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 도파민 중독?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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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혹시 도파민 중독?

‘도파민 중독’이라는 밈이 SNS를 휩쓴 건 꼭 그만큼의 공감대 덕분일 것이다. OTT는 당신을 위한 콘텐츠로 가득하고, 쇼핑몰은 당신이 사야 할 상품을 잔뜩 내밀며, 소셜미디어에서는 당신이 관계 맺고 싶은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커뮤니티는 싸움까지 제공한다. 심리학자 장근영은 말한다. 21세기 인류 문명은 당신의 도파민 분출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BAZAAR BY BAZAAR 2022.06.06
 
도파민이 없으면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도 못하고 흐느적거리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 고결한 어떤 세계와 연결된 기분…. 모두 도파민 분비의 결과다. 도파민은 뇌의 정신 과정에 필수적인 생화학 물질이다. 도파민의 양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뇌는 비정상이 된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의 뇌에는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다. 메스암페타민, 흔히 말하는 필로폰은 뇌의 도파민 분비량을 10배 이상 늘려서 우리의 뇌를 조현병 비슷한 상태로 만든다. 소리에서 색깔을 보고,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경험하며, 상대방의 생각이 귀로 들린다는 착각에까지 빠진다. 반대로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는 도파민이 매우 적게 분비된다. 그래서 이 병의 환자들은 실제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이렇게 필수적인 물질이니 중독에도 끼어들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중독은 결국 도파민 분비의 문제다. 뇌의 입장에서는 모든 중독이 도파민 중독이고,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그런데 이 말장난을 시작한 사람이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A.Lembke) 교수다.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중독치료센터 소장으로 중독 분야에서는 자타공인 전문가인 양반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오래전에 리처드 솔로몬(R.Solomon)이 제시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첫째, 우리 몸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평형 상태를 추구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면 그 반대 방향에 힘을 실어준다. 신나게 놀고 난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이나 무서운 경험을 한 뒤에 느끼는 안도감이 이 도파민 균형 잡기의 결과다. 둘째,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 이제 몸은 도파민 감도를 낮춘다. 뇌가 예전과 같은 경험을 하려면 전보다 더 많은 도파민이 필요해진다. 이게 ‘내성’이다. 작은 칭찬으로 기분이 좋았던 사람이 칭찬을 계속 받으면 덤덤해지고, 시속 30km만 되어도 짜릿한 스릴을 느끼던 라이더가 나중에는 시속 2백km로 달리면서도 평온한 상태가 된다. 모두 내성의 결과다. 더 무서운 일은 이제부터다. 계속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 몸은 아예 도파민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 전제하고 도파민 부족 상태로 자신을 맞춰놓는다. 쾌감이 반복되면 쾌감의 강도가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불쾌한 상태가 디폴트 값으로 정해지는 거다. 그러면 쾌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쾌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처음의 자극을 찾기 시작한다. 이게 금단 증상이다. 진정한 중독의 시작이다.
솔로몬의 이 도파민 균형 이론은 감정에는 대가가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좋은 기분, 흥분이나 고양감을 즐기고 나면 균형을 추구하는 도파민의 타노스가 그 반대 감정을 들이민다. 예전에는 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도파민 과다 분비는 상당히 귀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위험을 마주하거나, 어떤 활동에 몰입해 고양감에 빠져들어야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럴 기회는 드물었고 많은 대가를 요구했다.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위험한 동물을 사냥하거나 부족 간의 전쟁에 뛰어든 것도 그게 다 귀한 도파민 분비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 세상이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에 들러붙어 사는 식객으로 자연계의 눈치를 보며 근근이 살아왔다.
그러나 21세기의 인류는 인간을 위해 설계된 공간에서 살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인류 문명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용자들의 도파민을 분출시켜서 (그게 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일하고 물건을 사대고 누군가의 이윤을 창출하게 만들지에 대한 노하우로 가득하다. OTT는 당신을 위한 콘텐츠로 가득하고, 쇼핑몰은 당신이 사야 할 상품을 잔뜩 내밀며, 소셜미디어에서는 당신이 관계 맺고 싶은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커뮤니티는 싸움까지 제공한다. 그게 비록 사생활 침해와 루머에서 시작해서 비합리적인 비난으로 끝날지라도, 적어도 한동안 당신이 분노를 불태우고 정의로운 단죄의 통쾌함을 경험하도록 도파민을 끊임없이 뿜어내게 만든다. 이런 환경이 균형을 원하는 신경생리학적 타노스와 만나면 렘키 교수가 말한 도파민 중독이 탄생한다. 처음에는 흥미롭고 유익하고 즐거워서 들어가던 소셜미디어가 나중에는 그거 없으면 할 게 없어서,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라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가는 공간이 된다. 필요한 물건을 쇼핑하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는 뭔가 지르지 않으면 마음이 공허해서 구매 버튼을 누르고는 정작 배달된 물건의 박스조차 열지 않는다. 모두 도파민 낭비의 결과다.
이미 데이터 이용료도 내고 지름질로 비워진 통장도 채워야 하는데, 거기다 도파민 낭비의 값까지 치러야 한다니 억울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존재인 것을 어쩌겠나. 좋은 소식도 있다. 이걸 역이용할 수 있다. 즐거움이 아니라 그 반대 경험을 찾으시라는 거다. 도파민 균형 이론은 우리에게 당신이 공포에 떨어봐야 안도감을 느낄 수 있고, 고생을 해봐야 뿌듯함을, 고통을 겪어봐야 진정한 쾌감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 꼰대 같은 충고일까. 그렇다면 그저 당신에게 들어오는 자극을 한동안 차단해보시는 건 어떤가? 혹시 며칠이라도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끊어보신 적이 있나? 음료수는 생수만 마시고, 과자나 빵 없이 며칠을 보내면 전에는 모르던 맨밥의 단맛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감정도 그렇다. 도파민의 공백인 지루함은 진짜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여백이다. 미디어와 트렌드에 휩쓸리며 도파민을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진정 소중한 순간을 위해 당신의 도파민을 조금 남겨두시라. 그게 진정 삶을 즐기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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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장근영(심리학자)
    에디터/ 손안나
    사진/ Getty Images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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