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 〈마스크Ⅱ〉, 2002, 혼합재료, 77x118x85cm. 개인 소장 © Ron Mueck (사진: 한도희)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 놀러 왔을 때 단 하나의 미술관을 추천해야 한다면 많은 이들이 단연코 꼽을 만큼 독보적이었던 리움 미술관. 마리오 보타, 렘 콜하스, 장 누벨, 철학과 스타일이 다른 거장 건축가 3인이 함께 설계했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소장품에 이건희 회장,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의 컬렉션이 더해진 삼성문화재단의 컬렉션으로 2004년 설립된 한국 사립미술관 1번지였다. 이후 아니쉬 카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등 현대미술의 최상위층을 빛내는 아티스트의 개인전과 간송미술관, 호림박물관을 뛰어넘는 고미술 컬렉션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삼성의 여러 가지 이슈와 맞물려 한동안 주춤한 시기를 보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 전시예술감독 등을 지낸 김성원 부관장과 패션과 예술 부문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로 올가을 전격 개관했다. 휴관한 지는 2년여, 기획전을 선보인 지는 4년 만이다. 아트 마켓의 호황으로 한국 미술계가 들썩이고 있는 시기, 확장 개관한 페이스, 바젤리츠 개관전을 하고 있는 타데우스 로팍, 파운드리 서울과 함께 한남동 갤러리 워크의 꼭짓점을 담당하는 리움의 변화된 모습은 현재 미술계에서 최고의 이슈다.
우선 로비부터 달라졌다. 과거 종교 건축물이 자아냈던 경건함과 숭고함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마리오 보타의 건축 철학을 형상화한 역원추형의 로툰다. 리뉴얼 이전에 최정화의 〈연금술〉이 관통했던 그 빛의 통로를 현재는 김수자의 〈호흡〉이 오색찬란한 비물질적 숨결을 불어넣는다. 안내데스크에 숯 2백40개를 벽 쌓듯 세워둔 이배의 〈불로부터〉는 로비의 검은 기둥과 대구를 이루며 중심을 잡아주고, 보강한 미디어 월에서는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태고의, 2〉가 흐르는데 투명한 물속, 꽃잎 같은 것들이 행복하게 부유하며 달콤한 명상으로 인도한다.
김수자, 〈호흡〉, 2021, 혼합매체, 가변크기. 리움미술관, 김수자스튜디오 제공(사진: 허승범)
현대미술과 고미술 상설전은 각 층마다 전시 주제를 정해 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공간을 조성하였다. 유리 벽 사이로 자유롭게 배치된 직육면체들이 외부에서는 역동적인 외관, 내부에서는 자유롭게 구획된 전시 공간을 이루는 현대미술 상설전에 들어서면 마치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상한 행성’이라는 제목 아래 몽환적인 보랏빛 화폭이 펼쳐지기도 하고(문범의 〈천천히, 같이〉), 동충하초를 닮은 기계 생명체가 모래 위에 누워 있으며(최우람의 〈쿠스토스 카붐〉), 거울처럼 반짝이고 낭창하게 휘어진 스테인리스스틸(아니쉬 카푸어의 〈이중 현기증〉)에 기하학적이거나 오묘한 형상의 작품들이 왜곡되어 반사된다. 고미술 상설전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했으나 미술관에서 전시로 소개된 적은 별로 없는 청자 기와 같은 소품들을 모아놓기도 하고, 분장한 흙을 선으로 긁어내는 기법에서 맥락이 닿아 있는 분청사기, 백자 등과 박서보, 정상화의 단색화를 함께 전시해 한국 전통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접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국내외 51명 작가의 작품 1백30여 점을 선보이는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팬데믹 상황을 맞이한 인류에게 인간됨의 의미를 고찰해보자는 제안과도 같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 그라운드 갤러리로 내려가며 화이트 큐브에 덩그러니 놓인 론 뮤익의 극사실적인 자화상 조각 〈마스크 II〉를 맞닥뜨리는 순간 존재론적 혼란을 경험하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단숨에 투영하게 될 것이다.
※«인간, 일곱 개의 질문»전은 리움 미술관에서 2022년 1월 2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