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cade Seoul
문래동의 오래된 철공소를 리모델링한 아케이드서울은 동네에서도 유독 눈에 띈다. 건물은 이웃 철공소와 똑같은 구조의 내부 골조를 살렸지만, 외관은 거리의 풍경과 부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레노베이션을 진행했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나란히 자리한 두 건물이 문래동의 과거와 현재를 타임라인으로 표시한 듯 생경함이 느껴진다. 전시 기획 집단 TTTC 스튜디오가 운영하는 아케이드서울은 과거 홍대에 문을 연 이력이 있다. 홍대 아케이드서울이 패션 리테일 숍과 카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 5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었다면, 이곳은 전시에 집중한다. ‘아케이드’라는 키워드 역시 공간의 맥락을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 19세기 파리에서 아케이드의 의미는 새로운 상품을 전시하는 장소이자 당대 유행을 선도하는 이들의 산책로를 뜻했다. TTTC 스튜디오는 미학자 발터 벤야민의 시각을 빌려, 아케이드를 미화하기보다 도시인들의 다양한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로 묘사한 것에 주목했다. “한 걸음 떨어진 산책자의 시선에서 아케이드를 해석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저희의 역할 또한 한 발짝 거리를 둔 채 쇼핑·전시·팝업 산업의 욕망을 묘사하고 기록해나가는 것입니다.” 윤여울 큐레이터의 말이다.
개관전으로 작가 김선익의 개인전 «임시정원»에 이어, 두 번째 전시로 몬킴의 사진전 «View from My Window»가 개최됐다. “도시 곳곳에서 발견하고 편집한 자연을 씨앗처럼 전시장에 흩뿌린 «임시정원»전이 문래동 특유의 거리 분위기와 맞닿아있다면, 도시와 남성을 기록한 몬킴 작가의 전시는 거리의 풍경과는 다소 낯선 이 공간의 존재처럼 이미지가 주는 반전이 있어요. 창작자와 기획자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과의 위계도 다르게 배치한다는 개념을 따르지만 전시, 공연, 파티 플레이스 등 이 공간에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기록해나가고자 해요. 다양성을 실험하는 장소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128길 23


MPa Gallery
수많은 팝업스토어가 줄지어 생겨났다 사라지는 서울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동네. 더 이상 발굴될 공간이 더 있을까 싶던 성수동의 한 골목에 MPa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패션 브랜드 플라스틱프로덕트를 전시라는 매체로 보여주는 갤러리이자 쇼룸이다. 공장과 제조 관련 사무실이 밀집한 건물에 위치한 MPa갤러리는 외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유일한 공간. 낡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여기가 맞나’ 싶은 의심이 들 때쯤 갤러리가 나타난다. 원래 날염공장이 있던 자리다. “텅 빈 느낌을 유지한 채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위적인 디테일을 최소화하면서 이전에 사용하던 미감을 가져가고 싶었기에 로케이션을 결정한 것만으로도 공사의 절반이 진행된 것 같았죠.” 플라스틱프로덕트 서민철 대표의 말이다.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 시각적으로는 건조하고 폐쇄적이면서도 넓은 규모의 공간을 찾다 건물주를 설득한 끝에 원하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최소한의 철거 후 본래의 마감을 정비해 활용하는 베를린의 갤러리들에서도 영향받았다.
플라스틱프로덕트가 쇼룸을 갤러리 형태로 선보이게 된 배경은 그간의 행보를 살펴보면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룩북이나 필름으로 정체성을 보여주려 하는 여느 브랜드와 달리 시각매체만으로 자신들을 설명하거나 설득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해 플랏엠과 협업해 캐노피 형태의 설치물을 만들기도 하고 매거진 〈Plastic Product:Zine〉도 펴냈다. MPa갤러리는 첫 번째 전시로 최병석 작가와 협업한 «Scratch Water»전을 기획했다. “2019년에 선보인 최병석 작가의 〈아무것도 아닌〉이라는 작업을 보고 협업하고 싶다는 바람을 지녀왔어요. 사소한 것들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추구한다는 점도 비슷했죠.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포괄해 물을 긁는다는 뜻의 전시명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물의 기능과 용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최병석 작가는 오직 이 공간을 위한 신작을 탄생시켰다. 벽에 걸린 기다란 행어로 스위치를 끄고 공간의 전파량을 수집하는 작품은 무용한 것에서 유용함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떠올리게끔 한다.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89, 4층


The WilloW
어떤 공간은 방문자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는 신묘한 힘이 있다. 경동시장 한 가운데 난 투명한 출입문을 열면 일순간 사위가 고요해지는 곳이 나타난다. 더 윌로는 ‘스튜디오 익센트릭’을 이끄는 공간 디자이너 김석훈과 전시 및 공연 기획자 신재민이 운영하는 예술 공간으로 1955년 지어진 옛 사료창고가 그 전신이다. 사료창고가 생겨나고 5년 후인 1960년부터 경동시장이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했으니, 이 건물은 경동시장의 탄생을 지켜본 몇 안 되는 목격자이기도 하다. “6·25전쟁 이후 서울로 온 외조부께서 손수 지은 곳이에요. 사료를 비축할 공간이 필요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려 어렵사리 마련한 2층 규모의 건물이죠.” 상업 공간을 선보여오던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 이 공간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파트너이자 큐레이터인 아내 신재민의 첫 전시 경험은 더 윌로의 쓰임을 지금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9년 전 큐레이터로서 첫 전시를 시장 안에 있는 예술 공간에서 열었어요. 연남동 동진시장 안에 위치한 ‘MAKSA’라는 곳이었죠. 이런 공간은 예술가, 기획자들에게 다루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지만 도전정신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68년이라는 시간의 레이어를 현대적 시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내는 작업과 결합해보고 싶어요” 신재민 큐레이터의 말이다. 전시와 공연을 진행할 때도 공간을 크게 변형하거나 훼손하는 설치는 지양한다. 8월 정식 오픈을 앞두고 프리 오프닝으로 선보인 아티스트 박소희와 안무가 이양희의 개인전 역시 공간의 특성을 활용한 방식을 따랐다. 더 윌로는 공간의 의도와 방향성에 맞는 전시와 공연을 세심하게 큐레이션해 소개할 예정이다. “재래시장에 위치한 예술 공간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알 수 있듯 상충하는 요소들 간의 충돌 지점에 주목하고 믹스앤매치를 추구하는 곳입니다. 예술작품을 관람한 후 밖으로 나오면 느껴지는, 다시 삶과 연결되는 낯선 감각에 촉을 세워보세요”
서울시 동대문구 고산자로 36길 38, 2층

PFS:GALLERY
평일 오후 한갓진 밀도를 기대하고 갤러리를 찾았다가 북적이는 인파에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갤러리의 문턱이 높게만 느껴진다. PFS:갤러리는 ‘일상 속 예술’을 지향하는 곳으로 패션 브랜드 피그먼트를 전개하는 케이컴퍼니가 운영하는 예술 공간이다. 성수동에 이어 최근 용인에 두 번째 문을 연 갤러리는 오픈형 수장고 형식을 따른다. 성수동 갤러리에서는 매월 2명, 한 해 총 24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다양한 국내 작가를 알리고 후원하기 위해 전시 작가들의 작품을 매입해 소장해왔다. 전속 작가와 후원하는 작가들의 작품만 해도 방대한 규모. 오픈형 수장고에서는 컬렉팅한 작품을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또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보관하는 데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데 이를 대신하는 역할도 한다. 김남일 대표는 사옥을 이전하면서 미술관 형태의 사옥을 구상했다. “건물에 곡선을 줘 색은 어둡지만 부드러운 힘을 지닌 공간을 의도했어요. 내부에 들어왔을 때 위화감 없이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평소 홍콩의 오래된 빌딩에 여러 갤러리가 입점된 형태를 인상깊게 여겨 수장고를 구상할 때에도 다채로운 공간 구성을 고심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계단을 내려오며 각 층의 작품과 건물의 질감을 감상해보자. 맨 마지막으로 지하 수장고에 가 작품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서 정화되는 감정들을 지켜보는 여유를 가져보길 추천한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