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루이 비통 카퓌신을 커스텀한 예술가들

루이 비통과 현대미술가의 협업인 아티카퓌신(ArtyCapucines)의 세 번째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핸드백은 작은 조각작품과도 같아서 아티카퓌신 프로젝트는 어디든 들고 갈 수 있는 가방에 작은 사진들을 액자처럼 표현한 시리즈 같다.” 참여자인 비크 무니스의 말처럼 여섯 명 예술가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핸드백에서 살아 숨 쉰다.

BYBAZAAR2021.10.20

VIVID VISIONS 

Zeng Fanzhi

쩡판즈
 
1964년 중국 우한에서 태어나 베이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병원(Hospital, 1992)〉 〈고기(Meat, 1994)〉 연작 등 초기작은 힘차고 질감이 느껴지는 붓놀림을 통해 인체의 촉감을 탐구했으며, 베이징으로 이주한 후에는 고립의 감정을 심리적으로 표현한 〈가면(Mask, 1994-2004〉 연작을 발표했다. 작품은 계속해서 진화하지만, 언제나 강렬한 회화의 스타일에서 비롯된 중국과 서양 전통의 독특한 조화를 보여준다. 
쩡판즈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 쩡판즈(Zeng Fanzhi)쩡판즈 스튜디오 전경. ⓒ 쩡판즈(Zeng Fanzhi)
가장 인상 깊었던 첫 예술작품은 무엇이었나? 
10살 때 항저우에서 처음 보았던 시후(西湖, West Lake). 그 호수는 매우 절묘하게 수채물감으로 그려놓은 듯한 거의 흑백에 가까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또 동시에 달콤한 금목서의 향과 엷은 안개의 냄새를 맡았는데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후로 금목서를 보면 그날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
아티스트로 살겠다는 결정에 영향을 준 사람 또는 계기가 있었나? 
나는 평생 그림을 그려왔다. 유일하게 그림 그리는 것만 잘 했던 것 같다.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딱히 할 것이 없어서 1993년에 베이징으로 상경했다. 당시 아티스트들이 많이 모여 있던 교외에서 살지 않고, 도심에 위치한 싼리툰이란 곳에서 살았다. 고층 아파트도 아니었고 거주민도 적었지만 거리는 행상인들의 외침 소리로 가득했다. 거리 위로 햇살이 밝게 비췄고, 가을에는 황금빛 낙엽으로 뒤덮였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엔 그림을 그리거나,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그냥 앉아서 인생을 즐겼는데, 이때의 경험이 이후 많은 작품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다.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테마는 무엇인가? 
내 창작물은 주제가 광범위하다고 평가받는데, 주제가 무엇이든 각각의 작품들에는 그 당시에 느낀 개인적인 감정이 녹아 있다. 주변 상황에 대한 느낌, 사람들을 관찰한 후의 느낌, 단순하게는 가장 내면적인 감정의 표현 등이다. 내 작품들에 반복되는 테마가 있다면 아마 ‘내 자신’이지 않을까 싶다.
카퓌신 백은 어떤 작품을 토대로 만들었나? 
〈추상 풍경(Abstract Landscapes)〉 시리즈의 특징적인 화법을 사용해 2017년에 작업했던 작품을 기초로 하고 있다. 반 고흐의 두상을 제작한 후 실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덮었다. 개인적인 시각적 관찰의 경험을 작업의 전 과정에 녹여내었다. 이후 루이 비통의 장인들이 내 작품을 가방의 표면에 입히는 추가적인 작업을 하였는데 본래 작품의 텍스처를 굉장히 잘 살려주었다.
카퓌신 백은 쉽게 이동이 가능한 물건이기에 작가의 작품이 전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나? 
일단 가방이 출시가 되면 내 작품에 대해 약간의 이질감이 들 것 같다. 내 작품이 가방을 소유하시는 분들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길 희망한다. 그 과정에서 그분들의 눈에는 이 작품의 본질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 같다.
 

Donna Huanca 

도나 후앙카
 
1980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미국과 볼리비아를 오가며 자랐고, 휴스턴과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슐레(Städelschule)에서 공부를 마쳤다. 예술적 매체로서 몸과 피부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출발한 후앙카의 작품들은 회화, 조각, 영상, 소리, 냄새를 아울러 ‘감정적 경험’이라 부르는 예술을 창조한다. 몸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몸이 되는 몰입적인 만남을 사용하여 공감, 인지, 정체성, 분절에 대한 자신의 흥미를 탐색해나간다.  
도나 후앙카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 토마스 로어(Thomas Lohr)도나 후앙카 스튜디오 전경. ⓒ 토마스 로어(Thomas Lohr)
당신이 자라온 환경이 작품에 미친 영향은? 
시카고 남부지역에 사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박물관이나 예술을 많이 접하지 못한 채 자랐다. 되돌아보면 예술과 연이 닿았던 것도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여름에 종종 다른 가족들을 만나러 볼리비아에 갈 때가 있었는데 우르쿠피나 축제(Festival of Urkupina)에서 음악과 전통의상,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춤사위 등 신나는 경험을 했다.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작가로서 사용하는 스킬은 어떻게 배우고 개발했나? 
즉흥적인 사운드를 만들고 지하공간에서 사운드 스케이프 공연을 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이는 지금도 내가 설치작품을 구상할 때 많은 영향을 준다. 작품에 텍스처를 겹겹이 쌓아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하는, 이러한 담화에서 소외되는 사람들과 내 작품을 공유하는 것이 나의 우선적인 목표다.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테마는 무엇인가? 
요즘 사회는 참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낀다. 일부러 시간을 길게 늘어뜨린 주머니를 만들고 자꾸 조급해지는 리듬에 대한 저항감을 탐구하면서, 거부의 동작으로서 배회하고 한자리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내 작품들은 냉소적이기도 하다. 모든 설치작품, 조각, 소리와 냄새가 궁극적으로 재탄생해 새로운 작품들에 반영된다. 과거의 그림을 바탕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다.
카퓌신 백은 어떤 작품을 토대로 만들었나? 
〈타버린 돌(Piedra Quemada)〉이라는 퍼포먼스와 비엔나 벨베데레 박물관 설치작품의 일부였던 보디페인팅 콜라주 작품을 토대로 만들었다. 내 작품은 콜라주 기법을 근간으로 하는데 회화, 조각, 설치작품에 사용된 다양한 재료, 이미지, 컬러, 텍스처 그리고 청각 및 후각적 작품들을 재구성한다. 이 카퓌신 백 역시 과거의 작품과 현재 나의 작품에 드러나는 텍스처의 감각을 모아놓은 콜라주다. 가방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에 작업을 하다 보니 내 모든 그림에 영감을 준 보디페인팅이 생각났다.
카퓌신 백은 쉽게 이동이 가능한 물건이기에 작가의 작품이 전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나? 
이 작품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다양한 장소로 가게 될지 상상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 결국 모든 예술작품은 스튜디오를 넘어서 그 작품이 어떻게 살아나는지,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삶과 상상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Huang Yuxing

황유싱
 
1975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줄곧 베이징에서 살며 활동 중이다. 중국 전통 공필화의 리얼리즘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색 표현을 더해 호수, 숲, 산, 강, 일출, 일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물감 위에 본인이 정의한 ‘우리 세대의 색’인 형광색을 덧칠한 눈부신 풍경화 안에는 붓놀림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황유싱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 진 지아 지(Jin Jia Ji)황유싱의 스튜디오 전경. ⓒ 진 지아 지(Jin Jia Ji)
당신이 자라온 환경이 작품에 미친 영향은? 
베이징에서 나고 자라 유치원 때부터 중국 전통 공필화를 배우며 테크닉을 연마했다. 초등학교 때 나와 매우 친했던 짝꿍이 저명한 아티스트인 리커란의 손녀였다. 그 친구의 가족을 통해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작업 습관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이후 내가 아티스트가 되는 계기가 됐다.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테마는 무엇인가? 
수년 동안 내 작품에는 강이 등장하고 있다. 강은 시간 그리고 인생의 영속적인 변화를 상징한다. 따라서 같은 테마라도 다른 시간을 담아내기 때문에 작품마다 상이한 결과가 나타난다.
당신의 스튜디오에 대해, 그리고 현재 거주하며 활동하는 도시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스튜디오는 베이징 외곽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원히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부동산 개발 압박이 있다는 것은 계속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베이징 자체는 매우 포용적이고 정보가 많은 도시이기 때문에 다양한 발전의 기회와 자극을 준다.
카퓌신 백은 어떤 작품을 토대로 만들었나? 
〈언덕 속 숨겨진 이미지(Images Hidden in the Hills)〉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지난 5년 동안 산을 주제로 작업했던 회화 시리즈다. 개인적인 비전, 현재 추구하는 스타일, 아티스트로서 나를 대표하는 상징, 색상 및 선에 대한 감각을 캔버스에서 가방으로 옮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루이 비통의 장인들과 협업하여 본인의 작품을 카퓌신 백에 담는 과정은 어땠나? 
캔버스에서 가방으로 작품을 옮기는 작업은 상당히 방대했다. 사용하는 테크닉과 디자인 중 몇 가지가 최종적으로 가방에 담길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루이 비통 디자인팀, 장인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그들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소재 및 테크닉을 선택했다. 이로써 원작품의 색과 라인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도록 협의해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예술과 패션 중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나? 
예술적인 인식과 행위가 담겨 있기 때문에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Vik Muniz

비크 무니스
 
1961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현재는 브루클린과 리우데자네이루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30년 동안 조각, 사진, 회화, 영화를 만들며 초콜릿, 장난감, 잡지, 폐고철, 흙, 안료 등 비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미술사나 대중문화에서 알려진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작업을 해왔다.
2008년작 〈쓰레기 그림(Pictures of Garbage)〉은 이 작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웨이스트 랜드(Waste Land, 2010)〉로 이어졌고 영화는 오스카상 후보에, 작가 자신은 유네스코 친선대사 후보에 올랐다. 
비크 무니스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 빅토리아 허친슨(Victoria Hutchinson)비크 무니스 스튜디오 전경. ⓒ 빅토리아 허친슨(Victoria Hutchinson)
아티스트로 살겠다는 결정에 영향을 준 사람 또는 계기가 있었나? 
상파울루의 서민 가정에서 자라서 예술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는 웨이터였고 어머니는 통신회사에서 일을 했다. 나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할머니는 대단한 여성이었다. 학교를 가본 적이 없었지만 단어의 모양을 외워 스스로 글을 깨우치셨다. 나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가르쳐주셨는데, 그래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사물을 그리는 것도 잘할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나에게 “커서 아티스트가 될 줄 언제 알았냐?”고 물어보면, 나는 “도형과 기호로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라고 대답한다.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테마는 무엇인가? 
학교 다닐 때 실험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다. 인간의 관점과 색을 어떻게 보는지, 우리 주변의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등이 궁금했다. 나에게 있어 예술이란 사고와 물질, 의식과 현상 간의 진화와 같다.
카퓌신 백은 어떤 작품을 토대로 만들었나? 
오프화이트 컬러의 전형적인 도형들로 모자이크 작품을 만든 〈거의 모든 것(Quasi Tutto)〉이라는 작품을 토대로 하고 있다. 3차원과 1차원적 도형들의 조합을 유리 액자로 덮으면, 도형을 만져보고도 싶고 어떤 도형이 평면적이고 어떤 도형이 표면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나는 가방의 표면에 이 작품과 유사한 도형의 패치워크를 만들고 매우 밝은 컬러를 사용해 변형했다.
루이 비통의 장인들과 협업하여 본인의 작품을 카퓌신 백에 담는 과정은 어땠는가? 
루이 비통의 전문가들과 교감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 가방을 보면 제작에 얼마나 많은 기술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루이 비통은 내가 내 작품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도록 믿어주었고, 나는 루이 비통이 내 작품에 담긴 가치들을 반영한 아름다운 가방으로 재탄생시켜줄 것을 믿었다. 내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모양과 구성, 테크닉과 마감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분석해 어떻게 가방으로 만들어낼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예술과 패션 중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나? 
복합적이다. 궁극적으로 루이 비통과의 협업이 좋았던 점은 예술가들은 배를 곯고 스스로 귀를 잘라버릴 것이라는 진부함을 깨버린다는 점이었다. 예술은 다른 일처럼 하나의 직업이다. 다만 예술작품은 한번 만들면 전 세계를 위해 만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Gregor Hildebrandt

그레고어 힐데브란트
 
1974년 독일 바트홈부르크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활동한다. 바이닐레코드나 오디오, 비디오테이프를 이용해 만든 미니멀하면서도 낭만적인 콜라주, 회화, 조각, 설치작품으로 유명하다. 아날로그 형식의 레코딩 매체, 대중문화의 사례(특히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들), 흑백의 미학이 합쳐진 작품은 관람객의 개인적인 기억을 소환해낸다. 
그레고어 힐데브란트 스튜디오 전경. ⓒ 토마스 로어(Thomas Lohr) 그레고어 힐데브란트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 토마스 로어(Thomas Lohr)
아티스트로 살겠다는 결정에 영향을 준 사람 또는 계기가 있었나? 
독일 남서쪽에 위치한 자르브뤼켄에서 자랐다.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유치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삼촌의 레코드 컬렉션인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닐 영(Neil Young) 등을 들으며 음악에도 빠지게 되었다. 청소년기에는 들은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나 더 큐어(The Cure) 등이 나를 예술가의 길로 인도한 것 같다.
그림과 음악 사이에서 어떠한 합의점을 찾았나? 
마인츠에서 대학을 나온 뒤 1990년 중반에 베를린으로 갔고,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음악을 물리적으로 그림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인스튀어첸데 노이바우텐(Einst¨urzende Neubauten)이라는 그룹의 ‘Falsch Geld’라는 노래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압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 실물을 내 드로잉북에 풀로 붙였다. 음악을 그림으로 변형시킨다는 아이디어를 기초로 바이닐과 VHS 비디오테이프 같은 다양한 형태의 아날로그 오디오와 시각적 재료를 그림과 설치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카퓌신 백은 어떤 작품을 토대로 만들었나? 
일종의 회고전처럼 내 작업의 전반적인 부분을 카퓌신 백에 표현하고 싶었다. 가방 표면의 패턴으로 내 특유의 ‘찢어내기(rip-off)’ 기법을 사용했는데, 카세트테이프의 마그네틱 테이프 코팅을 이용해 앞면에는 양각의 흑백 이미지를 새기고 뒷면에는 음각의 백흑 이미지를 새겼다. LV 시그너처는 실제 바이닐레코드로 처리하였고, 스트랩은 VHS 테이프가 연상되도록 했다. 내부는 내 레코드 레이블인 그르제고르즈키 레코즈(Grzegorzki Records)의 로고 컬러와 동일한 핑크를 더했다.
카퓌신 프로젝트를 통해 탐구해보고 싶은 구체적인 주제가 있었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비밀을 파헤쳐본다는 테마가 너무 좋았다. 내 작품들에는 오디오나 VHS 테이프 실물 안에 어떤 음악 또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 카퓌신 백의 경우, 립스틱이나 집 열쇠처럼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가 궁금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카퓌신 백은 쉽게 이동이 가능한 물건이기에 작가의 작품이 전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나? 
사람들이 든 가방을 따라서 내 작품이 오페라 공연장이든 식당이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들 모두가 카퓌신 백을 아껴줄 것이고 행복할 거라고 자신한다.
 

Paola Pivi

파올라 피비
 
1971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알래스카 앵커리지에 살고 있다. 에스프레소 컵에서 헬리콥터, 램프의 갓에서 비행기, 매트리스에서 잔디가 덮인 슬로프 등 흔한 오브제를 사이즈, 위치, 상황을 바꾸어가며 참신한 방법으로 활용한다. 다양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파올라 피비 스튜디오 전경. ⓒ 크리스토프 코에논(Christophe Coenon)파올라 피비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 크리스토프 코에논(Christophe Coenon)
아티스트로 살겠다는 결정에 영향을 준 사람 또는 계기가 있었나? 
계속해서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에는 어떠한 형태의 예술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 했다. 박물관에도 가지 않았다. 절대로! 22살 무렵부터 바뀌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아티스트였던 것 같다. 다만 인식하지 못했을 뿐.
가장 인상 깊었던 첫 예술작품은 무엇이었나? 
안드레아 파치엔차(Andrea Pazienza)라는 훌륭한 만화책 작가가 있었는데,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로버트 크럼(Robert Crumb)만큼 유명했을 거다.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은 마치 가상현실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 같았고 처음으로 나에게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당시 나는 밀라노에서 화학 및 핵공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공부를 그만두고 밀라노의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미술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진짜 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내가 입고 있던 셔츠에 고슴도치처럼 칼날을 꽂은 것이 내가 처음으로 만든 예술작품이었다.
루이 비통의 장인들과 협업하여 본인의 작품을 카퓌신 백에 담는 과정은 어땠는가? 
가방에 컵을 상감 세공 하는 것, 카푸치노 자리를 금으로 채우는 것, 그리고 특수 자수로 표범을 표현하는 것 등 장인들이 가방의 표면에 이미지를 복제해 넣을 수 있는 그래픽 테크닉에 매료되었다.
카퓌신 백은 쉽게 이동이 가능한 물건이기에 작가의 작품이 전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나? 
루이 비통 팀과 함께 카퓌신 백을 만드는 데에 굉장히 몰두했던 만큼 너무나 기대된다. 전체적인 퍼포먼스의 품질 때문에 내 작품들은 항상 공개가 덜 되었었는데, 이 가방을 들고 있으면 어디를 가든 세련돼 보일 것 같다. 대화의 소재로도 손색이 없는 가방이기도 하다!
 
파올라 피비 스튜디오 전경. ⓒ 크리스토프 코에논(Christophe Coenon)

파올라 피비 스튜디오 전경. ⓒ 크리스토프 코에논(Christophe Coenon)

 
2007년 바젤의 쿤스트할레에 올렸던 〈카푸치노 한 잔하고 갈게(One cup of cappuccino then I go)〉라는 퍼포먼스가 기초가 되었다. 3천 개의 가짜 카푸치노 컵이 놓인 거대한 우리 안으로 살아 있는 표범을 넣었다. 표범은 뛰어 놀기 시작하더니 앞발로 모든 카푸치노 잔을 넘어뜨렸다. 이 퍼포먼스 중 내가 찍은 4장의 사진을 공개한 바 있는데, 지금껏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다섯 번째 사진이 아티카퓌신 백에 반영된 이미지의 기초가 되었다. ‐파올라 피비
 
박의령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이다.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프로젝트를 보며 이제 카퓌신 백을 하나 장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