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이란 남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듣다 보니 연극 무대 같은 느낌도 든다 ... | 주지훈

듣다 보니 연극 무대 같은 느낌도 든다.‘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들어왔나?’ 싶었다. 그런데 황정민 형과 조진웅 형, 이성민 형 모두 정통 연극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 판이 살아 꿈틀대니까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그 베테랑들도 한 번에 쭉쭉 가지 못하는 현장이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한 부분도 있다. 윤종빈 감독님도 하루 촬영이 끝나면 완전히 진이 빠져서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눈 하나 잘못 깜빡이면 오케이가 안 나왔는데,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감독님이 “한 번만 다시 가겠습니다.” 했을 때, “왜요?”라는 말이 필요 없는 현장.은 칸 영화제에서 먼저 좋은 평가를 받아서 더욱 궁금한 측면도 있다. 처음 가본 칸의 분위기는 어땠나?우리는 할리우드 스타가 아니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이방인이지 않나. 그런데 영화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넓은 의미의 동료로 환대해주었다. 뜨겁게 타오르기보다는 은은한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분위기였고,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으로 온전하게 영화제를 즐긴 것 같다.그런데 올해 주지훈이 출연하는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될 조선시대 좀비물 이다.을 통해서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혼날 수도 있지만, 사실 의 대본을 읽으면서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보다는 이야기 자체에서 굉장한 재미를 느꼈다. 캐릭터 위주로 끌고가는 작품이 있고 인물과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같이 굴러 가는 작품이 있다면 은 후자였다. 김은희 작가님이 정말 글을 잘 쓰시는 것 같다.미드에는 후자의 스타일이 더 많은데, 한국은 여전히 배우의 힘으로 하드 캐리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배우의 입장에서는 감정의 진폭이 클 때 연기하는 맛이 나기도 하는데 의 경우에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 없이 달렸다. 문자 그대로 달렸다는 거다. 부상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자고 일어나니까 다리에 금이 간 것처럼 피로골절이 왔다. 어찌 됐든 지난 몇 년간 작품 운이 굉장히 좋았건 것 같다. 성격이나 취향 면에서도 잘 맞는 사람들과 작업할 수 있어서 너무나 즐거웠다.사주에 대운이 들어오는 시기가 아닐까?(웃음)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조금 더 큰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배우로서 가진 꿈이 뭔가?하나의 옷을 입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드라마 으로 잘됐을 때는 3년 동안 거의 교복을 입어야 하는 역할밖에 안 들어왔다. 나의 입장에서는 교복이 의 군만두였다. 그런 상황을 탈피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코미디도 하고, 정말 어두운 이야기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지금 와 이 공존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관객이 사랑하는 나의 모습 사이의 갭을 좀 줄이고 싶다. 이건 배우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딜레마일 것이다.퇴폐미와 우아함이 공존하기가 쉽지 않은데 주지훈에게는 그 두 가지 느낌이 다 있다. 카리스마가 있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수다쟁이이고. 배우 정우성이 어떤 인터뷰에서 주지훈을 두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불안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그 형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웃음) 술을 좀 덜 먹이면 덜 위태롭지 않을까? 내가 무서워하는 게 별로 없다. 형들이 불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지점일 것 같다. 술 마시다가 훅 사라져서 걱정을 하곤 하는데 나는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간 거다.(웃음) 원래 술버릇이 집에 가는 거거든. 남자가 가장 우아한 시기는 언제일까?내가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들, 술자리에 가면 세트로 보게 되는 사람들이 정우성, 이정재, 하정우 형이다. 이들이 다 40대다 보니까 40대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에 들어가기 전에 처음으로 우성이 형을 만났을 때는 두 시간 동안 혼자서 소주 4병을 마셨다. 너무 떨려서. 블루레이 DVD를 다 갖고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배우 정우성을 동경했거든. 그런데 나는 그때보다 지금의 형의 모습이 훨씬 멋있는 것 같다. 내 나이를 겪고 훨씬 더 많은 아픔을 견뎠던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조금은 넓어진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속으로 잘난 척할 때도 있는데, 형들에게 ‘쪽팔림’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 되게 좋은 대답을 해준다. 그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배우로서 본인의 황금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나?나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선배들이 배우는 40세부터 스타트라인에 서는 거라고 하더라. 배우는 누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긴 싸움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라. 너무 아등바등 하지 마라. 네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열심히는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30대 초반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야? 당장 지금 죽겠는데.’ 싶었다. 근데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씩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