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가 열렸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수장고가 열렸다

보존을 중요시하던 폐쇄적인 수장고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BAZAAR BY BAZAAR 2023.05.02
국립민속박물관 제공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이곳에선 과거와 현재의 문턱을 체감할 수 있다. 시간(示間), 이른바 ‘시간이 보이는 공간’이라는 콘셉트로 수장고를 시간의 켜가 쌓여 있는 공간으로 상정했다. 더불어 개방된 공간과 개방된 소장품이라는 모토가 박물관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먼저 수장고의 시각적 개방감이 박물관의 외형에서 느껴진다. 철골 구조와 커다란 유리창은 미지의 보물을 품은 듯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건물 전체를 꼼꼼히 살펴보면 전통한옥을 대표하는 창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입면에 반영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와 로비에 서면 2층 규모의 수장대가 내뿜는 숭고한 기운에 압도된다. 각양각색의 항아리, 옹기, 단지 등이 아름다운 첫인상을 각인시키는데, 주로 햇빛과 온·습도에 영향을 덜 받는 소장품이 로비의 열린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다. 출입 가능한 열린 수장고는 1층(수장고 4, 5, 6)과 2층(수장고 9, 10, 11)으로 구성된 6개의 수장고와 별도의 수장고가 있다. 사랑방 같은 수장고 16은 소반, 떡살과 다식판, 반닫이 등 일상에서 보던 목재 소장품을 보관하고 있다. 여기에 친근감을 더하는 보이는 수장고도 빼놓을 수 없다. 통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지켜볼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는 3개가 있으며, 수장고 3은 화로·동전 같은 금속 소장품, 수장고 8은 목재 및 초재 소장품을 보관하고 있다. 다양한 민속 기록물을 공유하는 2층 민속 아카이브에서 사진, 영상, 음원 등 자료를 이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민속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공간을 추구하고 있다. 현대 예술품을 소장한 수장고와 달리 민속유물이 품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감성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민속박물관답게 친숙한 장식용구와 옛 추억이 깃든 생활용품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첫 방문이라면 박물관의 관람 추천 동선에 따라 감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국립공주박물관 충청권역 수장고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는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鎭墓獸)다. 신기한 진묘수의 모형물이 세워진 곳에서 좌측을 바라보면 충청권역 수장고가 있다. 2021년 11월 공주박물관에 세워진 이 수장고는 충청 지역의 소장품 가운데 도토기, 기와, 석기 등을 집중적으로 관리 중이다. 열린 수장고와 열린 컬렉션을 추구하는 이곳은 공간 효율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한 이동식 2층형 수장대를 설치해 최대 1백50만 점까지 보관할 수 있으며, 6개의 수장고 중 4개는 직접 관람할 수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모던한 수장고 건물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내부의 접근성을 배려한 설계가 인상적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 아늑함을 자아내는데 지하 1층의 로비에서 올려 봐도 수장고의 매력을 단번에 만끽할 수는 없다. 일단 지하 1층 문화공간 나눔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수장고의 건축 모형, 격납상자와 함께 발굴 유물의 보존 처리, 포장 방법 등을 소개하는 키오스크가 있다. 수장고의 고혹적인 분위기는 오른쪽의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 느껴진다. 2층형 수장대의 높이가 5미터라서 중간층(메자닌)까지 올라가야 수장대 전체(일체형)를 다양한 각도로 파악할 수 있다. 즉 공간은 1층과 M1, 2층과 M2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수장공간 ‘모음’에서는 마한, 백제 유물을 모은 2층형 수장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조심스럽게 수납장을 열면서 기와, 치미 등을 감상할수 있다. 2층 전시공간 ‘누림’에서는 한국 그릇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1만 년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을 터치해 유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그럼에도 특별한 순간은 M(중간층)에서 이동할 때 찾아온다. 수장고 내부를 볼 수 있는 다리를 통해 전체적인 수장 환경을 비롯해 격납장과 소장품을 다루는 작업자의 행위를 지켜보는 묘미가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열린 수장고
작년 10월, 대전시립미술관은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열린 수장고를 개관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수장고는 둔산대공원 내 조각공원의 환경을 보호하고자 지하에 건립했다. 미술관 앞(정면 입구 좌측)에 큐브 형태의 수장고 입구가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술관이나 주변과의 적응을 고려한 것처럼 다소 작은 사이즈의 유리 건물이지만 홀로그램 필름을 붙여 주목도를 높였다. 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며 바깥 풍경을 비추는 모습이 의외로 재미있다. 경쾌한 유리 벽면을 유심히 보면 자음 형태가 보인다. ‘열린’을 시각화하기 위해 자음인 ‘ㅇ’과 ‘ㄹ’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도식화한 후 뮤지엄 아이덴티티로 사용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열린 수장고 1, 2와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993년 대전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프랙탈 거북선〉이 우여곡절 끝에 안식처를 찾았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그간 대전시립미술관 본관 로비에 있던 작품을 수장고 내 전용 전시실로 이전해 엑스포에서 선보인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본관 로비에서 높은 천장과 어울린 모습이 웅장했던 반면 전용 전시실은 3백9대의 모니터 속에 거북선의 형상을 재생해 프랙탈 구조를 완성한다는 취지를 잘 살리고 있다. 화려한 네온과 모니터 속 영상이 바닥과 벽면으로 번져나가면서 무한히 반복되는 프랙탈의 재순환을 상기시킨다. 작품 보존을 위해 하루 2시간 가동한다. 3월까지 진행된 개관전 «예술의 자리»에서는 소장품 1천3백57점 중 73점을 먼저 공개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을 열린 수장고로 옮기면서 각각 크기와 형태, 재료에 따라 자기만의 고유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함축했다. 수집한 작품은 주로 신소장품 전시나 기획전을 통해 짧게 선보였지만, 앞으로는 상설관의 역할을 겸하는 열린 수장고에서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공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품수장센터
청주의 옛 연초제조창이 수장고로 거듭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수장공간의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도시재생 사업으로 부활한 곳에 터전을 마련해 장소의 기억까지 담아내고 있다. 어느새 5년째를 맞이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품수장센터는 개방과 소통을 표방한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으로, «보존과학자 C의 하루» «전시배달부» 등 수장고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특화 전시로 인정받았다. 개관 이후 열린 수장고를 개편(2020년 11월)하면서 조각이라는 매체가 가진 물성을 강조해 수장고 속 작품들을 재배치하기도 했다. 1층 개방 수장고의 주인공은 조각이다. 자연 재료를 활용한 전통적인 조각부터 플라스틱이나 일상 오브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되는 현대 조각에 이르기까지 1백7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과 공간을 체험하는 수장고의 특성에 맞춰 연대별, 재료별 분류로 조각을 살펴보는 것은 2026년까지 지속된다. 조각작품에 최적화된 시설답게 조각의 역사와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2층 보이는 수장고는 ‘이건희 컬렉션’에서 국내 예술가의 주요 대표작을 선정해 보여주고 있다. 저반사 유리를 통해 수장고의 작품을 생생히 감상하는 동시에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개방 수장고에서 많은 작품을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분주했다면 이곳에선 몇 작품만 바라보며 집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사색의 공간이라 부르고 싶다. 3층 개방 수장고에서 선보이는 «디지털 스토리: 이야기가 필요해»는 1층 조각 중심의 구성과 달리 사진과 영상, 설치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상작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시를 구성했으며 올해 말까지 진행된다. 청주 미술품수장센터는 전시형 수장고와 수장형 전시가 모두 가능한 곳이다. 여기서 상상하고 실험하는 것들이 개방형 수장고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서울공예박물관 보이는 수장고
사라져가는 것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예술적인 가치가 빛나는 직물 공예를 보관하고 보존 처리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사전가직물관) 4층에 위치한 보이는 수장고다. 여기엔 보존과학실이 함께 마련되어 있다. 2021년 개관과 함께 «한국의 공예, 매듭»이라는 제목으로 노리개, 주머니 등 다양한 매듭 관련 소품과 수장고 보관 상태를 보여주는 전시를 진행했다. 다채로운 색채와 문양이 돋보이는 아기자기한 소장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작년 6월부터는 «보이는 수장고, 직물 자료의 가치를 높이다»라는 제목으로 작업환경과 직물 자료 등록 및 정리 활동을 소개 중이다. 수장고 안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하는지 혹은 직물 자료를 포장한 재료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관람객이 많아서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경우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수장고의 경우 소장품은 대부분 오픈되어 있다. 이와 달리 공예박물관의 수장고가 보관하는 직물 자료는 일광견뢰도(빛에 대하여 염색물의 색이 변하지 않고 견디는 정도)가 좋지 않아서 대부분 포장된 상태다. 전시3동의 2~3층에 넓은 전시실이 있기 때문에 전시실은 소장품을 소개하고, 보이는 수장고는 안정적인 보관 관리에 집중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고 있다. 주요 자료로 조선시대 자수품과 보자기, 무형문화재 보유자 작품, 국내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최경자, 앙드레 김의 의상 등이 있다. 먼저 상설전시실에서 알록달록한 색의 향연에 푹 빠져보자. 2층 전시실 ‘자수, 꽃이 피다’에서는 문양의 의미와 자수기법에 집중하고, 3층 전시실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에서는 보자기의 크기와 소재, 다양한 용도를 살펴본다. 최종적으로 직물 자료에 온기와 활력을 더하는 과정(예방 보존 및 복원)을 보는 행운은 전시3동이 숨겨 놓은 히든 카드에 가깝다. 무엇보다 보이는 수장고는 관람객의 참여와 적극적인 정보 활용으로 완성된다. 수장고는 평일(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에만 운영한다.  
 
전종혁은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숨겨진 미술관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에는 전국의 수장고를 돌면서 봄맞이를 했다. 벚꽃을 잊고 수장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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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전종혁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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