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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소호는 성차별, 약자 혐오 등 가부장제 사회의 어두운 잔재를 거침없이 노출하며 동시대의 윤리 회복을 호소한다. 그의 세번째 시집은 “홈 스위트 홈”이라는 표제를 통해 원초 집단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해부한다. 가정(家庭)은 안전한 울타리로서 작동하지 않는다. 정서적 안정의 기반이 되어야 할 가족 구성원은 시적 화자인 ‘나’를 향해 소음에 가까운 목소리를 산발적으로 내지르며 억압과 통제로써 멸시를 드러낸다. ‘나’의 판단에 앞서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이러한 1차 집단 내 타자의 행위는 주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한 속박과 병적인 유착으로 망가진, 2차 집단 구성원의 탄생을 예고한다.

민음사 제공
스물에 등단한 시인 신달자는 팔순에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을 펴내어 나이 든 몸의 고통을 그려낸다. 늙어 가는 몸에서 비롯되는 찌르는 통증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시인의 하루는 몸을 어르고 달래는 일로 채워진다. 얼음과 숯불 사이를 오가며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전쟁과 평화가 있는’ 부엌은 원숙하고도 고통스러운 노년의 삶에 대한 비유다. 하지만 그는 “내 것인데 내 말을 잘 안 듣는 육신”을 미워하기보다 앓는 몸을 보듬는다.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은 노년의 시인이 생을 반추하며 써낸 회상록이자 자기 몸을 마주하고 받아쓴 솔직하고도 깊은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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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은 ‘먹고, 사고, 사랑하고’ 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서 출발했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적힌 문구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지금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져요.”가 귀띔하듯, 이 책은 시인의 사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재운 보늬밤조림, 다섯 모금짜리 뱅쇼, 코코넛칩과 연유가 올라간 바나나튀김, 하트 모양 초를 꽂은 케이크. 그가 꺼내놓은 이 기억조각들에는 이별, 아픔, 슬픔이 담겼다. 때로는 달콤함으로 아픔을 멈추게 하고, 때로는 달콤하기에 그리움으로 남는 것. 달콤과 쌉싸름을 오가는 이 이야기들은 곧 시인의 가장 내밀한 고백이자 우리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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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을 위해, 사랑을 위해 살았다”고 고백하는 패티 스미스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는 〈P.S.데이스〉. 그의 인스타그램(@thisispattismith)에서 탄생한 만년의 회고록이자 70여 년간의 경험이 녹아든 함축적인 수필이다. 공연의 세트리스트를 짜고, 외계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상상 속에서 방 청소를 하고, 마치 여행을 떠나듯 부츠를 신은 채 글을 쓰고, 스물한 살 고양이 카이로와 레몬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등 소박하고도 독특한 그의 일상을 비롯해 시대를 공유한 예술적 동지들과 나눈 추억, 동반자 프레드 소닉 스미스에게 보내는 헌사와 일찍 세상을 떠난 연인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향한 애틋한 인사까지 담겼다. 366장의 사진들은 ‘1970년대 미국 펑크록의 아이콘’의 진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