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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조

달리기, 채식주의, 떡볶이, 책방 손님, 친구, 부모님, 기타 등등. 책방 오너이자 뮤지션이고 작가이기도 한 요조가 일상의 면면을 고루 담은 새 책과 신곡을 한꺼번에 선보였다.

BYBAZAAR2021.04.12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과 싱글 앨범 〈모과나무〉를 같은 날(1월 25일)에 선보였다. 뒤이어 싱글 앨범 〈작은 사람〉 발매와 소규모 단독 공연도 속전속결이었고. 우연과 고의성의 비율이 궁금했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고의성을 가졌다. 사공(‘모과나무’ ‘작은 사람’ 작곡)과의 첫 미팅 자리에서 앨범 발매와 더불어 공연 날짜까지 확정해버리더라. “이때쯤 사공이랑 요조랑 앨범을 내고, 한 달 뒤에 공연하자.”라면서. 회사에서 이렇게 일을 추진해야만 내가 ‘또, 세월아네월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곡도 아직 안 나왔는데 공연일부터 정하는 게 어딨냐”면서 넌지시 항의를 했었는데, 정작 작업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일사천리였다. 마치 무빙워크 위를 성큼성큼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이런 거대한 고의성 안에서 발생한 너무 감사한 우연도 있다. 원래 사공과 ‘모과나무’ 한 곡만 작업하기로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부모님에 대한 곡 ‘작은 사람’도 완성해버렸다.
 
앨범을 발매해야 해서 사공을 만났나, 아니면 그와의 만남을 계기로 앨범 발매를 추진했나? 
전자였다. 신곡 발매는 나와 회사의 숙원사업이었다. 다만 애초에 회사와 계약할 때 구두로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게 해달라”는 유일한 조건을 어필했고, 나와 회사의 관계는 피고용인과 고용주를 완전히 넘어선 형태이기 때문에 작업을 강요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회사는 나를 오래 기다려주었고 어르고 달래는 기간도 가졌다. “이거 먹어볼까? 아님 저건 어때?”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기간을 거친 뒤 서로의 어떤 노력의 일환으로 사공의 노래를 듣게 됐을 때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근 4년 동안 신곡 발표는 없었던 한편 다섯 권의 책을 내놓았다. 곡 작업보다 글쓰기가 더 쉬웠나?
맞는 얘기다. 기술적인 접근성을 따져봤을 때 뮤지션보다 작가로서의 창작이 나로서는 훨씬 편하다. 곡을 완성하려면 작사뿐만 아니라 작곡도 해야 하고, 연주자도 필요하고, 편곡과 녹음도 해야 하잖아? 그런 복잡한 과정 때문에라도 곡 작업에는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 내 기술적인 한계를 생각하면 지레 겁도 난다. 반면 글쓰기는 매우 고되고 어려운 일임은 분명한 한편 그 과정만큼은 간단하다. 노트북을 열면 바로 몇 자라도 쓸 수 있고, 글이 잘 안 써지면 맥주를 마시는 등 딴짓을 하다가 다시 글을 써볼 수 있으니까.
 
 
새 책과 신곡을 함께 선보인 결과로 어느 때보다 바쁠 것이다. 제주의 ‘책방무사’도 돌봐야 하고. 신간에 담은 “부드럽게, 허벅지가 터지지 않게” 일하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갔나?
그게 내 최대 모순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일을 병행하면서 허벅지가 터질 듯 ‘빡세게’ 살고 있고, 스트레스는 노상 존재했다. 그러니까 성산일출봉을 쉬엄쉬엄 오른 끝에 정상에 다다랐을 때 ‘하고 싶은 일들도 지금처럼 느슨하게 해보자’는 다짐을 한 것이다. 요가할 때도 ‘나를 볶아치지 말자’며 다짐하곤 한다. 한데 현실은 소설작법서를 여러 권 사서 쌓아두고도 그것들을 읽으면서 공부할 시간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책 속의 글들이 실패에 관한 경험으로 전부 묶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책 제목에 실패라는 강렬한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시험을 망쳤거나, 몸이 굉장히 아프거나, 앨범이나 책이 잘 안 팔리는 등의 실패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떤 위로의 도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똑똑하면서도 멍청한 것이, 스스로가 백날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위로해도 그 마음 자체가 겉도는 느낌을 받지 않나? 한데 친구를 비롯한 타인의 목소리는 굉장한 위로로 작용한다. 이렇듯 쏙 흡수되는 말은 얄궂게도 친구나 음악, 책, 영화를 비롯한 나의 밖에 존재한다.
 
책과 신곡에 수년간의 오만 사사로운 얘기들을 고루 담았다. 그렇다 보니 에세이스트로서 글감 고갈에 관해 고심할 법도 한데. 
이번 책 때문만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작년부터 그런 부분에 대해 체감한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봤다는 얘기 말고는 내 글감 창고에 쌓이는 게 없더라.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책 서문에 써놓은 대로 나의 글쓰기는 타지와 타인에 의지함으로써 가능했음을 깨달았다. ‘더는 노래하고 싶은 게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소설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글로 옮기면서 유독 신이 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싶었던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친구들하고 주고받은 순수한 얘기들. 그럴 때면 글로 옮길 때 더 자세히 설명하고 또 최대한 재미있게 쓰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내가 그 친구들에게 갖는 애정을 똑같이 느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실패는 어떻게 하나? 
그 실패에 대해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의 연민조차 작동하지 않고, 아무리 애써도 납득할 수 없는 과오는 내 속에 얌전히 있어야 한다. 차라리 내가 그 일을 잊어버렸으면 좋겠지만 이런 말을 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 실패를 까먹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내 지인이나 사람들도 그런 유의 얘기들은 속에 잘 감췄으면 좋겠다. 숨김도 솔직만큼의 미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창작자로서 어떻게든 무엇으로 가공해내고 싶은 욕망이 드는 일은 에세이가 아닌 다른 표현 수단을 고민하게 된다. 구구절절 서술하기에 너무 충격적이거나 쓰면서 내상을 입을 것 같은 일들은 시나 소설, 노래로 얘기해보면 어떨까 하고. 실제로 미주알고주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징글맞다고 느껴질 때 노래를 부르면 홀가분해진다. 노래로는 모든 서사를 완벽하게 맞추거나 상대방을 열심히 이해시키지 않아도 되니까. 한데 노래를 하다 보면 다시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이런 마음이 들 때 다시 글을 쓰면 또 신바람이 난다. 다만 창작에 대한 힘듦이 버거울 때는 책방 일이 너무 좋다. 책을 정리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손님과 노닥거리면서 머리가 아닌 육체를 쓰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것이다. 다만 올해는 뮤지션으로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계획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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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 글/ 김수정(프리랜스 에디터)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