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 셔츠, 이너 오간자 톱, 브리프, 스커트, 벨트, 양말, 발레리나 슈즈는 모두 Miu Miu.
이렇게 화장을 다 지우고 땡그란 안경을 쓰니 또 다른 사람이 보여요.
촬영 때는 안경을 못 쓰니 렌즈를 껴야 하는데 눈이 너무 건조해서 그것도 못해요. 그냥 안 보이는 상태로.(웃음) 눈에 보여 느껴지는 거랑 ‘보고 있다’라는 느낌을 인지하는 건 좀 기분이 달라요. 잘 안 보이는 상태가 집중이 잘될 때가 있거든요. 가끔 도움이 되기도 해요.
이유미, 미우미우, 유미우미우. 인스타그램에도 언젠가 그렇게 적었어요. 이름부터 인연이 느껴지네요.(웃음)
패션 브랜드의 앰배서더 경험은 처음이라 신기해요. 미우 미우와 함께 저를 연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하고요. 예쁘고 멋진 옷들이 잘 어울린다는 건 그만큼 소화 능력이 있다는 거잖아요. 정말 기분 좋은 일이더라고요.(웃음)
단숨에 패션 아이콘이 되었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요?
사실 꾸미는 데 크게 노력하는 편은 아니에요. 브랜드나 스타일을 정해두기보다 색감이 예쁜 옷을 좋아해요. 좋아하는 색 옷이 있으면 저랑 어울리든 아니든 무조건 샀어요. 겨울이 되면 옷의 가짓수가 늘어나니까 이런저런 색깔을 더할 수 있어서 겨울을 제일 좋아할 정도예요.
크리스털 네트 톱, 스커트, 이너 오간자 톱, 새틴 소재의 ‘미우 완더’ 백, 벨트는 모두 Miu Miu. 슬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무지개색? 모든 색을 좋아해요. 감정에 따라 색을 선택해요. 그래서 옷장 안이 정말 컬러풀해요. 그리고 옷에 여백이 없어요.(웃음) 그래픽이나 글씨 아니면 사람 얼굴, 동물 얼굴 이런 걸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어느 날 아무 무늬도 없는 티셔츠를 찾는데 없는 거예요. 서랍 안에 구겨진 걸 겨우 찾고 나서 얼마나 화려한 걸 좋아하는지 깨달았어요.
지나온 날이 풍성하고 곧은 현재를 지나 미래로 가는 게 기다려지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가 많은 사람, 그래서 폭이 넓은 게 아닐까 해요.
사사로운 것일지라도 다양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도전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다 보니 스펙트럼이 생긴 것 같고요.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달까요.(웃음) 저는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현재의 내가 스스로의 마음에 들어야 미래에도 마음에 드는 내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어요.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웃음)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았다’ ‘이 정도면 괜찮아’ ‘이 정도면 뿌듯해해도 돼’ 이런 느낌. 스스로에게 완전히 관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칭찬할 수 있고 토탁토닥 해줄 수 있는 정도?
작년에 촬영한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겠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가제)는 제가 아는 가장 긴 제목의 영화예요. 제목이 시 같기도 하고 노래 가사 같기도 해요.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잔잔한 일본 영화 느낌도 있고, 첫사랑 영화로 유명한 대만 영화 같은 느낌도 있고. 화면을 보고만 있어도 온기가 느껴지고 뭔가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이 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빛이 쏟아진다’는 지문만 읽고도 따스함이 느껴져서 참 좋았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됐어요.
퍼 장식 드레스, 벨트, 발레리나 슈즈는 모두 Miu Miu.
이번에는 먼지나 땀, 고생과는 거리가 있는 만인의 첫사랑 역할을 맡았어요.
지금까지 이런 역할은 해본 적이 없어서 혼자 “첫사랑 느낌 가보자!” 외치면서 열심히 홀리려고 노력했어요.(웃음) 처음에는 카메라 앵글도 신경 쓰고 어느 부분이 예뻐 보일지 고민하다가 한 일주일 만에 포기한 것 같아요. 그냥 내 마음을 예쁘게 하자. 그럼 외적으로도 예뻐 보이겠지.(웃음) ‘예지’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매력이 있지만 이상하게 너무너무 가까워지고 싶은 그런 친구였어요. 강해 보이지만 다가갈수록 여린 면이 많아요. 남을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내 안에 있는 한 부분을 끄집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조금 있더라도 요만한 거를 이만하게 뻥튀기 해서 보여주는. 이번에는 제 안에 있던 외로움을 살짝 꺼내봤어요.
여성들의 우정, 첫사랑. 적은 정보를 단서로 치니 김보라 감독의 〈벌새〉와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같은 영화가 떠올랐어요.
처음에 영화를 준비할 때 감독님이 레퍼런스 영상으로 〈캐롤〉을 보여주셨어요. 그런 예쁜 느낌에 좀 더 동양적인 오묘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나요. 저도 빨리 이 영화가 개봉했으면 좋겠어요.
사랑과 우정, 이 두 가지는 삶에서 빼놓을 수 없어요.
우정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어요. 바로 사랑으로 넘어갈 수 없다 보니 저한테 이 두 가지는 하나가 되게끔 서로를 이어주는 단어인 것 같아요. 굳이 나눠보자면 우정은 냉정해야 지킬 수 있고 사랑은 희생으로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요상한 생각을 해봅니다.
우정이 없는 채로 사랑을 할 수 없다면 첫눈에 반하는 일은 없겠네요?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외적인 면만으로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친해지고, 몇 번 보고,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 그제서야 사랑이라는 감정이 서서히 들어와요.
오버사이즈 코트, 니트 베스트, 이너 오간자 톱, 브리프, 스커트, 귀고리, 벨트, 양말은 모두 Miu Miu.
배우는 작품과 사랑에 빠지곤 하죠. 작품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인가요?
시나리오 안의 캐릭터 설명을 읽으면서부터 정이 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우정을 쌓는 느낌.(웃음) 그런데 거기서 뭔가 아니다 싶으면 우정을 쌓을 수 없겠죠. ‘얘는 나랑 친구 못 되겠다.’ 결국 연기했던 역할들은 계속 읽다 보니 읽히고, 궁금해져 친구가 되고 사랑에 빠져 선택했네요.
〈멘탈코치 제갈길〉을 한창 촬영 중이에요. 고된 역할을 자주 해서 팬들이 이유미 배우의 멘탈을 잘 지켜달라는 이야기를 한다죠. 재미있게도 드라마의 주제가 ‘멘탈’이네요.
시나리오 안에서 ‘가을’이라는 캐릭터가 점점 성장하는 게 보였어요. 세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였지만 슬럼프를 겪으면서 자기방어를 하느라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 캐릭터거든요. 이 친구가 치유되고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을 보며 응원하게 되고 같이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대사도 여러 사람들과 나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말들이 많아서 이 작품을 마치고 나면 나도 단단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드라마가 시작되면 저를 걱정하던 팬들이 안심하게 될 것 같아요.(웃음)
비즈 드레스, 브라 톱, 브리프, 크리스털 펜던트 초커, 양말, 발레리나 슈즈는 모두 Miu Miu.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를 연기하기 위해 빙판 위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겠어요.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 배웠고 지금도 찍을 때는 코치님이 나와서 봐주고 계세요. 선수들처럼 속도를 제대로 내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얼음판이 익숙해지고 나니 너무 재미있어요. 어릴 때도 아이스링크에 가서 노는 걸 좋아했어요. 신나게 타고 나서 매점에 들러 컵라면 먹는 게 하나의 낙이었거든요.(웃음)
스포츠에서 멘탈이 중요한 만큼 연기자에게도 멘탈은 중요할 테죠. 생각보다 멘탈이 강한 편이라고 얘기해왔어요. 그럼에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 때나 모자람을 느낄 때도 있을 거예요.
모자람을 찾았을 때 인정하려고 해요. 부정하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면 더 힘들더라고요. 대신 “조급해하지 마. 너 지금 좋잖아. 행복하지 않아?”라고 토닥여줘요.
그럴 때도 있지만 전 눈을 감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해요. 어릴 때부터 잠들기 전에 상상하고 싶은 하나의 카테고리를 골라요. 오늘은 친구 우정에 관해서, 오늘은 미래의 내가 상을 받는 시간을 떠올려볼까? 촬영하다 혹시 상대 배우와 사이가 안 좋을 때는 어떡하지? 혹은 너무 사이가 좋으면? 이런 생각들을 거의 무슨 영화 장면처럼 스토리를 만들어 대사까지 생각하면서 상상해요. 가끔은 재미있어서 잠이 더 안 올 때가 있어요.(웃음) 요즘에는 피곤해서 거의 바로 잠에 들지만 상상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시스루 드레스, 크리스털 펜던트 초커, 새틴 소재의 ‘미우 완더’ 백은 모두 Miu Miu. 이너 슬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또 어떤 걸 좋아하나요?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면?
저는 멀티가 안 돼요. 바쁘면 하나밖에 못하는데 그래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요리하는 건 꾸준히 하려고 해요. 반찬 만드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냉장고를 채워 넣는 게 오로지 나를 위한 일 같아서요. 제가 또 손이 커요. 이미 두세 개 만들면 큰 통 여러 개가 다 차요. 그래서 다양한 맛을 못 즐겨요.(웃음)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겠다고 지난 인터뷰마다 얘기해왔더라고요. 지금, 2022년 7월의 이유미는 어떤 사람인가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바쁘다 보니 분명히 예민해질 때도 있지만 정신 차리자!(웃음) 이것 또한 이겨내면 조금 더 나은 사람, 조금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는 시기?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 같은 7월을 보내고 있는 이유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