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균형 감각이 잘못됐어요. 일하기 위해 살잖아요. 우린 살기 위해 일해요.
미국 시카고에서 파리로 건너온 워커 홀릭 에밀리. 미국식 업무처리 방식에 익숙한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성과를 내고 싶어 노력할수록 프랑스인 직장 상사와 동료들은 불편해한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에밀리에게 직장 동료 루크는 균형감각을 가지라 조언한다. 살기 위해 일한다는 것은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일에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지 않는 것. 프랑스인들은 집중해서 일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온전히 사용하는 삶을 추구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프렌치식 워라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그만 먹어요, 왜 먹는 거죠? 그럴 땐 담배를 피워요.
회사 업무의 연장으로 한 파티에 참석한 에밀리와 그녀의 직장 상사 실비. 배가 고팠던 에밀리가 열심히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이해가 안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실비가 던진 대사다. 대개 프랑스 여자들은 많이 먹지 않는다. 대신 맛있는 것을 조금 먹는다. 허기를 채우기 위한 끼니 대신 미식의 감각을 일깨우는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 그녀들은 보통 저녁 8시에 시작되는 디너에서 와인과 치즈, 채소를 곁들인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는 걸 좋아한다.
우린 프랑스식 엔딩을 선호하죠.
그게 어떤 건데요?
비극.
냉소적인 태도는 프랑스인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영화는 현실을 잊기 위해 보는 것이라는 에밀리에게 "현실을 잊는다는 망상 따위 혼자나 해라. 현실은 절대 떨칠 수 없다. 절대"라며 맞받아치는 파리지앵들. 디즈니식 해피엔딩을 꿈꾸는 대신 현실성 있게 삶을 직시하는 관점이야말로 프렌치 시크 다운 발상이다. 극 중 프렌치들은 일이 꼬일 때마다 쎄라비(c’est la vie)를 외친다. 이런 게 바로 인생이라는 뜻. 좋다가도 금세 나빠지고, 바닥을 치다가도 다시금 좋아지는 아이러니한 인간의 삶을 일컫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인생이란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것이란 걸 인정하면 팍팍한 삶의 무게도 조금은 견딜 만 해진다.
때론 복잡한 관계가 가장 멋져요.
아래층에 사는 남자 가브리엘에게 끌리지만 복잡한 관계에 얽히기 싫어 마음을 절제하는 에밀리를 보고 실비는 답답하다는 듯 외친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섹시한 연애를 즐기는 프랑스인들은 사랑 앞에 있어서는 두려운 것도 지켜야 할 규칙도 없다. 철학자인 아버지와 아들을 번갈아 사귀고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와 결혼했던 카를라 브루니의 화려한 연애 편력도 프랑스에서는 비난거리나 이슈가 되지 않는다. 연애사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존중하기 때문. 프랑스에서는 예쁜 외모를 가진 사람보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감추지 않고 쟁취하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사람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을 온전히 소유할 생각도 남에게 온전히 소유될 생각도 없어요.
유부남인 앙투안과 비밀스러운 내연관계를 유지하는 실비. 그런 그녀가 걱정된 에밀리는 이제 그만 한 사람에게 정착하는 게 어떠냐 조언을 한다. 그러자 실비가 쏘아붙인 말. 프랑스인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세운 철학을 지향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대신 타인의 자유도 존중한다. 인간의 본질은 사회, 종교, 타인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철학적 사유가 지배적인 프렌치들은 통념에 저항하고 자신이 세워둔 잣대에 따라 세상을 평가한다. 결혼이나 연애에서도 마찬가지. 그 옛날 장 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벌인 사랑의 실험처럼 자유롭고 주체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왜 결혼 안 해요?"라는 식의 질문은 무례함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