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바쁘죠? 일주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나요?
일주일에 오리지널 콘텐츠 2개, 한 달에 광고 2개가 고정이고요. 그 외에 인터뷰라든지 우리 채널에 올라가지 않는 콘텐츠도 만들죠. 나머지 날은 광고 기획안이나 오리지널 콘텐츠 회의를 하고요.
지금 구독자가 1백13만 명인데, 30만 명만 되어도 다 직원을 두긴 하죠. 많이 고민했는데 제 몸이 버텨줄 때까진 저 혼자 하는 게 채널의 취지에 맞는 것 같아요. 할머니와 제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운 기록을 남기는 게 이 채널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데, 이걸 다른 분에게 맡기고 제가 다른 일을 하러 다녀버리면 처음과 완전히 달라지는 거잖아요. 촬영을 맡기자니 할머니가 제일 편한 상태에서 누구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게 저고, 편집을 맡기자니 할머니의 의도나 속마음은 제가 제일 잘 알고요.
일단 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우리는 이미 플랫폼을 가지고 있고 <해피투게더>에 나간다고 해서 우리를 모르는 분들이 우리를 더 알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이젠 너무나 많은 분들이 유튜브를 보니까요. 만약 우리가 비즈니스만 하는 관계였다면 애매한 일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게 없죠. 가족이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편집자와 출연자 이전에 할머니와 손녀니까요. 아무리 대단한 광고라도 할머니에게 데미지가 있을 것 같으면 단칼에 거절하죠.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대신 본인은 뒤에서 묵묵히 콘텐츠를 제작하는 역할에만 충실한 것에 만족하나요?
저는 자기객관화가 굉장히 잘 되어 있는 편이거든요. 우리 채널이 잘되는 이유는 제가 뒤에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사실 처음에 채널명을 <막례와 유라>로 할까, <박막례 할머니>로 할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 채널의 목적은 제가 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할머니를 기록하고,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어서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내 이름을 넣을 이유가 있나 싶어서 후다닥 뺐죠. 뭔가 탐욕스러워 보이고.(웃음) 지금도 제가 나오는 부분은 최소화하려고 해요. 제 전공이 방송연예학과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전공 물어보면 처음엔 말 안 하려고 했어요. 할머니 이용해서 연예인 되려고 한다고 생각할까봐요. 지금은 아무도 그런 생각 안 하시더라고요. 편집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웃음)
세계지식포럼에서 막례쓰를 주인공으로 하는 글로벌 콘텐츠를 제안했죠? 진전이 있나요?
지금 저의 가장 큰 목표는 할머니를 월드 그랜마로 만드는 거예요. 할머니한테 더 큰 세상이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익숙해진다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할머니에게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같은 설렘과 긴장감을 계속 안겨주고 싶어요. 할머니는 여기서 더 얻으면 하늘이 분노한다고 맨날 그래요. 여기서 어떻게 더 잘되느냐고. 자기는 욕심 없다고. 저도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건 성공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에요. 나이 들면 일상이 늘 같고 익숙하니까 새로운 경험이 귀하다고 하잖아요.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 중에 하나는 시트콤이에요. 섹슈얼한 요소를 넣어서 70세의 혼자 사는 여자를 재미있게 그리는 거죠. 동네 할아버지와 연애도 하고 둘이 길거리에서 비 맞으면서 싸우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쉽게 볼수 있는 코드인데 한국에선 아직 이런 콘텐츠를 찾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BBC, AP통신 등의 해외 언론도 막례쓰에 대해 크게 주목했잖아요. 해외 언론과 한국 언론의 시선에서 차이가 있던가요?
해외에선 할머니를 스타로 보는 게 아니고 사회현상의 하나로 보는 것 같아요. 이런 고령화시대에 노인들은 계속 소외되고 있죠. 젊은 친구들도 그들을 챙길 여력이 없고요.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바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제외해뒀던, 아예 고려의 대상에 두지 않았던 아시아의 한 할머니가 디지털을 통해서 돈을 벌고 스타가 된 거니까요. 저 할머니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가 어떻게 같이 수익을 공유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포인트가 인상깊었어요. 그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반짝 스타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특이한 사람이 아니고 자기들의 사회 문제를 비춰보는 거울이에요.
회사에 다니다가 할머니 때문에 퇴사하고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할머니가 치매 위험 선고를 받으셨거든요. 제가 원래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에요. 그날 새벽까지 치매 관련 논문을 읽었어요. 안타깝게도 치매엔 이렇다 할 치료약이 없더라고요. 그나마 예방법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내 존재가치를 아는 것 그리고 내일 뭘 해야 할지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야 뇌세포가 안 죽는단 거예요. 우리 할머니는 식당일만 하고 맨날 손님 밥 차려주는 것 말고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할머니랑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휴가를 안 보내주더라고요. 결국 퇴사했죠.
사표를 던지고 시작한 유튜브가 주목받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불안함은 없었나요?
다니던 회사가 좋았다면 그랬겠지만 월급도 적었고(웃음) 무엇보다 그 회사에 계속 다니면 저도 할머니랑 똑같았을 것 같더라고요. 인생의 낙도 없고.
할머니의 삶에 신선함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유튜브지만 본인도 매일 매일 새로운 자극을 느끼겠어요.
많은 분들이 저보고 국민 효녀라고(웃음) ‘어떻게 할머니를 위해서 퇴사를 해?’ 생각하시는데 저는 이 일이 너무 재밌거든요.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작업도 재밌고 사람들이 제 의도대로 느껴주고 피드백을 받을 땐 너무 뿌듯하고요. 할머니를 위해 시작한 콘텐츠이지만 지금은 저도 제 직업 만족도 최상이에요.
크리에이터로서 본인은 또 어떤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자기객관화’를 얘기했고, 제가 느낀 건 ‘끝까지 밀어붙이는 덕후 기질’이고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짜도 할머니가 평범하게 소화하면 재미가 없을 텐데, 우리 할머니는 그걸 너무 잘 살려요. 진짜, 할머니와 저는 환상의 콤비예요. 그게 강점인 것 같아요. 할머니를 너무 잘 안다는 것. 내가 찍고 있는 대상을 너무 잘 이해하고 이 사람에게 뭘 주면 좋을지 안다는 거요.
크리에이터 김유라에게 2019년은 어떤 해였나요?
올해는 내년을 위한 해였달까요? 2020년이야말로 지금껏 준비한 그림이 하나씩 실현되는 해가 될 것 같아요. 1백만 구독자는 우리나라 안에서 보면 대단하지만 전 세계로 나가기엔 힘에 부치는 규모죠. 저 혼자서는 못해도 다른 플래폼의 힘을 빌면 글로벌 콘텐츠도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할머니의 이야기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영화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곧,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