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팬더믹 시대, 로에베가 가는 길.

로에베의 피와 살을 이루는 역사적 순간들.

BYBAZAAR2021.03.13
 

#LOEWE'S HISTORY

1846. 스페인의 마드리드 시내에서 후안 로에베 라테는 여러 가죽 장인들과 공방을 열었다. 처음에는 시가 케이스, 액자, 코인 홀더, 담배 파우치 등과 같은 작은 가죽 제품과 보석상자를 생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1872. 가죽을 다루는 데 있어 이상주의자이자 전문가였던 독일인 엔리케 로에베 뢰스베르크(Enrique Loewe Roessberg)가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에 정착하며 가죽 공방에 참여하게 된다.
 
1892. ‘E. 로에베’라고 불렸던 회사는 당시 마드리드의 번화가인  로보 거리 전체에 광고와 마크가 붙어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1905. 알폰소 13세의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시절, 로에베가 왕실 납품 업체로 지정된다. 이로써 로에베는 높은 품질을 공식적으로 인증받았다.
 
1945. 로에베의 디자이너 호세 페레스 데 로사스(José Pérez de Rozas)는 브랜드의 상징인 송아지 가죽 가방을 만들었으며, 로에베 식 비주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윈도디스플레이도 선보였다. 당시 스페인 내전 후 위축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윈도디스플레이는 세간의 이슈가 되었다.
 
1964. 스페인 여행의 붐이 불던 시기로, 여행객들에게 로에베의 가죽 제품은 특별한 기념품이었다. 이어 로에베 가문의 4세대인 엔리케 로에베 린치(Enrique Loewe Y Lynch)가 회사에 합류하며 기성복, 향수와 같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이후 70년대 들어 칼 라거펠트가 첫 번째 여성 컬렉션을,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남성 컬렉션을 맡았다.
 
1973. 비센테 벨라(Vicente Vela)가 현재까지 로에베의 상징이 된  로에베 모노그램을 만들었다.
 
1975. 로에베의 가장 상징적인 가방 중 하나인 아마조나(Amazona) 백이 처음 선보였다.
 
1988. 로에베 문화 재단이 설립된다.
 
1996. 창립 150주년을 맞은 해로, 로에베는 세계적인 명품 그룹 LVMH에 인수된다.
 
2013. 30살의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이 로에베의 새로운 수장이 된다.
 
2016. 11월 브랜드의 철학을 전방위적으로 담은 카사 로에베 마드리드 매장을 오픈한다. 이곳은 조너선 앤더슨이 큐레이팅한 예술, 가구 및 디자인 오브젝트가 마치 집처럼 상품들과 어우러져 있다.
 
 

#PEEK INSIDE THE LOEWE WORLD


만약 당신에게 1800년대에 만들어진 유서깊은 브랜드가 맡겨졌다고 생각해보자. 역사와 신념 같은 것이 무려 2세기에 걸쳐 쌓인, 그야말로 좋게 말하면 견고하고, 또 다른 측면으로는 고집스러울 수도 있는 브랜드는 쉬이 건드리기 힘든 존재다. 조금이라도 거칠게 다루면 바스라질 것 같고, 그렇다고 두고만 보기에는 점점 뒤처질 것 같은, 흡사 오래된 목조 건물을 다루는 건축가의 마음이 든다. 이 어려운 레노베이션 현장에 투입된 사람은 서른 살의 청년 조너선 앤더슨이었다. 2013년, 그는 자신보다 1백37년을 더 산, 1846년생 브랜드인 로에베를 맡게 된다. 이 이후의 스토리는 패션학도를 뛰어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을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패션 천재의 등장 
조너선 앤더슨은 1984년 북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마러펠트에서 태어났다. 럭비 선수인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무엇이든(심지어 새까지!)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난독증에 시달렸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주고받는 일을 어려워한다. 그런 그에게 활자가 아닌 이미지의 힘은 더 강렬했다.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연기에도 흥미를 보여 한때는 배우의 꿈을 꾸기도 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남성복 과정을 배우던 도중 프라다의 비주얼 머천다이징 부서에 취업하며 처음으로 패션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프라다에서 쇼윈도 작업을 하며 궁극적으로 패션 전 과정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현실적인 측면에서 전체가 응집된 곳이 바로 쇼윈도잖아요.
 
그는 종종 프라다에서의 시작이 자신의 패션적 역사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이후, 2008년 졸업과 동시에 22살의 나이로 자신의 이름을 건 JW 앤더슨을 론칭했다. 그는 그야말로 패션계에 등장한 ‘혜성’ 같은 존재였다. 성별이 모호한, 때로는 성별이 전복된 그의 스타일은 사람들의 옷차림뿐 아니라 사고방식도 바꿔놓았다. 프릴이 달린 부츠와 튜브 톱을 입은 남자들이 등장한 2013 F/W JW 앤더슨 컬렉션을 터닝 포인트로, 그는 거대 패션 왕국 LVMH의 가장 젊고 에너지 넘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다. 그에게 맡겨진 과제는 1846년생 로에베의 부활이었다.
 
 
다시 쓰는 로에베의 과거
2018 S/S 광고 캠페인.

2018 S/S 광고 캠페인.

2013년 조너선 앤더슨이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후 그가 지휘한 첫 로에베 컬렉션이 나오기까지는 무려 18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패션계의 속도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처음 로에베에서 제안받았을 때 저는 능력 면에서 아무것도 입증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스타트업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죠.
 
그는 자신의 팀이라 할 수 있는 M/M(Paris)와 함께 브랜드 로고부터 손보기 시작했다. 로에베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에 있어서 비주얼적인 언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조너선 앤더슨은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을 찾아가 1997년 이탈리아 〈보그〉에서 찍은 화보와 비슷한 뉘앙스의 광고 캠페인을 요청했다. 심지어 그때의 화보 컷을 그대로 광고 캠페인에 인용하기도 했다. “처음 로에베에 왔을 때, 전 로에베가 패션에 관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제 브랜드인 JW 앤더슨에서는 패션을 연습해요. 하지만 로에베에서 제가 받은 도전은 문화적 풍경을 만드는 일이었죠.”

 
그는 데뷔 컬렉션인 2015 S/S 컬렉션을 선보이며 모델들에게 에스파드리유를 신겼다. “에스파드리유가 없는 스페인의 문화적 풍경은 상상할 수 없죠!” 로에베 안에서의 혁명은 조용히, 그리고 날카롭게 진행됐다.
 
우리는 브랜드가 과거 그대로 멈춰 있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더 많은 걸 뜻하길 바라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걸 해내길 바라죠. 이제는 단순히 고급스러운 제품 그 이상이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선보이는 옷에는 이유가 있어야 해요.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브랜딩하고 어떤 문화를 대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로에베에 합류했을 때 전 럭셔리라는 콘셉트 때문에 고민했어요. 이전의 럭셔리가 그 의미를 잃었기에 럭셔리라는 원칙에 동의할 수 없었죠. 당시 전 럭셔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 혹은 그 브랜드가 기반을 둔 곳과 그 브랜드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문화적으로 어떤 중요성을 지녔는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 우리가 했던 모든 작업은 럭셔리에 반하는 것이었어요.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가 깃든 모든 것이 사라지길 원했죠.
 
영국 출신 도예가 윌리엄 드 모건의 타일 디자인을 담은 2020 리조트 컬렉션 백.

영국 출신 도예가 윌리엄 드 모건의 타일 디자인을 담은 2020 리조트 컬렉션 백.

조너선 앤더슨과 로에베의 선택은 문화를 만드는 일과 가치를 찾는 일, 그리고 사람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 패션을 만드는 일이었다. 
과거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옷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한 옷이었어요. 그건 오늘날의 패션 디자이너에게도 적용되지만 불행히도 요즘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개념이 점점 좁아지고 있죠. 사실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좋은 컬렉션이란 처음 봤을 때 ‘당장 갖고 싶다’라는 느낌보다는 ‘이 옷을 어떻게 입으라는 거지?’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컬렉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의 의도와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이 보이게 되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잇는 공예
2021 S/S ‘Show on the wall’는 1:1 비율의 실제 사이즈로 즐길 수 있는 페이퍼 패션쇼.

2021 S/S ‘Show on the wall’는 1:1 비율의 실제 사이즈로 즐길 수 있는 페이퍼 패션쇼.

로에베의 가치는 패션과는 멀 것 같은 단어, ‘공예’로 집결됐다.
 
로에베에 입사한 순간부터 ‘장인 공예의 유산(A Legacy Of Artisan Craft)’을 보여주는 문화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소비자들이 로에베의 가방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물건, 즉 지혜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기를 원했습니다. 현재는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본인들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설명하기 힘들어요.
 
2016년, 조너선 앤더슨의 구상에서 시작된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Loewe Craft Prize)는 장인이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미래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공예야말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의 가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에는 전 세계 18세 이상의 모든 공예가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우승자는 현금 5만 유로를 상금으로 받는다.
 
공예는 저의 열정이고, 저는 공예작품들을 수집하며 영감을 얻어요. 저 역시 제 창의력을 인정받는 상을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너선 앤더슨의 공예에 대한 관심은 세계를 보는 관점조차 바꿔놓았다. 자고로 공예는 결과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공예는 만드는 사람의 삶의 태도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조너선 앤더슨이 아트 프라이즈를 여는 것과 패션을 뛰어넘어 라이프스타일, 예술 제품까지 함께 큐레이팅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4년 전,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아이/로에베/네이처(Eye/Loewe/Nature)’ 컬렉션을 론칭했습니다. 이 컬렉션은 장인 공예에 기반을 두며, 업사이클링과 리사이클링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로에베의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맞다고 생각했던 것에 관한 의심, 괜찮을 거라는 안도에 대한 차가운 지적이 이어졌다. 나라를 초월해 가장 빠르게 글로벌라이징 중이던 패션계가 코로나로 인해 겪은 타격은 예상 그 이상이었다. 패션 브랜드의 모든 수장들은 코로나라는 ‘도전장’에 아주 빠른 속도로 대답해야 했다. 당장 런웨이라는 익숙한 플랫폼 자체를 바꿔야 했다. 로에베가 처음 변화를 시도한 쇼는 여성 프리 컬렉션이 포함된 2021 S/S 남성 컬렉션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진정으로 ‘미래적인’ 쇼가 필요했다. 조너선 앤더슨은 위기를 기회 삼아 쇼에 대한 체험을 확장시켰다. ‘Show in A Box’라는 이름으로 프레스와 바이어들에게 보내진 아카이브 상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접목시킨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쇼였다. 집으로 배달된 쇼는 코로나로 인해 잃었던 감각, 즉 촉감을 자극한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방법이 ‘디지털’로 한정되어 있고, 팬데믹이란 상황에서 컬렉션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에도 한계가 많이 느껴졌죠. 모든 것이 아이러니하게 얽혀 있어요. 쇼 없이도 쇼를 시도해야 하고…. 하지만 저희 팀은 이 상황을 창의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1940년대 전쟁 후 위축된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쇼윈도로 희망을 전했던 것처럼 로에베는 새로운 형태의 쇼로 이 불행한 시대의 사람들을 위로한다. 조너선 앤더슨이 집으로 보내온 ‘쇼’는 2021 S/S 여성 컬렉션에서는 ‘Show on The Wall’, 2021 F/W 남성 컬렉션에서는 ‘Show in A Book’과 같은 형태로 하나의 시리즈물이 되었다. 이 역시 로에베만의 아카이브이자 큐레이팅이며 소비자들에겐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변하지 않는 건, 패션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밀접하고 살가운 생활 예술이라는 점이다.
 
30살에 로에베라는 묵직한 브랜드를 맡은 조너선 앤더슨은 올해로 38살이 되었다. 8년의 세월 동안 로에베는 수많은 가지치기와 접붙이기를 통해 가다듬어졌다. 그리고 2021년이란 시간대와 완전히 일치하는, ‘지금의’ 로에베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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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민정(프리랜서)
  • 사진/ Loewe
  • 웹디자이너/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