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의 팬이라면 무조건 팔로해야 할 뎀나그램(@demnagram) 계정을 운영 중이다. 그에 반해 당신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내 이름은 사바 바키아(Saba Bakhia)다. 22살이고 조지아에 살고 있다. 올여름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2018년부터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의 서포트 플랫폼인 뎀나그램을 운영 중이다.
당신과 뎀나가 첫 인연을 맺은 건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다. 대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그때가 2016년이니 벌써 6년 전 일이다. 당시 뎀나는 베트멍 디자이너이자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패션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You’re simply the best.”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당연히 ‘무시하거나 읽지도 않겠지’ 생각했고 답장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뎀나는 아주 빠른 답변을 보내왔다. 귀여운 이모지와 함께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첫 대화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뎀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당시 우리는 몇 번의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자신을 믿고 너의 꿈을 따라가. 그 꿈들이 널 항상 좋은 곳으로 인도해줄 거야.(Believe in yourself and follow your dreams, they will always bring you to good places.)” 이 메시지는 뎀나그램의 계정을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그 말은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 즉,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말이다.
하이패션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일으킨 뎀나의 거침없는 비전에 경의를 표하는 나만의 ‘팬심’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엔 지금 일어날 놀라운 일의 시초가 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뎀나그램을 꼭 서포트 플랫폼이라고 칭한다. 다른 팬 페이지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어떤 팬 페이지는 스토커처럼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파고든다. 그건 절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발렌시아가의 최근 뉴스, 컬렉션, 컬래버레이션 소식, 캠페인 그리고 뜻깊은 성취(예를 들어 〈타임〉지의 ‘2022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선정된 일) 등 뎀나의 커리어에 오롯이 집중한 일종의 연대기를 만들고 싶다.
서울의 전광판부터 각종 매거진, 뮤직비디오 속 벨라 하디드, 인플루언서의 OOTD까지. 국적을 불문하고 굉장히 다양한 콘텐츠를 피드에 업로드한다. 어떻게 서치하고 큐레이팅하는가?
콘텐츠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다. 가장 큰 미션은 ‘신뢰도 있는 소스’인데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는 일이다. 찾고, 찾고, 또 찾는 방법밖에 없다. 이 수고로움을 해낼 수 있는 건 뎀나와 팔로어들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다. 모든 포스팅은 유익하고 또 시의적절해야 한다. 이것이 나만의 큐레이팅 법칙이다. 가끔 뎀나그램이 뎀나의 온라인 아트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3월부터 발렌시아가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발렌시아가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발렌시아가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피드가 업로드 되고 또 지워지기를 반복한다.(현재 피드의 개수는 0이다.) 뎀나그램은 이를 대신해줄 ‘발렌시아가 뉴스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루머, 유출된 이미지, 비공개 혹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절대 게시하지 않는다. 최근 발렌시아가 팀은 뎀나그램이 더 정확하고 독자적인 콘텐츠를 포스팅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 단 전반적인 창작 권한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서포트 플랫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 인증을 받은 적이 없다. 무척 새로운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제 발렌시아가의 최신 뉴스는 뎀나그램을 통해 확인하는 게 제일 빠를까?
발렌시아가의 모든 소식을 가장 빨리 알고 싶다면 뎀나그램보다 믿음직한 플랫폼을 찾긴 힘들 거다.
‘Supporter of @DEMNA, SUPPORTED BY @BALENCIAGA’ 뎀나그램 프로필에 적인 문구다. ‘성덕’으로서 이 짧은 문구가 상징하는 바가 굉장히 클 것 같다.
사실 내가 만든 플랫폼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 몰랐다. 뎀나에게 직접 “발렌시아가와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받은 뒤 쇼에 초대받았고 뎀나와 그 동료들을 직접 만나기까지…. 상상 그 이상이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
나는 패션계가 뎀나가 존재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의 하우스를 통해 오트 쿠튀르와 스트리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놀라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난 그가 그 이상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패션 권력을 바른 의도로 사용한다는 점이 좋다. 최근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자선 티셔츠 발매를 예로 들 수 있다.(뎀나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소통해 탄생한 컬렉션으로 판매 수익은 모두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이 뉴스 역시 뎀나그램에서 최초로 다뤘다. 또한 그는 소박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늘 내가 최고라고 인정해주며 동기를 부여해준다. 존경스러운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음에 무척 감사하다.
같은 조지아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심지어 우린 같은 동네 출신이다.(웃음) 조지아는 뎀나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이 내가 그의 컬렉션을 친근하게 느끼는 이유다. 뎀나는 파리라는 큰 패션 무대에서 리더 역할을 맡은 최초의 조지아 사람이다. 당시 이 이야기는 국가 공휴일처럼 사람들을 즐겁고, 또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조금 웃길 수 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젊은 뎀나’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내 생각이지만 뎀나 또한 나에게서 자신을 찾는 것 같다.
2022 F/W와 2023 발렌시아가 쿠튀르 쇼에 뎀나의 초대를 받고 참석했다. 소감은?
내 생에 첫 패션쇼가 무려 발렌시아가다. ‘꿈은 이루어진다’란 뎀나의 메시지가 떠올랐고 패션쇼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쇼 직후 뎀나와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10분간 조지아어로 대화를 나눴다. 꽤 오랜 시간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눠온 사이라서일까? 만남 자체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후 다시 만난 우리는 아주 잘 통했다. 뎀나와 나눈 모든 대화가 내겐 알찬 강의와 같았다. 그는 정말이지 천재다!
단연 ‘조지아 스타일의 진화’다. 조지아인에게는 특정 스타일이 있는데, ‘잘 입는다’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블랙=단정함’이란 공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색의 옷을 입는 걸 두려워한다. 한 예로 뎀나가 조지아에서 빨간 후드를 입었을 때 하나같이 그를 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뎀나는 항상 블랙만 입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요즘 수도인 트빌리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정말 다양한 스타일이 섞여 있다. 뎀나의 성공으로 인해 조지아 사람들이 다채로운 컬러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기쁘다.
우리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조지아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아주 작은 나라인 조지아는 독창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혼재한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고, 역사적이거나 모던한 건축이 잘 어우러져 있다. 잘 보존된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와인 한잔(기원전 6000년경 와인 제조 유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랜 와인 역사를 간직한 나라다)을 함께하는 모험을 즐기고 싶다면 조지아를 추천한다.
발렌시아가 팀과 다음 단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공유할 수 없다. 분명 흥미로울 테니,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