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왕관’ 전시라니 어딘가 유머 같습니다. 2017년부터 시작된 작업이지요?
다른 프로젝트와 동시에 작업하느라 다섯 개를 만들고는 멈춰 있었어요. 팬데믹으로 접어들면서 사람을 안 만나고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죠. 공포는 커졌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싸우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럴수록 더 집중했고 그만큼 작업이 깊어진 것 같아요. 농담이 영 틀리지 않네요. 시간을 벌어 작품을 많이 만들어냈으니까요.
그 〈달빛 왕관〉 시리즈를 한데 모은 것이 이번 개인전입니다. 해외 활동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어려웠어요.
저는 유학도 가지 않았고 여기서만 쭉 작업을 했어요. ‘로컬’이라는 데 자부심이 있고요. 그런데 베니스 비엔날레나 영국 대영박물관, 이탈리아 국립카포디몬테 미술관 등에 작품이 가 있다 보니 우리나라 관객에게 보일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신작은 꼭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했어요. 아트선재센터는 젊은 예술가들의 산실이잖아요? 그래서 더 좋았고요.(웃음)
왕관이라는 토대 위로 몸체가 자라난 것처럼 의인화된 작품의 끝부분. 보는 이의 얼굴이 비춰지며 작품 안으로 소환된다.
존엄과 고귀의 상징인 왕관이 맨 아래에서 여러 형상을 받치고 있습니다. 등신대와 같은 눈높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서양 문화를 막론하고 부처님, 예수님, 성인 뒤에는 광배가 있어요. 많은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어렸을 때부터 계속 생각했거든요. 에스키모가 많은 색을 구분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는 이들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저는 그것을 내면에 영성 혹은 신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어요. 그것이 아름다움을 보게 하는 힘이라고요. 특정한 사람들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그 힘이 있기에 왕관을 돌려주고 싶었어요.
지난 시리즈인 〈번역된 도자기〉도 버려진 도자 조각을 이어 붙였습니다. 〈달빛 왕관〉 역시 한데 모일 수 없는 것들을 빼곡하게 조합합니다.
만드는 걸 좋아했지만 생각이 많았어요.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통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손으로 뭔가를 했어요. 드로잉도 하고 만들기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발맞춰나가도록.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아도 내 손이 똑똑한 도구가 되어 스스로 만들어내는 지경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도자기에서 나온 파편을 딱 맞춰 붙이는 건 어렵잖아요. 오히려 중매쟁이처럼 놀듯이 하니까 잘 되더군요. 까마귀처럼 빛나고 예쁘고 쓸데없는 것들을 모으는 습성이 〈달빛 왕관〉을 탄생하게 했고요. 천사와 십자가, 용은 어찌 보면 거대한 믿음의 구조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죠. 작은 가방에 용 무늬나 십자가가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있어 보이잖아요. 저는 이런 의미이니 이것과 저걸 붙이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들만의 유기적인 세계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하나를 고르면 그 뒤에 저절로 따라붙는 ‘똑똑한 손’이 이끌어가는 작업이었어요.
전시장에서 놀란 건 작품의 크기였습니다. 선반 위에서 아름답게 빛날 것 같은 모양인데 직접 보니 사람만큼 컸어요.
내 안의 신성, 우리 모두에게 연결되는 신성에 바치는 작업이니까 내가 할수 있는 온갖 귀한 걸 다 갖다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웃음) 여담이지만 보기에 예쁘니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절대 안 판다고 해요. 이 작업을 하면서 예술이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는 옥션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작품과 돈의 호환 가치에 둔해요.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해서 돈이 모이면 개인전에 다 쏟아붓는 걸 반복했어요. 제일 처음 작품을 판 것도 마흔다섯 살이었고요. 작품이 거래돼야 생활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이치와 순기능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작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인지 알게 됐달까요?
얼마 전 «불가리 컬러»전 커미션 작업은 구슬할망 신화였습니다. 앞으로 더 펼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요?
우리나라의 여성 신화를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어요. ‘할미’나 ‘할망’을 로마시대의 ‘헤라 여신’급으로 만들 겁니다. 제가 번 돈으로 저에게 커미션을 주려고요.(웃음)
동서양의 문화를 막론하고 부처님, 예수님, 성인 뒤에는 광배가 있어요. 많은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생각했거든요. 에스키모가 많은 색을 구분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는 이들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저는 그것을 내면에 영성 혹은 신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어요.
정성스러운 수작업이 기본이지만 커다란 스케일을 만들기 위해 3D 기술도 사용했다.
박의령은 〈바자〉의 피처 디렉터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이 언제나 또렷하기를 바라며 전시장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