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a Rothstein, 〈Untitled〉, 2023, Chitosan bioplastic with pigment, 22.86x22.86x17.78cm. Photo by Lia Rothstein
작가가 연구한 녹말 바이오플라스틱. Photo by Rob Strong
사라지는 조각
바이오플라스틱을 조각의 주재료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조각물이 분해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동시에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예술가들이 작품 제작을 위해 사용하는 재료가 환경 오염을 가속화시킨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었는데, 토양에 묘목을 심을 때 플라스틱 용기 대신 바이오플라스틱을 사용한 사례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바이오플라스틱(bio-plastic)은 동식물 등 생물 자원에서 추출된 물질로, 석유나 천연 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에서 유래하는 플라스틱과는 달리 친환경적이다. 이를테면 아크릴 물감은 배수구를 통해 씻겨 내려가거나 매립지로 운반될 때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며 몇 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나. 특정 조건이 충족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생분해되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이전에는 돼지 내장(gut)을 활용했다. 최근에 작업한 작품을 소개한다면?
조개에서 추출한 키토산을 이용해 원단에 붓질하고 잉크로 톤을 맞춘 뒤 캐스팅한, 라이트웨이트(light-weight) 조각작품 〈Fluid Dynamics〉를 제작했다. 재생 가능한 자원에 대한 나의 연장된 호기심이 일으킨 연구 결과다. 키토산은 토양과 물에서 비교적 빨리 분해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기후변화가 수면 아래 생명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해초, 스피룰리나, 젤라틴, 옥수수 전분, 감자 전분, 카사바, 칡, 키토산 등을 사용했다. 주로 현재 거주 중인 뉴잉글랜드의 시골에서 접할 수 있는 천연 재료를 모아 사용하는데, 한 가지 재료를 단독으로, 또는 여러 가지를 조합한 후 가열시켜 녹인 다음 틀과 형태를 만들어가는 식이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조합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지만, 조각의 내구력과 반투명성은 늘 염두에 두는 대상이다. ‘결국에는 사라지는’ 이 작품들을 통해 생명의 취약성과 초월성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영원하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한다.
Jesse Hickman, 〈Within Us〉, 2022, Burlap bag, 147.32x325.12cm.
Jesse Hickman, 〈All The Horses Mouths〉, 2023, Burlap bag, 203.2x386.08cm.
커피 포대를 활용해 작업 중인 작가의 모습. Photo by Annie Comperchio
커피 포대의 변천사
대형 커피 포대를 페인팅의 주재료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가난한 예술정신이 위대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예술운동 ‘가난한 미술(Arte Povera)’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폐기되거나 용도 변경된 재료들을 최대한으로 사용하자는 취지다. 물론 현재 거주하고 있는 미시간 호수 인근 노스포트의 카운티가 환경 보호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여 자연스럽게 탄소발자국에 대해 고려하게 됐지만, 커피 포대를 예술 재료로 사용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에서 비롯됐다. 자주 가던 커피 매장에서 얻은 자루를 어떻게 활용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집 앞 마당 닭장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닭장 뼈대와 포대를 활용해 대형 조형물을 제작해보고자 했다.
대형 나무를 사용하는 점도 흥미롭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미시간 트래버스 시티에 위치한 유기농 자유무역 커피 로스터인 ‘하이어그라운즈 트레이딩 센터’는 다양한 커피 포대를 소유하고 있다. 그 위에 새겨진 접합선이 내가 작품의 단면 크기를 결정짓는 요소다. 이들을 합쳐 스테이플러로 고정시키고 꿰매며 다양한 조각 형태를 만든다. 때때로 나무틀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제분소를 방문한다. 버려진 나무 조각을 엄선하는 과정을 거친다.
포대를 활용한 작품 시리즈 〈Ghost of My Omissions〉의 연장선에 있다. 미니멀한 추상 페인팅과 조각품을 제작하고 있다. 표면 위에 새겨진 라벨링, 찢긴 흔적과 얼룩은 각 작품에 역사를 추가하며 작품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Joana Schneider, 〈Future Fossil Royal Blue〉, 2023, Discarded rope, rescued yarn, 150x160cm. Photo by Pearl Sijmons. Courtesy to Rademakers Gallery.
플루이스 앞에 선 작가의 모습. Photo by Pim Top
낚시 밧줄에 담은 자연
낚시 밧줄을 조형물의 주재료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한 이후, 북해의 기후와 자연에 즉시 매료되었다. 특히 낚시꾼들이 그물에 묶는 밧줄인 플루이스(pluis)에 관심을 두게 됐는데, 이것이 북해 전체 폐기물의 약 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심각성을 알리고자 플루이스를 비롯해 페트병으로 제작된 PCR 실과 어망 등 산업폐기물을 중점적으로 사용하여 설치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장인들의 노동집약적인 기술을 활용한다. 그물 만들기나 갈대로 지붕을 덮는 작업 같은 전통적인 관행을 차용하고 있다.
핵심은 자수, 코바늘, 태피스트리와 같은 기술을 돛단배의 네트와 그물 만들기 기술과 결합하는 것이다. 거친 텍스처인 밧줄은 PCR 실로 감싸면서 완화되는데, 새로운 촉감과 미관상으로 아름다운 결과물을 낳는다. 이로써 나는 시각적, 전술적 그리고 냄새, 세 가지 요소를 설치작에 모두 넣으며 ‘자연’을 담는다.
생트 앤 갤러리의 «Spatial Green Garden»(2021) 전시를 통해 일본의 젠 정원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러한 개념적 탐구를 하던 중,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인근에 위치한 중세 수도원 ‘파조 데 산 로렌초 데 트라수토’의 울타리를 발견했다. 형태를 출발점으로 삼아 〈Komodo Dragon〉(2023), 〈Pond Slider〉(2023)와 같은 유기적인 모양의 태피스트리 시리즈를 제작했다. 또 다른 예는 〈Vertical Garden Zantedeschia〉(2023) 시리즈다. 색상은 잔데스키아 백합에서 직접 영감을 받았으며, 겹겹의 레이어로 중첩된 실을 자르고 여는 작업은 마치 꽃의 개화 과정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