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유기농 티셔츠가 '진짜' 유기농이 아니라면?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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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유기농 티셔츠가 '진짜' 유기농이 아니라면?

음식이든 옷이든 유기농(Organic) 인증마크가 달려 있으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그런데 우리가 더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유기농 제품이 ‘진짜’가 아니라면?

BAZAAR BY BAZAAR 2022.04.14
 
“고객님, 이 제품은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서 아기 피부에 더 좋아요. 아토피도 안 생기고요.” 얼마 전 첫돌을 맞은 둘째 조카의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 어느 매장 직원이 말했다. 솔깃한 그 말에 다른 옷에 비해 3만원쯤 더 비싼 후드 티셔츠를 고민 없이 구입했고, 어느 때보다 흐뭇한 마음으로 조카에게 선물을 안겼더랬다. 이처럼 음식이든 옷이든, 그 이름 앞에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일종의 프리미엄 효과가 발생한다. 그건 아마도 단순히 건강에 좋다는 것 외에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 있는 소비’라는 생각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
영어로 오가닉 파밍(Organic Farming), 줄여서 오가닉이라 부르는 유기농(有機農)은 화학비료, 유기합성농약, 생장조정제 등 일체의 합성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물과 미생물 등 자연적인 자재만을 사용해 병충해를 방지하는 농업을 말한다. 2000년대 초, 녹색기술의 상징으로 떠오른 유기농법은 현대인의 밥상 풍경을 바꿔놓았다. 가족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동네 슈퍼가 아닌, 대형마트 한편에 자리한 오가닉 식품 코너나 올가(Olga), 초록마을과 같은 친환경 식품 전문 매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그렇게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젠 시장에서도 유기농 마크를 단 식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패션 산업에서 유기농이 주목받게 된 건 다름 아닌 면화(Cotton) 때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는 면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부터다. 미국 농무부(USDA) 발표에 의하면 면의 원료인 목화는 옥수수, 밀, 콩 다음으로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작물로, 전 세계 식물 재배지 면적의 3%를 차지하는 목화밭에서 일 년간 사용되는 살충제 양이 전 세계 사용량의 25%에 달한다. 또 수확 시에는 10분의 1에 달하는 제초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목화 재배는 저개발 국가나 농민들에게는 좋은 수입원이 되지만 동시에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되어왔다.(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 해에 목화 재배 농민 중 약 2만 명이 관련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고.) 어디 그뿐인 가. 목화로 티셔츠 한 벌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무려 2천7백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도 초반엔 면화의 가격이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하락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기농 면, 즉 오가닉 코튼(Organic Cotton)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유기농 면은 유전자 변형 없이, 최소 3년 이상 농약, 화학비료, 고엽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토양에서 재배한 목화에서 얻어진다. 유기농 면 외에도 유기농 실크와 유기농 양모도 시중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양모의 경우 3년 이상 금지된 화학 물질이 사용되지 않은 토지에서 기른 양에서 채취해야 하며, 유기농 실크는 고치를 수확하기 위해 누에가 파괴되지 않는 방식으로 제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기농 원단의 환경적 이점은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유기농 목화의 경우 훨씬 적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것, 기존 농법보다 물을 최대 60% 적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제품인가!
자, 그렇다면 내가 구입한 티셔츠가 유기농 면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국제 오가닉 섬유 인증마크인 GOTS(Global Organic Textile Standard) 인증 원단으로 만든 옷인지 확인해보면 된다. 이 인증을 받기 위해선 70% 이상의 유기농 섬유를 함유해야 하며 직물의 가공, 제조, 포장, 라벨 부착, 거래 및 유통, 더 나아가 안전하고 위생적인 작업 조건, 공정한 임금과도 같은 노동자의 근로 조항까지 GOTS가 제시한 요건에 부합해야 한다. 이렇게 완성된 순수한 유기농 면은 생분해성의 성질을 갖게 되고 재활용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에 완벽하게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되는 목화는 전 세계에서 1%도 되지 않는다는 것. 전 세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이에 최근 〈뉴욕 타임스〉에서는 “유기농 면 티셔츠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유기농이 아닐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유기농 면화를 생산하는 곳은 인도로,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에 달하며 팬데믹 사태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만 유기농 면화 생산량이 지난해 48%나 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대부분이 진짜 유기농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유는 유기농 목화 재배가 일반 목화에 비해 20%가량 낮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살충제와 화학비료 없이 키운 유기농 목화는 섬유질이 적어 낮은 품질의 짧은 섬유를 생산해내는데, 이는 전통적인 목화 농업보다 평균 28% 낮은 수확량을 보인다. 여기에 GOTS와 섬유거래소가 자체적인 검사가 아닌, 현지 외주 업체를 활용해 검증을 하다 보니 그들 사이에 주고받는 일명 ‘거래 용지(Trading Paper)’에 많은 부정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 결국 GOTS는 2020년 10월, 정부가 승인한 가짜 거래 인증서와 웹사이트를 제작한 불법 생산업체 11곳을 적발했음을 발표했는데 이는 인도 전체 생산량의 6분의 1인 2만 톤에 달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미국 농무부는 정부기구의 투명성 부족을 이유로 인도 당국이 감독하는 기업이 인증한 유기농 제품을 인정하는 협약을 해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비단 인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유기농 면의 또 다른 최대 생산지인 중국과 터키 등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판매되는 유기농 면은 실제 재배되는 양을 훨씬 초과하고 있어요.” 오가닉 소재와 리사이클링 원단으로 만든 제품을 선보이는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에일린 피셔(Eileen Fisher)가 말했다. 여기에 유기농 제품에 목마른 이들을 유혹하기 위한 브랜드들의 ‘오가닉 블렌드(Organic Blend)’ 제품은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실제로 마이클 코어스, 휴고 보스, 캘빈 클라인,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등 오가닉 코튼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에서 어렵지 않게 블렌드 아이템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어떤 옷에는 ‘유기농 면과 기타 재활용 섬유를 혼방하여 제작한’이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기도 했다. 결국 이를 구입한 고객은 내가 구매한 것이 진짜 유기농 제품인지, 실제 유기농 재료의 사용률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피부에 더 좋은 것으로 알려진 유기농 순면도 사실은 일반 목화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기농산물 역시 우리나라만 해도 시장 규모가 약 1조 9천억원으로 2018년에 비해 47.6%나 증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기농산물이 일반 농산물에 비해 맛이나 영양 면에서 우수하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모양이나 색깔 등의 외관에서는 일반 식품에 비하여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또 일반 농산물에 비하여 평균 20~50% 정도 생산량이 적다고 한다. 감독 인력의 부족으로 재배 환경과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 인증 기준이 철저히 준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현실상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주장도 그에 따른 역효과를 고려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유기농산물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농산물에 비하여 병원성대장균과 살모넬라 등의 유해 미생물에 오염될 확률이 매우 높다.
바이러스가 일상을 위협하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건강한 삶, 더 나아가 건강한 지구를 위한 소비를 갈망하게 되었다. 유기농 제품에 대한 탐구는 먹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패션 산업에서도 주목해야 할 뜨거운 이슈이자 과제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너무도 많은 브랜드에서 유기농을 앞세운 제품을 선보이며 과장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에디터 역시 그에 깜박 속아 넘어갔으니!) 유기농이라는 단어가 소비의 프리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과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 “유기농이 인류의 건강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인가요?”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순 없지만, 유기농의 탄생이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신뢰할 수 있는 정부와 단체, 윤리적인 생산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감시하는 현명한 소비자의 눈이 공존한다면 그 역설을 뛰어넘는 더 좋은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멀지 않은 미래에 말이다.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에 완벽하게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되는 목화는 전 세계에서 1%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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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진선
    사진/ Getty Images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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