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필의 사진은 복제의 복제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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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필의 사진은 복제의 복제다

어느 쪽이 오리지널이고 복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디지털 세상을 표류하다 보면 도무지 무엇이 진짜인지,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모든 것이 모호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기다려 사진 같기도 회화 같기도 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한성필의 작업은 개념과 개념의 경계를 넘나들며 질문을 던진다.

BAZAAR BY BAZAAR 2022.05.08
 
한성필 작가의 파사드 시리즈 〈Light of Magritte〉.

한성필 작가의 파사드 시리즈 〈Light of Magritte〉.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어디서 머물고 있나요? 
2020년 3월 16일, 캐나다 캘거리에 도착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팬데믹이 시작되었어요. 캐나다 전역이 전면봉쇄되는 바람에 몇 달간 다른 사람과 교류 없이 집에서만 지내야 했죠. 어느 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로키산맥에 갔는데 대자연 속에 홀로 있게 되면서 그곳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캘거리에 머물면서 사라져가는 로키산맥의 빙하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과학자들은 2100년이 되면 캐나다 빙하의 90%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온난화 때문에 말이죠. 이 작업은 최근 앨버타 예술위원회의 컬렉션으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한국 현대작가전 «Why not Korea?»에 〈마그리트의 빛〉을 출품했죠.
«Why not Korea?»전은 스페인과 아시아 국가 간 다양한 예술과 문화 교류를 통해 제도, 경제, 문화, 교육 분야에서 더 나은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만든 국가 컨소시엄 카사 아시아(Casa Asia)가 개최한 전시입니다. 유럽 사회에는 한국 문화 중에서도 케이팝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가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낯선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들었어요. 카사 아시아는 실제와 가상,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한 것이 전 세계, 특히 한국사회를 돌아보는 중요한 물음이라고 생각해 제 작품 중 〈마그리트의 빛〉을 포함한 파사드 프로젝트를 선정했습니다.
전 세계 각국의 파사드를 작업의 소재로 삼고 있는데요. 복제, 재현, 오리지낼러티 같은 키워드에 천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초기작인 〈나의 바다〉를 작업하면서 바다에 대한 저의 생각과 감정을 시각화하고자 했어요. 최종 작품은 사진이지만 장시간 노출로 인해 경계는 사라지고 회화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작업에 대한 개념보다는 작품이 ‘사진인지 회화인지’에 관한 매체적 궁금증과 관심을 보였습니다.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면서 복제, 재현, 오리지낼러티 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진과 회화에 대한 경계 또한 사라지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매체의 경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제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런던에서 2층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수공사 중인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 대형 가림막이 세워져 있는 걸 봤어요. 가림막의 그림은 세인트폴 대성당이 건축물로 형상화되기 전 설계를 한 크리스토퍼 렌 경이 그린 기초 디자인이었죠. 사람들은 가상의 가림막이 실제 건축물을 대체해 대형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은 듯했어요. 관광객들은 무척 즐거워하며 세인트폴 대성당과 가림막을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고 있었고요. 비물질과 형상, 실제와 가상 등 제가 고민했던 것들이 또 다른 사진적 재현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 파사드는 표면적인 뜻이 아닌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파사드를 재정의해준다면요?
건축에서 건물의 정면을 뜻하는 파사드는 이를 통해 건축물의 형태나 기능 등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얼굴과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얼굴을 통해 진실을 보여주지만 가끔은 허구적인 기만을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파사드는 모든 사회, 국가적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특히 이데올로기를 포장하는 데 가장 유효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의 ‘전쟁’과 ‘특별군사작전’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대표적이라 하겠죠. ‘마스크’라는 개념도 파사드와 비슷하면서 상이한 점들이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게 되었지만 팬데믹 이전 서구사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타인이 표정을 볼 수 없도록 가리는 용도였기 때문에 큰 거부감이 있었죠. 저에게 파사드는 가끔은 사실을 드러내면서 때로는 동시에 거짓의 이면을 보여주는 또 다른 페르소나입니다.
 쿠바 아바나의 카피톨리아 광장에 초대형 감은사지 석탑 이미지를 설치한 〈Harmony in Havana〉.

쿠바 아바나의 카피톨리아 광장에 초대형 감은사지 석탑 이미지를 설치한 〈Harmony in Havana〉.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새로운 풍경을 곳곳에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분명 실제이지만 환상 같기도 한 느낌에 작품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돼요. 복제의 복제의 복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의 현대사회에서는 복제의 복제를 넘어 또 다른 메타 복제가 일어나고 있어요. 가장 대표적으로 가짜 뉴스의 범람,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을 닮기 위한 성형수술, 혹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코스프레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있죠.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어떻게 보면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리플리증후군도 대표적인 단면일 수 있고요. 복제의 복제의 복제의 끝은 영화 〈트루먼 쇼〉와 같이 우리 자신이 자각하지 못한 채 허구의 삶을 진실로 믿고 종속되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자신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 테고요.
현대인은 하루에도 수많은 이미지를 ‘복붙’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날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며 ‘복붙’의 개념과 의미도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죠.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당신이 생각하는 복제와 오리지낼러티의 의미에도 변화가 있나요?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면서 복제와 오리지낼러티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오리지널의 복제가 다시금 또 다른 복제적 원본성을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실재하지 않는 파사드를 설치 작업 등을 통해 담아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피사체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지난한 시간도 꽤 견뎌야 할 테고요.
파사드 작업은 사진으로 시작했다 설치로 발전했어요. 세계의 다양한 곳을 사진으로 작업하다 보니 포토샵으로 합성이나 리터칭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죠. 하지만 장소들을 찾아내고, 4×5 대형 카메라로 작업하기 위해 허가를 받고,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불리는 매직 아워를 찾는 힘든 과정이 존재합니다.
고생스러워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작업이 있다면요?
2015년 쿠바 아바나에서 했던 설치 작업요. 북한과 혈맹이자 대표적인 공산주의 국가 중 하나인 쿠바에는 옥외 광고 자체가 없어요. 때문에 아바나 중심 광장에 한국의 감은사지 석탑 이미지를 24×33m의 초대형 크기로 설치하기 위해서는 정말 지난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과 쿠바 간 외교 관계가 수립되지 않아 국회의사당이 있는 카피톨리오 광장에 한국의 문화재 이미지를 설치하기 위한 허가를 받는 과정부터가 난관이었어요. 미국의 제재로 금속류의 반입이 쉽지 않아 설치를 위한 나사못 3천여 개를 사기 위해 아바나의 수백 곳의 철물점에서 몇 십 개씩 사서 모으고, 크레인이 없어 20여 명의 쿠바 일꾼들과 함께 몇 백kg의 가림막 천을 10층 높이 건물에서 끌어올리기도 했죠. 쿠바에서 처음으로 대형 사이즈의 사진 설치를 하는 관계로 지지대 설치에도 애를 먹었고요. 결국 이러한 역경을 통과해 한국의 대표적 문화재인 감은사지 석탑 이미지가 쿠바 아바나에 설치되었을 때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더군요. 그 작업은 쿠바의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 1면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북한 〈노동신문〉 1면에 소개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는 쿠바에서 절대적인 미디어인데요. 쿠바인에게 낯선 한국 문화재가 쿠바의 건물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러 왔어요.
극지방에도 머물며 작업을 했어요. 그때의 시간은 일생에 있어 어떤 경험인가요?
극지방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대자연의 숭고함과 환경 변화의 고통에 대한 간극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었어요. 이러한 경험을 통해 환경 문제,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극지에 머물며 포착한 〈Melting Glaciers〉.

극지에 머물며 포착한 〈Melting Glaciers〉.

첫 작품인 〈나의 바다〉를 비롯해 바다, 하늘, 눈 등 자연을 소재로 삼고 있어요. 대자연,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두게 된 유년기의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 
〈나의 바다〉는 제가 15살에 처음 봤던 바다의 기억에 대한 것입니다. 미술사에서 보면 자연은 언제나 작가들뿐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는데요. 저 또한 거주하거나 여행하면서 경험하는 일상의 자연, 혹은 문명 세계에서 떨어져 있는 대자연의 시각, 소리, 냄새, 촉각 등 모든 것이 감성의 원천이 됩니다. 15살이 되던 해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 바다는 대천해수욕장이었어요. 당시 제 기억 속 대천해수욕장은 8월의 땡볕이 쏟아지는 날 오후, 끝없이 펼쳐진 소나무 숲을 지나 하늘과 바닷물이 맞닿은 풍경에 신비함과 경외감을 느낀 곳이에요. 하지만 지금 그곳은 더 이상 그런 신비감이 남아 있지 않은 도시적 장소로 변화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기억을 통해 환경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오래전 원자력발전소가 근처에 있는 프랑스 고성 지대 레지던스에서 문명과 자연의 조화와 부조화에 대한 사진과 영상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세월이 변화하면서 문명과 자연에 관한 관점이나 생각이 바뀌었습니까?
문명과 자연의 조화와 부조화에 대한 화두는 언제나 우리 삶의 중요한 이슈일 거예요. 이 작업을 통해 원자력 발전을 적극적으로 찬양하거나 절대적 반대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현명한 에너지 생산 혹은 소비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나가기를 원했죠. 어떠한 에너지라도 생산이라는 부분에 있어 환경 문제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슈이기에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현명하게 환경적 피해를 최소화하며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고민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제가 있는 캐나다 캘거리의 앨버타주는 로키산맥이라는 대자연으로 가장 유명한데요. 동시에 캐나다 내에서 가장 많은 양의 석탄과 오일 샌드의 개발이 주도적으로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죠. 화석 연료의 개발과 함께 로키산맥을 필두로 한 관광산업으로 인해 캐나다 내에서도 가장 수입이 많은 곳입니다. 석탄과 석유 개발이 일어나고 있는 많은 곳은 환경 오염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받지만 관광과 탄광 개발을 통한 막대한 수입은 탄광 지역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앨버타주 주민들의 또 다른 복지를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자연과 개발이라는 양극단의 아이러니한 문제를 어떻게 절충하고 극복해나가는가를 이곳에 거주하며 유심히 보고 있지요. 이러한 관찰이 계속적으로 저의 작업에 투영되면 향후 중요한 화두를 던질 수 있을 것 같네요.
전 세계 몇 개국을 다녔는지 세어본 적이 있나요?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는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50여 개 국을 여행한 이후 더 이상 세지 않고 있어요. 여행을 하면서 국경이란 인위적인 선에 의한 패권적 제국주의에 대한 상흔을 너무 많이 보기도 하고, 어느 날부터는 가보았던 나라의 수보다도 ‘내가 그 나라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어떤 것을 느끼고 그러한 기억이 어떻게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같은 나라 같은 장소를 일 년의 시차를 두고 가더라도 다른 점을 많이 느끼기도 하고요. 역사적 숨결이 있는 분위기 있는 유럽의 조그만 도시들이 저에겐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전해주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장소는 사막과 극지, 정글 같은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립과 고독은 자신을 성찰하고 객관화시켜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기 때문이죠.
 
캐나다 로키산맥에서 작업한 〈Lake Louise〉.

캐나다 로키산맥에서 작업한 〈Lake Louise〉.

“일단 출발했으니 되돌아갈 수 없는 외줄타기처럼 고독한 긴장감으로 작업을 수행해왔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염두에 둔 종착점이 있는지요?
등반에서 높은 산의 정상을 오르기 위한 목적은 같지만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얼마나 많은 산을 정복하는가에 목표를 둔 ‘등정주의(Peak Hunting)’와 남다른 방법으로 즐기면서 아무도 오르지 않은 길을 찾아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과정에 의미를 둔 ‘등로주의(Mummerism)’로 말이죠. 세계 대부분의 산 정상엔 이미 초기 개척자들의 발자국이 찍혀 ‘정상 정복’의 의미는 약해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등정주의 등산가들은 보다 빠른 기록 단축을 목표로 선배 산악인들이 갔던 길을 따라 히말라야 14좌 정복을 꿈꾸고 있습니다. 반대로 등로주의자는 산을 가는 것을 ‘등산’보다는 ‘입산’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걸어가면 뒤에 길이 생긴다고 믿어요. 이들의 비교 대상은 동료 등반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죠. 불확실하지만 새로운 길을 가며 나만의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것처럼 단거리 경주로 승자를 가리는 것이 아닌, 마라톤과 같은 긴 코스를 평생의 작업으로 삼아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것이 예술일 것입니다. 물론 굴곡은 있겠지만 앞으로 꾸준한 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펼칠 수 있는 철학과 긍정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면, 희망이 제 종착점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열정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얻나요?
작가라는 직업 자체는 가끔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지만,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는 저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즐기고 있죠. 가끔 힘들 때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것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고 그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에요.
요즘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는 대자연의 숭고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의 ‘물리적 여행’과 독서와 사색을 통한 ‘심리적 탐험’이 가장 큰 영감을 주었어요. 하지만 팬데믹으로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지금까지의 캐나다 생활에서는 클라이밍이라는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됐죠. 절벽 밑에서 시작해 종착지에 도착하기 위해 효과적인 길을 찾아 오르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데요. 일순간의 실수나 착오로 몇 미터를 추락하기도 하고 추락한 곳부터 다시 시작하는 재도전을 통해 정상의 종착지에 도달하는 것이 우리 인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클라이밍에서 빠르게 종착점을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것보다 ‘어떠한 길은 어떠한 방식으로 오르는가’를 통해 이와 흡사한 예술적 깨달음을 얻습니다.
세상에 던지고 싶은 화두가 있다면요?
현대사회에서 개별적 인간 및 집단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이상과 현실.
스스로 대표작으로 손꼽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까?
모든 작품이 각각 의미있고 앞으로 작업 해 나가야 할 날들이 많기에 스스로 대표작을 들긴 어렵습니다. 다만 아직 미발표작인 프로젝트를 발표할 경우 우리 시대에 중요하고 의미 있는 반향과 논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의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역사적 이데올로기와 소비문화에 대한 작업이지요.
어떤 세상을 꿈꾸나요? 당신의 작품처럼 환상과 실재가 뒤섞이는 공간이어도 좋고 실재하는 공간이라도 좋아요.
‘절대선’이라는 개념이 모호하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이 제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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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김희성(프리랜서)
    에디터/ 손안나
    사진/ 한성필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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