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슬 컬처 VS 조용한 사직 〈일놀놀일〉 저자 김규림, 이승희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만 하자.” 극단적 DNA를 지닌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자아와 노는 자아가 분리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마케터 이승희와 김규림. 배달의민족 브랜드 마케터로 유쾌하게 본업을 잘해온 이들은 백수 기간 동안 ‘무소속 백수 듀오’ 두낫띵클럽으로 활동했다. 최선을 다해 몰입하며 일한 경험은 일을 즐거운 행위로 만들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각자 다른 IT기업에서 재택 근무를 경험한 두 사람은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수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두 사람은 MZ세대 직장인의 롤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토록 일을 즐기는 태도에는 색다른 조직문화를 시도한 배민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을 듯한데.
이승희(이하 이): 우리가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던 비법은 절반은 조직의 공이지만, 절반은 문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다. 이직을 하고 여러 번 다른 회사와 협업하며 깨달은 건, 주어지는 일을 좀 더 흥미로운 상태로 만드는 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실이다. 분명 배민이라는 조직 안에서 우리는 즐거웠지만, 여느 회사가 그렇듯 조직 문화가맞지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김규림(이하 김): 우리 또한 ‘워라밸’을 전혀 지키지 못한 시기가 있었는데, 정작 일을 하는 우리보다 사람들의 우려로 인해 되려 ‘나는 지금 잘못된 삶을 사는 게 아닌가’ 고민한 적이 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봤는데 괜찮더라, 오히려 재미있더라” 이런 이야기를 넌지시 건네고 싶다는 바람으로 책을 지었다.
‘조용한 사직’이라는 신조어를 들어봤는지? 일을 위해 휴식 시간의 대부분마저 할애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이 키워드의 대척점에 있는 ‘허슬 컬처’와 맞닿아 보인다. 두 사람이 허슬러라는 사실을 인정하나?
이: 인정한다.(웃음) 요즘은 평균을 낼 수 없는 시대이지 않나. 신조어로 떠오르지만, 사실 과거에도 ‘조용한 사직’의 태도로 일을 한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월급루팡’이라는 단어도 심심찮게 써왔고. 나이 지긋한 분들이 받은 만큼만 일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평생 최소 8만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이런 현실은 비극과 다름없다. 김: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가 이내 안타까워졌다. 일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쥐도 새도 모르게 하고 일상에 집중하겠다라는 개념은 극단적인 형태로 ‘워라밸’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닐까? 다시 말해 영혼이 없는 상태로 9투(to)6를 보내는 상태일 텐데, 나의 관점으로는 한 번도 일을 통해 즐거운 성취를 느끼지 못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평생 직장이 없어진다는 개념, 높아진 퇴사율과 빈번한 이직 역시 요즘 세대의 특징이다. 이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는?
김: 경기침체로 인해 ‘존버모드’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제 대퇴사를 감행하기 보다는 ‘조용한 사직’의 상태로 불만족스러운 현 상황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지 않을까. 이: 팬데믹은 각자가 지닌 실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결정적 사건이라 생각한다. 퇴사 이후에도 살아남을 자신감을 지니고 회사를 박차고 나간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결정을 증명하기 위해 부정적인 후기를 쉽게 공유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는 이들은 매일 “회사 싫어”를 외치지만, 결코 퇴사하지 않는다.(웃음) 대신 개선의 목소리를 내다보니 오피스 문화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 같다.
김: 현재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주5일 재택이 가능한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마케팅팀 특성상 화요일과 목요일에 만나 팀빌딩을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머지 3일은 집에서 일한다. 이: 우리 회사는 6개월 단위로 주3회 출근하는 ‘오피스 타입’과 완전 재택을 할 수 있는 ‘리모트 타입’ 두 가지 중 고를 수 있다. 나는 전자를 택했지만 집이 가까워 사실 매일 출근한다.(웃음)
이: 책에도 썼듯 비대면 업무로는 상대의 표정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비언어적 표현을 할 수 없으니, 이모티콘 사용을 정말 많이 한다. 동료에게 내가 받고 싶은 이모티콘을 마구 선물하기도 하고. 김: 마케터나 창작자들은 실없이 수다를 떨다가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재택 근무 중에 그런 상황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과 공유하기 좋은 구글 독스나 그룹 채팅방을 아예 영감을 공유하는 곳으로 정해두고 그때그때 인상 깊은 이미지와 문장을 각자 올려둔다.
이: 앞으로는 보안과 통신 시스템을 편리하게 제공하는 오피스가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재작년 네이버 마케터로 입사하며 신입사원 워크숍과 조별 과제를 모두 메타버스로 진행하기도 했다. 줌 미팅도 4개의 방을 연속으로 오가곤 했는데, 기업들이 이런 환경을 얼마나 매끄럽게 구축할지가 차별화될 것 같다. 김: 재택을 경험한 조직이 다 큰 어른들을 주5일 강제적으로 오피스로 부르는 건 더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오프라인 오피스에 가면 더욱 매력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지 않을까. 한 공간에 모여 일을 하고 싶도록 현혹하는 회사가 늘어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