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집 고치기의 기쁨과 슬픔

이런 곳에선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 손에는 전동 드릴, 한 손에는 페인트 통을 들었지만 끝내 꿈의 공간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대신 얻은 것도 있다. 내 문제를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다는 ‘실체화된’ 만능감이다.

BYBAZAAR2020.06.29
일이란 자고로 벌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며, 인간은 원래 후회의 동물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졌다는 상수동의 오래된 빌라를 계약하면서 이미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건 초록이 우거진 창 밖 풍경, 채광 좋은 베란다, 운치 있는 동네 분위기인데 오래된 나무 섀시, 흐릿한 민트색 방문과 선명한 자주색 몰딩이 함께 딸려왔다. 에세이스트 모나 숄레는 저서 〈지금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나요?〉에서 “우리에겐 집을 소비할 권리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집을 생산할 권리를 거머쥐기로 했다. 그래서 전동 드릴을 집어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마침 수중에 돈보다 시간이 더 많았다.
 
이사 전, 텅 빈 집 안을 둘러보면서 치앙마이의 호시하나 빌리지식 자연주의 콘셉트를 실현하는 데에 있어서 방해요소를 따져봤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누런 장판? 음, 카펫을 깔자. 누런 나무 창틀? 이건 페인트로 해결하자. 누런 걸레받이? 이것도 페인트로. 누런 신발장? 심지어 뜯기지도 않는 일체형이다. 일단 페인트를 칠하고 손잡이만 갈아 끼우자. 누런 문짝? 페인트느님이 해주실 거야…. 셀프 인테리어는 기승전-페인트라던 지인의 충고는 흰소리가 아니었다. 일단 팬톤 사의 수성 페인트 화이트 컬러를 구입했다. 칠하는 것 보다 사전 작업이 더 중요하다. 꼼꼼히 마스킹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여기저기 튄 페인트 자국을 일일이 긁어내는 길고 지루한 고행이 시작된다. 물이 자주 튀는 욕실 문은 특별히 페인트 후에 바니시 작업을 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매일 밤 샤워가 끝난 뒤 방문도 울고 당신도 울게 될 것이다. 페인트가 마른 뒤엔 미리 해체해둔 문고리를 새 걸로 교체했다. 그동안 몇 명의 손이 거쳐갔는지 감도 오지 않는 청동기시대 황동색 유물을 떼어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자연주의 리조트에 한 걸음 다가간 느낌이었다.
 
전원 스위치 교체는 한 단계 더 난이도가 높다. 전원 스위치는 문고리와 함께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둬들일 수 있는 인테리어 요소다. 전선 작업이 동반되기 때문에 반드시 두꺼비집을 내리고 작업해야 한다. 해가 가장 잘 드는 오후 2시쯤 목장갑을 꼈다. 드릴로 나사못을 해체하고 스위치 커버를 벗겨낸다. 일자 드라이버를 지렛대로 툭 밀어내면 쉽게 떨어진다. 플러그에 연결된 전선들을 하나하나 새 플러그로 갈아 끼운다. 새 커버를 덮고 나사로 고정한다. 참 쉽죠?
 
중요한 건 플러그를 갈아 끼우기 전, 어느 전선이 어디에 연결되는지 반드시 순서를 기억해두어야 한다는 것. 침실과 옷방, 거실까지 세 군데 전원 스위치를 순식간에 클리어한 뒤 약간 흥분 상태였던 나는 마지막 고지였던 현관 쪽 전원 스위치를 해체하며 사진을 찍지 않았다. 더듬더듬 1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대충 전선을 연결한 뒤 차단기를 올렸더니 조명이 파바밧 잘 들어왔다. 문제는 전원이 꺼지질 않는다는 거였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식은땀이 났다. “꺼져! 꺼져라! 좀 꺼지라고!” 절망에 빠진 채 스위치를 쾅쾅 두드려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1번에 3번, 3번에 2번, 4번에 2번… 수산시장 경매사처럼 중얼거리며 확률 게임을 벌이다가 (조명 덕분에) 새하얀 밤을 맞았다. 지금부터가 약간 부끄러운 얘기다. 결국 나는 야간 산행용 헤드 랜턴을 두른 채 마지막 배팅에 성공했다. 당신은 아는가? 늦은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쓸쓸히 거실의 전원 스위치를 켠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슬픈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전원 스위치와 메커니즘이 같은 콘센트 설치는 이날의 실패를 교훈 삼아 순식간에 해치웠고, 차르르 나비주름을 위한 3.5m짜리 커튼 레일도 맥가이버처럼 혼자서 거뜬히 달았다. 현관 입구에 타일 대신 우드 바닥재를 깔았는데 사이즈에 맞춰 나무를 썰고 착착 퍼즐을 맞췄다. 그후로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꿈꾸던 자연주의 인테리어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내 공간 안의 벽과 가구와 소품들은 자기들끼리 나름의 협상을 잘 끝낸듯 보인다.
 
집을 고쳐본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걸 가르쳐줬다. 문고리 안에는 의외로 복잡한 기계적 장치가 들어 있다는 것. 콘센트 커버를 들어내면 그 안엔 까끌까끌한 콘크리트 벽이 만져진다는 것. 그 정도로 거친 공간이 실크 벽지를 사이에 두고 우리와 1cm도 안 되는 거리로 맞닿아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집의 구조적 본성에 대해 남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현관 문 밖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내 주변의 문제를 내 손으로 고쳐낼 수 있다는 자신감, 내가 원하는 그림을 내 힘으로 실체화할 수 있다는 만능감을 얻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성취였다.
 
탄 크리에이티브의 디렉터 최고요 역시 사회초년생 시절 첫 번째 자취집이었던 옥탑방에서의 페인트 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셀프 인테리어는 ‘도저히 이런 곳에선 살 수 없어!’의 마음이 시작인 같다. 일단 저질러보자는 무모함 같은 것? 그 집의 꽃무늬 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집주인에게 허락을 구한 뒤 페인트 칠을 했었다. 한여름 토요일이었는데 하루 꼬박 벽을 칠하고 방에 턱 드러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만큼은 내 옥탑방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으로 느껴지더라." 모나 숄레에 따르면 소설가 샹탈 토마는 1960년대 파리에서 처음으로 살았던 다락방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당시 난 ‘내 집’이 지닌 힘에 의해 달라졌음을 느꼈어요. 어떤 면에서는 똑같아 보이지만, 난 좀 더 자유로워지고 더 민첩해지고 경쾌한 생각, 순수한 나 자신,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태도, 타인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의지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내 방은 쪼개지지 않은 시간의 향유 그 자체였어요”.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살고 싶은 집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 떠들 뿐 ‘살고 싶은 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는 사는(buying) 곳이 아닌 사는(living) 곳으로서의 집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힘이 당신을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어떤가? 지금, 당신은 살고 싶은 집에서 살고 있는가? 
 

공간 디렉터 고요가 말하는 셀프 인테리어 3계명

1 완벽을 추구하지 말 것.
셀프 인테리어로 환골탈태하려고 하면 피곤하다. 자신만의 적정선을 정하자.


2 눈속임을 활용할 것.
벽지가 조금 찢어졌다든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림을 걸거나 나무 패널을 놓아 살짝 가리면 된다. 전체를 뒤집어엎지 말자.


3 셀프는 어차피 정석이 아니라는 걸 명심할 것.
전문가와 상의하다 보면 “이 소재는 여기에 쓰면 안 되고, 이렇게 시작하면 순서가 안 맞고…” 등등의 반대 의견이 나오게 마련이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이 비슷한 거다. 셀프 인테리어엔 정답이 없다는 걸 잊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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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Getty Images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