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hita Hurtado

루치타 우르타도가 로스앤젤레스 테메스칼 캐년(Temescal Canyon)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르타도는 어린 시절부터 이사에 익숙했다. 베네수엘라 재봉사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28년 뉴욕으로 이민을 왔다. 어머니는 그가 학교를 다니며 재봉하는 법을 배우길 바랐지만, 그는 대신 몰래 미술 수업을 수강했다.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의 수업을 들은 후 미술에 대한 우르타도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면서 그는 칠레의 저널리스트 다니엘 델 솔라르(Daniel del Solar)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결혼을 할 당시 우르타도는 18살이었고, 결혼생활을 하며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1944년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잘못된 남자와 결혼했어요. 그는 저를 버리고 떠났어요. 전부인에게도 똑같은 행동을 했었죠.”

루치타 우르타도, 〈Untitled(Birthing)〉, 2019.

1947년 맨 레이가 촬영한 우르타도의 모습.
그들의 결혼은 해피 엔딩으로 끝났지만, 이마저 우르타도가 아티스트로 인정받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늘 그림을 그렸다. 그 이후에도 멀리컨의 작업을 돕기 위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 매트는 아티스트예요. 남편도 아티스트였죠. 제 작품은 뛰어나지는 않아요.” 그가 겸손하게 말한다. “누구도 제 작품을 제대로 봐준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계속 그린 이유는 제가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습관이죠.” 2015년 이후, 멀리컨의 부동산 디렉터 라이언 굿(Ryan Good) 덕분에 우르타도의 작품은 큰 빛을 보기 시작했다. “라이언이 멀리컨의 작품을 보다가 쓰여 있는 LH라는 이니셜에 관심을 가졌죠.” 우르타도가 회상한다. “그것이 제 이니셜이라고 말했어요.”

루치타 우르타도, 〈Untitled〉, 1950.
우르타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낙관적이다. 그는 다가오는 자신의 100번째 생일을 생각하면서 ‘모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자신의 앞에 닥친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다. “죽음은 단순하게 말해 새로운 국경이에요. 전 죽음이 끝이라고 믿지 않죠. 단지 그 다음에 뭐가 있을지 기다리면 돼요. 그게 무엇일지 정말 궁금하네요.” 그전까지 그는 매일 아침 스튜디오로 출근을 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을 만들 것이다. “침대에 누울 때면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하지 못한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때까지 일은 저에게 일이 아니에요. 그건 삶이죠. 제가 살아 있는 이유 중 하나예요.”
프란시스 헤지스(Frances Hedges)는 〈하퍼스 바자〉의 영국판 에디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