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인처럼〉의 세계적인 성공에 힘입어 얼마 전 그녀의 에세이 〈나, 프랜 리보위츠〉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글 안 쓰기로 유명한 유명 작가’라는 〈가디언〉의 표현대로 원래 그녀의 본업은 작가다. 택시기사, 청소부, 포르노 작가 등으로 일하다 앤디 워홀이 창간한 잡지 〈인터뷰〉에 칼럼을 기고하며 글쟁이로 자리매김한 프랜은 특유의 문화 풍자 칼럼으로 주목받았다. 이 책은 그간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 글을 묶어 펴낸 〈대도시 생활〉(1978), 〈사회 탐구〉(1981) 두 권을 다시 엮은 것이다. 1980년대 뉴요커의 불평불만이 2020년대 서울을 살아가는 나에게 일종의 대도시 생활 백서로 읽힌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내가 밑줄 친 목록은 아래와 같다.
1. 극단적인 날씨
몇 년 전부터 뉴욕에 사는 지인이 제기한 이론(이라 쓰고 유사과학이라 읽는다)이 있다. 서울과 뉴욕의 날씨 동기화 학설이다. 뉴욕에 사는 한인들 사이에서 회자된 우스갯소리인가 본데 꽤 그럴듯하다. 위도가 비슷하고 대륙의 동쪽 해안에 인접한 서울과 뉴욕은 날씨가 똑 닮았다. 3월 말 서울에 폭설이 내리면 같은 시기 뉴욕에도 폭설이 내리고, 한여름 뉴욕에 폭우가 쏟아지면 영락없이 서울도 물에 잠긴다. 거짓말 같다고? 지금 당장 서울과 뉴욕 날씨를 확인해보면 우주의 기운이 두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10월 12일 오후 2시 서울은 영상 18도의 청명한 가을. 참고로, 어제는 여름이었고 엊그제는 겨울이었다. 당장 뉴욕에 사는 지인에게 날씨를 물었다. “오늘 낮 기온? …20도였네. 요 며칠 덥고 춥다가 간만에 완연한 가을이더라.” 역시. 서울의 한영수와 뉴욕의 사울 레이터 사진 속 눈이 그토록 같은 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때는 유의미한 지분을 갖고 있던 봄과 가을은 이제 여름과 겨울의 눈치를 보다가 몰래 야반도주하는 실패한 투자자 같다. 프랜의 봄에 대한 묘사는 이런 우리의 가설에 한 번 더 힘을 실어주었다. “풍문에 따르면 겨울과 여름을 구분하는 계절이고 뉴욕에서는 상당히 신화적인 개념이며, 일부 극소수의 무리는 이에 매혹된다. 4월경에는 예술감독들과 심미적 사실주의자들이 스웨터를 벗으며 털갈이하고, 몸이 무척 탄탄해 보이는 젊은 남성들은 다음 가을의 시즌 컬러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롱아일랜드 동쪽의 부동산 가격이 날카롭게 치솟는 반면, 이성과 선의 수위는 점차 낮아진다.”
2. 참을수 없는 공공 예술(?)
지난주 모 백화점 화장실에 갔다가 끔찍한 경험을 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자 마자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다. 바흐의 ‘골드베르크’였던 것 같다. 중간중간 글렌 굴드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대의’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볼일을 보면서 바흐를 듣는 건 맹세코 평생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고층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뜻 모를 광고음도 마찬가지다. 폐쇄성을 무기로 네모난 칸에 사람을 가둬 놓고는 강제로 원치 않는 음악을 듣게 하다니 조금 과장하자면 고도로 발달한 고문과 다름없다.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도 언제나 고전 음악이 흘러나온다.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송출한 것일 텐데 얼마 전엔 무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가 들리는 거다. 시동을 걸기도 전에 그대로 주저앉아 잠들어버릴 뻔했다. 카페나 마트에서 울려 퍼지는 멜론 차트 100은 말할 것도 없다. 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지하철 역사에 도배된 ‘시민 창작 시’를 보고 한 번이라도 궁시렁댄 적 있는 사람이라면 내게 돌을 던질 수 없으리라. 그래도 돌을 던지겠다고? 어쩔 수 없군. 여기, 나 대신 프랜이 기꺼이 억압에 맞설 것이다. “5번 대로를 걷는 사람이라면 자동차 소리를 예상한다. 만약 실제로 5번 대로를 걷다가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 현악사중주가 들린다면 5번 대로를 걷는 게 아니라 어쩐지 그 옛날 빈에 왔다는 상상을 하며 착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혹시라도 그 옛날 빈에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그 옛날 빈에서 찰스주르당이 세일하지 않음을 깨닫고 상당히 불쾌해질 확률이 높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5번 대로를 걸을 때 자동차 소리가 들리길 바란다.” “음악이 자기 분수를 잘 알던 때가 있다. 지금은 아니다. 이는 음악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서 상식적인 예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이 가능성을 기꺼이 고려할 용의가 있다. 심지어 친히 도와줄 용의도 있다. 음악이 매무새를 가다듬고 사회 주류를 떠날 수 있게 정신을 차리도록 내 역할을 다하고 싶다. 가장 먼저 음악에는 두 종류가 있음을 음악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좋은 음악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다. 나쁜 음악은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이다.”
3. 치솟는 집값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뉴욕 맨해튼의 집값과 비슷하다는 뉴스는 지난해부터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맨해튼의 인구는 약 1백66만 명이며 강남 3구라 불리는 강남, 서초, 송파의 인구는 1백61만 명이다. 서울 수도권의 인구는 2천5백만 가량으로 뉴욕 대도시권의 인구 2천2백만 명과 비슷하다.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하자면 한국이 미국의 절반인 것이 함정이지만. 서울살이의 팍팍함을 익히 아는 나에게 프랜의 집 구하기 일기는 알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나 프랜 리보위츠나 유명한 전업 작가인 것은 동일하지만 이쪽은 엄연한 현실이다. “V.F.에게 연락해 무척이나 탐나는 그 건물에서 혹시 지난밤 죽은 사람은 없는지 정중히 물어보았다.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상당한 규모의 건물인데 몇 달째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사는 작디작은 건물에서는 사람들이 파리처럼 죽어나간다. 높은 천장과 몰딩 장식이 수명을 연장해주고 있진 않은지 알아봐야겠다고 적어두었다. 나보다 안 좋은 건물에 사는 사람은 내가 죽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오싹해졌다. a) 나보다 안 좋은 건물에 사는 사람은 없고 b) 특히 내가 죽길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력이 되살아났다.”
BTS의 RM은 ‘Seoul’이라는 자신의 솔로 곡에서 노래했다.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love you seoul. I hate you seoul.” 극단적인 날씨, 참을 수 없는 타인의 취향, 치솟는 집값, 소음공해, 교통체증, 불친절한 사람들, 관광객, 영원히 잡히지 않는 택시… 등등.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단점에도 불구하고 프랜은, 아니 우리는 왜 대도시의 삶을 고집할까? “젊은이들이 왜 뉴욕에 온다고 생각하세요? 뭐가 있길래요?” 〈도시인처럼〉에서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뉴욕요, 뉴욕이 있죠. 뭐가 없는지 물어봐야죠. 그들이 고향에 남기고 떠난 바로 그게 없잖아요. 그게 이유예요.” 지면에 다 옮겨 담지 못한 프랜의 냉소에 연신 깔깔대다가 더없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사랑하고 또 그만큼 증오하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장착해야 할 태도는 다름 아닌 유머 그리고 마음껏 불평할 자유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