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녹화가 한창이다. 인생작을 다시 작업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좋은 대본, 좋은 연출, 좋은 결과물과 피드백도 의미 있지만 무엇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안에서 많이 고민하고 성장했다. 이야기들에 나 자신이 위로를 받기도 했고. 이 작품을 또 한다는 것 자체는 너무 좋지만, 그렇다고 쉬워지는 건 또 아니더라. 더 다채롭게, 더 깊게, 더 잘하고 싶어서 생각이 많았다. 이전보다 나아져 있어야 하니까. 사실 매 작품이 다 그렇다. 심지어 찍으면서 힘들기만 했던 작품도 지나고 나면 그걸 통해 얻은 게 훨씬 많더라.
동시에 〈너를 닮은 사람〉도 촬영 중인데. 대선배 고현정과의 호흡은 어떤가?
사실 드라마 두 개를 동시에 찍고 있다 보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있는데 현정 선배가 옆에서 그런 걸 너무 잘 이해해주신다. 무거운 작품을 하면 힘들어지는 면이 있는데, 우리 현장은 촬영하는 순간에만 진지하고 그 외에는 다들 장난치고 웃느라 바쁘다. 저도 선배가 되게 재미있는데, 선배도 내 움직임이나 말장난 하나에도 박장대소하시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아까 현빈이가 글쎄…” 하면서 재현해달라고 하신다.(웃음)
셔츠는 Rejina Pyo. 팬츠는 Ports V. 귀고리는 Viollina. 오른손 검지와 왼손 엄지에 착용한 반지는 Tatiana. 왼손 검지, 중지, 약지에 착용한 반지는 모두 Haesoo.L.
극중 인물의 직업이 미술 교사더라.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던 미술학도였지 않나. 연기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을 받았나?
직업적인 게 어마어마하게 표출이 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영향이 있긴 하겠다. 내 전공이 이 일과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요즘 보면 뭐든 어디에 써먹을 데가 있더라.
2017년 4월 〈바자〉에서 안규철 선생의 인터뷰어로 활약해주었다. 그때 했던 질문들, 기억나나?
그때의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며, 연기자 신현빈에게 돌려주고 싶은 물음을 몇 개 발견했다. “본인을 가리켜 ‘손의 노동으로 생각을 펼쳐가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미술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하나라고 보시는데, 예술을 하는 도구로서의 몸에 대한 나름의 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연기자 또한 ‘몸의 노동으로 생각을 펼쳐가는 사람’이다. 본인 역시 노동자의 하나인가?
회사원이든 프리랜서든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일 거다. 나 또한 연기를 해서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사람이니까 노동자다.
재킷은 Recto. 화이트 재킷은 Moon Choi. 티셔츠는 Johnny Hates Jazz. 허리에 묶은 셔츠는 Songe Creux. 트레이닝 쇼츠는 Nylora. 귀고리는 Viollina. 슈즈는 Vans.
재킷은 Recto. 화이트 재킷은 Moon Choi. 허리에 묶은 셔츠는 Songe Creux. 트레이닝 쇼츠는 Nylora.
연기자로서 소명의식보다는 직업의식이 강한 쪽인가 보다.
일단 내가 시청자의 입장에서 안 볼 것 같은 작품은 출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연기했다고 해서 재미 없는 작품을 봐달라고 남들에게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픽션을 믿고 사실인 것처럼 보여야 하는 입장인데, 관객으로서의 내가 설득되지 않으면 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이 배우 신현빈의 장점으로 작품 전체를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꼽던데,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무조건 내 캐릭터가 더 잘 보여야 한다는 욕심이 크게 없다는 걸 아셔서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 같다. 작품의 밸런스라는 게 있지 않나. 내 몫을 해내지 못하면 분명 문제가 되겠지만 그 이상을 한다고 과연 더 좋은 건가 싶다. 작품이 잘 되어야 배우도 의미를 갖는다.
셔츠는 Rejina Pyo. 팬츠는 Ports V. 귀고리는 Viollina. 오른손 검지와 왼손 엄지에 착용한 반지는 Tatiana. 오른손 약지와 왼손 검지, 중지, 약지에 착용한 반지는 모두 Haesoo.L.
배우 안은진이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신현빈은 아싸 같지만 인싸”라고 말했다. 오늘 쭉 지켜보면서 그 표현이 꽤 정확하다고 느꼈다.
그런가. 예전에 나 자신을 돌아 보며 깊이 반성한 점이 하나 있다. 돌이켜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누구한테 먼저 다가가서 친구 하자고 해본 적이 없더라. “너도 이거 먹을래?”, “너는 집이 어디야? 이따가 끝나고 같이 가자.” 이런 제스처가 오가면서 친해지지 않나. 그런 액션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도 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다. 대신 누가 다가오면 잘 받아준다. 나한테 말을 걸면 누구보다 잘 들어줄 수는 있는데, 먼저 말을 못 거는 거다. 그걸 깨닫고 나니 새삼 내 주변 친구들에게 고마워지더라. 배우 친구들과의 인연도 희한하게 그런 식으로 흘러왔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더 감사하다.
본인이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대하기 때문이겠지.
왜냐하면 일단 쉽게 시작을 못하니까(웃음) 소중하게 간직해야지. 친구들끼리 이런 농담도 한다. “우리 계속 친하게 지내자. 이 관계가 끝나면 서로가 힘들어진다.”(웃음) 내 경우엔 확실히 친구들에게 받는 에너지가 있다. 이런 걸 인싸라고 하는 건가?
재킷은 Moonsun. 이너로 입은 니트 톱은 Leha. 셔츠는 Longchamp. 팬츠는 Recto. 볼캡은 Isabel Marant Etoile. 귀고리는 Leyie. 목걸이는 Verutum.
안규철 선생께 했던 질문 중에 또 하나를 돌려주고 싶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백지를 마주하는 습관을 오래도록 지켜오고 있는 걸로 압니다. 선생님께서 일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당신의 경우엔 어떤가?
일기를 쓴다. 손으로 쓰다가 휴대폰에 적기 시작한 지 몇 년 됐다. 일기를 쓴다는 게 요즘 세상에선 꽤 신기한 일이더라. 일기를 쓰는 일은 내게 일상적인 습관이면서도 하나의 의식 같기도 하다.
그렇게 모아둔 감정이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나?
그럴 때도 있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일기를 보면 되게 심각한데 도통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고, 어떤 날은 뭐가 그렇게 좋았나 싶을 때도 있고. 기억이라는 것도 노력하지 않으면 더 빨리 휘발되지 않나. 감정이든 일상이든 순간이든 그런 걸 박제해두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또 하나, 일상에서 소중히 여기는 일이 있다면 ‘향’이다. 향기가 주는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품에 들어가면 캐릭터에 따라서 다른 향을 쓴다. 시청자에게 전달되지는 않더라도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용도다.
음,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그게 어떤 향기든 배우로서는 매번 다른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향기가 오래 남는 배우를 꿈꾸는 것 같기도 하다. 막 데뷔한 20대 시절의 인터뷰에서도 배우 윤여정이 본인 연기의 방향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말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게 가장 큰 꿈일 것이다. 배우라는 건 늘 그 나이에 맞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한다. 거기서 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있다. 무엇보다 연기 자체를 좋아한다. 10년 전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일이 좋고 계속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
보머 재킷, 데님 팬츠는 Dior. 이너 톱은 Nylora. 레이어드해 연출한 데님 팬츠는 Stella McCartney. 목걸이는 Verutum. 오른손 검지에 착용한 반지는 Viollina. 왼손 검지에 착용한 반지는 Favv.
서른이 될 즈음 일이 별로 없었다. 대신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때의 경험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전까지는 일 내지는 일의 결과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면 그후로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달까. 이 넓은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자연이나 예술품을 보면서 사람이 작아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나는 그런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더불어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고.
그게 뭔지 나조차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지만, 그냥 나답게 살자는 것.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나답지 않은 선택을 하고 나답지 않은 척을 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일을 하다 보면 그래야 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하지만 그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달까. 어떻게 보면 20대 여자들이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요구받는 애티튜드가 있지 않나. 거기엔 나답지 않은 어떤 것이 포함되는 경우가 꽤 많고. 서른 즈음에 그런 것들에 대해 내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좀 덜 겁내고, 좀 더 씩씩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지금처럼 배우로서 바쁜 나날을 꿈꾸기도 했나?
보통 그런 걸 꿈꾸나? 기본적으로 나는 별로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 다른 이야긴데, 그 시절 같이 여행을 다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재취업을 준비 중이었고 나도 때마침 작품이 없었다. 둘이서 홍콩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갔는데 거기서 그런 얘기를 했다. “나중에 우리 여기 다시 오자. 일이 너무 바빠서 쿨하고 멋있게 당일 저녁에 예약해서 날아오는 그런 사람이 되자. 그때 꼭 다시 오자.” 그런데 그 이후에 나도 그 친구도 너무 바빠진 거다. 지금도 종종 말한다. 그 레스토랑에 다시 가서 정정해야 할 것 같다고. 이 정도의 바쁨을 바란 건 아니었다고. 기도발이 너무 셌다.
셔츠는 Lee Y. Lee Y. 스트라이프 베스트, 팬츠는 Moon Choi. 볼캡은 Awesome Needs. 귀고리는 Rita Monica. 시계는 Ferragamo Timepieces by Gallery O’clock. 스니커즈는 Maiso Kitsune by Beaker.
확실히 올해 열일 중이긴 하지. 촬영 말고 개인적인 성취는 없었나?
크게 아프지 않고, 주어진 일들을 하고, 그러다가 짬이 나면 좋아하는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이야기하고. 중간중간 속상한 일이 있으면 문자나 통화로 풀어버리고. 이런 날들이 모두 나의 성취라면 성취인 것 같다.
그런 하루 하루가 당신의 일기장엔 어떤 문장으로 쓰여 있을지 궁금하다.
별거 없다. (휴대폰을 꺼내 일기장을 열어보며) 음, 이날은 조금 힘들었나 보다. (문장을 읽는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불안하게 괴로운 순간들을 견디게 하는 건 결국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들. 잊지 말아야지. 이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