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바깥생활 ep 1. 연쳔편
세계적으로 희귀한 지질 생태를 볼 수 있는 주상절리와 카약. (c) 조혜원
카약에 몸을 싣고 사알사알 흐르는 임진강에 미끄러지자 주상절리의 층층 계단이 더욱더 명징하게 눈에 박힌다. 가을바람이 적당히 부는 말간 날, 발끝은 서늘하고 가끔 튀어 오르는 물이 날카롭다. 다행히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살이 기분 좋은 유영을 돕는다. 절벽의 검은 그림자가 카약 아래로 늘어질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가래떡 같은 모양의 단층이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은 먼 곳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위세가 넘친다.
연천군 마산면 동이리 67-1번지 일대에서 만나는 주상절리는 130km 너머 북한에서 발원한 화산의 흔적이다.
50만 년 전 신생대 암석의 풍화와 침식으로 내륙에 생성된 수직형 주상절리로는 국내 유일하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질 생태다. 붉은 돌단풍이 화석처럼 박힌 적벽에는 작은 벙커가 눈에 띄고, 완만한 지형의 고생대 암석을 대칭적으로 마주한다. 카약은 억겁의 두 시대가 만나는 이곳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동이대교 아래 차박(자동차에서 잠을 자며 머무르는 것) 하는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5.6km의 카약 탐험을 이어간다. 이 물길은 그대로 북한까지 이어질 것이다.
와썹카약 031-835-5470, watsup.modoo.at
북한에서부터 흘러 내린 물줄기, 연강나룻길 (c) 조혜원
왜 연천이냐고 묻는다면, ‘걷기 좋은 낯선 길’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한탄강 유네스코 지질공원의 구석구석을 가로지르는 ‘지오트레일’ 코스들은 어쩌면 주변의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중 군남면 옥계리에 있는 로하스 파크에서 출발해 옥녀봉 정상을 찍고 개안마루, 현무암지대를 지나 다시 로하스파크로 내려오는 5.7km 거리의 연강나룻길 일부를 걸었다. ‘경기도 최북단 휴전선 길’이라 내세우지 않아도, 북한에서부터 흘러 내린 물줄기를 쫓는 시간은 한적하고 아름다우며, 오래 응시하게 하는 목가적 풍경을 줄기차게 만난다. ‘군부대 사격장 주변 접근 금지’라는 붉은 글씨가 적힌 경고판이나, 폐허가 된 탱크 자리를 지날 땐 묘한 긴장감이 흐르지만 말이다. 콩밭을 가꾸는 주민은 말이 없고, 산초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지천이며 탁 트인 사방에서 바람이 오간다. 특히 개안마루의 너른 나무 데크에서 주변 숲까지 물안개가 차오르던 새벽의 여운이 아직 가슴속에 남아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국민체조’ 구령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지만.
연천은 서울과 근접한다는 이유로, 혹은 군사경계선에서 발생하는 이슈들로 ‘여행지’에서 줄곧 소외되어 왔다. 어쩌면 연천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탄강 유네스코 지질공원에서 만난 길들이 더욱 보물처럼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연천읍 고문리에서 만난 백의리층도 그러하다. 평범한 마을에서 한탄강변으로 이어지는 샛길로 내려가자 하늘을 향해 파도처럼 솟구친 자갈 퇴적층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것이다. 자갈이라 하기엔 거북이 등껍질처럼 큼지막한 암석판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하다. 낙석주의 표지판 옆에는 자갈층에서 떨어진 암석들이 강변까지 흩어져 있다. 백의리층에서 시작한 길은 아우라지 베개 용암까지 약 2시간 코스로 이어진다. 한탄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공중을 가로지르는 나무 테크를 지나 숲길을 걸어보자. 어느 부분에서든 제몫을 한다.
백의리층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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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ABLE 이토록 아름다운 폭포
아파트 6-7층 높이인 18m 높이의 재인폭포. (c) 신진주
멀리서부터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시원하다. 복잡한 시름을 씻기는 재인폭포의 우렁찬 낙하 소리다.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재인폭포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금세 사로잡는다. 18m 높이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100m 길이의 소(沼) 주변은 사방이 동굴처럼 파인 현무암 주상절리다. 50만 년 전 지장봉에서 한탄강으로 흐르던 물줄기를 따라 용암이 덮고 다시 강물이 이어지며 만든 지질 조각품. 전망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몸을 폭포수로 기울이며 ‘와’ ‘와’ 하고 감탄을 잇는다.
지난여름의 폭우로 엄청난 토사가 폭포수와 함께 아래로 쏟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하얀 실타래가 떨어지는 폭포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옥빛이다. 이곳이 연천 명소로 소문나기 전에는 가파른 철근 구조 사다리를 아찔하게 타고 내려가 야영하고 물놀이 하던 동네 휴양지였다. 폭포수를 코앞에 두고 물놀이하며 여름을 보내던 옛날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으리라. 둘레길 공사가 끝나는 11월에는 구름다리를 가로질러 재인폭포 밑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하니 다시 갈 이유가 분명해졌다.
재인폭포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산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