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의, 워커에 의한, 워커를 위한 현재진행형 변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워커의, 워커에 의한, 워커를 위한 현재진행형 변주

오피스 빅뱅은 일시적인 트렌드일까?

BAZAAR BY BAZAAR 2023.01.06
 
최근 이직을 준비하던 절친 A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누구나 알 법한 이름의, 복지 좋기로 유명한 대기업 계열사와 어느 중견 기업의 디자이너 직. 그는 후자를 택했다. 예상 밖의 결정이었다. 이유를 묻자 간명한 답이 돌아왔다. “난 집에서 일하는 게 잘 맞아.” 헤드헌터가 제시한 연봉은 다소 차이가 났지만, 교통비로 상쇄 가능한 수준. 전자는 주 3회 출근, 후자는 완전 재택이라는 점이 달랐다. 반면 한 달 전 이직을 한 나는 코로나가 정점을 찍던 시기에도 주 5일 매일 출근하던 루틴을 벗어나, 월요 재택 근무를 소소하게 만끽 중이다. 판교 소재 IT기업에 다니는 또 다른 친구 B는 2주간 몰아서 집중적으로 사무실을 나가야 하기에 다음 주까지 약속을 잡기 어렵다고 말한다. 집에 있다 출근하면 평일 약속이 더 피곤하다나. 그는 재택 기간 동안 집에서 5분 거리인 사내 식당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테이크 아웃하기 위해 사원증을 챙긴다. 전염병이 변화시킨 풍경은 이토록 개별적이다. 하루 중 1/3 이상 노동한다는 명제는 같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저마다 다른 오피스 환경이 주어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재택 근무가 종료되자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기 싫어 이직 준비 중이라는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 속 글은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3년간 집 안을 윤기 나도록 쓸고 닦으며 일하다가, 이마저 지겨워지면 제주로 강릉으로 ‘워케이션’을 떠났던 이들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공간은 기업이 가장 손쉽게 시도하는 가시적인 복지다. 레지던스(residence)와 커머셜 (commercial)을 결합해 집처럼 상업 공간을 꾸미는 ‘레지머셜(resimercial)’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스며들고 있다. 무제한 맥주와 스낵, 푹신한 색색의 소파를 배치한 공유 오피스 라운지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할 자유’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기업은 경쟁하듯 한껏 유연해진 근무 형태와 다양한 공간을 공급하고 있다. 어느 기업이 어떤 제도를 확충한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수도권 내 여러 지역마다 대기업의 이름을 단 거점 오피스가 생겨나고 보수적인 금융 기업마저 재택 근무의 비중을 50%까지 늘리는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환경의 변화는 사고의 틀마저 바꾼다. 사람들은 하이파이 스피커로 유튜브 뮤직을 노동요로 틀어놓거나 세로 듀얼 모니터로 디스플레이를 설정하는 등 어떤 루틴이 자신의 업무 효율을 최상의 상태로 높이는지,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워커들은 역설적으로 회사라는 조직을 더욱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팬데믹 이후 실시된 미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1989년 이후 태어난 MZ세대 직장인 중 소속감을 느끼는 비중은 31%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반면 업무에 대한 몰입과 스트레스로 번아웃을 겪는 비율은 사상 최대다. 내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회사라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대퇴사’ 열풍 그리고 미국 20대 엔지니어 자이들플린의 틱톡에서 발화된, 받은 만큼 일한다는 ‘조용한 사직’ 논란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몇 해 전 개인의 성향과 회사 이후의 삶을 중시하던 ‘90년대생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들은 이제 이들의 후임인 ‘00년대생’을 맞이할 차례다.
‘오피스 빅뱅’이라는 어쩐지 혼종에 가까운 이 키워드는 한두 가지 사례로는 도무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근로자들의 현 상황을 대변한다. 이 다발적 현상은 과연 ‘빅뱅’이란 표현만큼 파괴적일까? 일시적 트렌드일까? 100% 리모트 워크는 오직 개발자와 프리랜서만의 것일까? 일을 하는 공간, 일을 하는 방식, 일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까지. 현실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File 1.  

‘비정규직 정규직’이 있다면
플렉스웍 CEO 임태은    
리모트 워크에 특화된 일자리 플랫폼 ‘플렉스웍’은 시간과 장소를 원하는 방식대로 설정하고 싶은 워커들과 인재가 필요한 기업을 연결한다. 하루 4시간 일하는 시간제 정규직이란 유니콘도 이곳을 통하면 현실이 된다.
 
플렉스웍을 창립하게 된 계기는?
시작은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의 커리어 문제때문이었다. 워킹맘으로서 23년간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왔는데, 임원이 되고 난 후 퇴사하는 직원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20년 전 내가 겪은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더라. 팬데믹 이전에도 미국에는 버추얼 CFO, 원격 CS 전문가 등 리모트 워크 직군이 생각보다 많은 현황을 확인했고, 이를 국내 실정에 맞춰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기존 구직 사이트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리모트 워크 구직자 대다수가 일반적인 채용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다. 완전 재택 근무 형태를 찾기 위해 필터링하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각 직군마다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식으로 채용 방법이 분산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제주에 거주하는 개발자의 그룹 채팅방에는 약 9백여 명이 접속해 있으며 그때그때 구직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다. ‘크몽’같은 프리랜서 고용 플랫폼은 단기 프로젝트 위주. 리모트 워크 형태로도 정규직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사이트를 고안했다.
채용 시장의 인상 깊은 변화를 꼽아본다면?
현재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개발자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원격으로 일을 하는 상황이 흔하다. 국가마다 화폐가치가 달라 베트남 개발자가 싱가포르에 채용되면 훨씬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싱가포르는 인재를 고용할 수 있어 기업도 구직자도 ‘윈윈’인 상황. 기업들의 채용 방식에 대한 실험 또한 인상적이다. 89개국 1천8백여 명의 직원을 모두 원격근무 형태로 고용하는 미국 IT기업 오토매틱의 경우, 채용 과정에서 텍스트 면접을 진행한다. 글로 자기 의견을 정확히 표현하고,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지가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요즘 리모트 워커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보나?
급여만 맞으면 꼭 큰 기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줄고 있다. 최근 여러 대기업을 거친 한 디자이너가 우리에게 내건 조건은 단 하나.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일할 수 있는 기업이었고, 단기 프리랜서 고용에 지친 어느 건설사를 설득해 정규직을 매칭했다. 한편 글로벌 기업들은 자신과 합이 맞는 구직자인지 알아보기 위해 입사 전 1~2주간 업무를 같이 해보는 프리워크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언뜻 들었을 때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자신의 스킬에 자신 있는 구직자일수록 이를 기회로 삼고 적극 활용한다.
리모트 워크가 지닌 잠재력은 무엇인가?
‘형평성’으로 접근하는 대신 ‘다양성’으로 바라보면 많은 제약이 사라진다. 삶의 형태가,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다양한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시간제 정규직’ 개념은 국내에서 약 10년 전쯤 경력단절 여성들의 비율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적이 있지만, 당시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통근 시간 때문이었다. 2~3시간씩 출퇴근을 해 4시간 일하는 게 누가 보아도 비효율적이었으니. 하지만 원격 근무에는 최적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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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안서경
    사진/ 이현석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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