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의 저자 제니 오델(Jenny Odell)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로잡힌 관심의 주권을 되찾아 다른 곳에 옮겨 심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배우 김태리가 자신의 취미라고 밝힌 버드 와칭 같은 것들. 저자는 말한다. “새 관찰의 절반 이상은 새의 소리를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관찰은 온라인에서 뭔가를 찾아보는 행위의 정반대에 있다.” 꼭 새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옆집에 사는 어린이, 우리 동네 미술도서관이나 나만 아는 한강 공원 야경 스팟처럼 ‘가까이에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면. 이것들은 모두 작고 네모난 기기에서 빠져나와 우리 삶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를 알아채기 위한 기반을 닦는 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 당신의 손, 당신의 숨결, 지금 이 시간,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장소. 이것들은 진짜다. 나도 진짜다. 나는 아바타가 아니고, 취향의 조합도 아니고, 매끈한 인지적 작용도 아니다. 나는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많다. 나는 동물이다. 다른 생명체가 나를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세계에서 나 역시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이 사실을 기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 그저 귀 기울일 시간, 가장 깊은 감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기억할 시간 말이다.”
제니 오델을 따라서 나도 현재의 나와 나의 주변을 인식해본다. 나는 지금 논현동 〈바자〉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토독토독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내 등 뒤에 위치한 창문을 통해 강남대로를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도 간간이 느껴졌다. 2021년 12월 14일 밤. 시계 바늘이 8시 43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오른쪽 다리를 꼰 채로 발끝을 까딱이면서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것들은 진짜다. 그리고 나도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