던 시간이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그 자체로 소중한 ‘패션 스쿨’이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재단이나 테일러링, 드레스를 제작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저보다 더 많이 알았어요. 하지만 당대 패션계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던 건 저였죠. 여성을 섹시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 결코 나쁜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분명히 도나텔라 베르사체를 뮤즈 이상의 여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이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를 찾고자 한다면, 나는 되도록이면 최강의 하우스를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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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Alexander Fury
    번역/ 이민경
    사진/ Agata Pospieszynska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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