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사람의 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사람들이 가진 단단한 힘에 대하여. | 내성적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의 성격을 진단할 수 있는 수백 가지의 테스트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하고, 결과에 공감하며 타인과 공유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이것을 통해 확신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심지어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마저 내향적인 성격이라 집에 들어가면 늘 침대 밑으로 몸을 숨기거나 옷장 위에서 멀찍이 나를 관찰하곤 한다. 섭섭하지 않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니까. 수줍은 고백을 하자면 책꽂이엔 이런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동정해도 괜찮다. 비웃어도 좋다. 나는 그 책들 어느 구석에 이런 메모도 남겨 놓았다. “오늘도 나는 치즈 케이크가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종종 3인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조성되면 나는 ‘물체’가 되곤 한다. 말을 잃거나 혀가 굳거나. 철저하게 듣기만 한다. 물론 딴생각을 한다거나 그 자리가 불편하지도 않다. (그게 더 문제인가?) 아무튼 카페에 있는 식물처럼 부동의 자세로 몰입해서 듣는다. ‘리액션’으로 말하고 있지만 누구도 알아채지는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창 즐겁게 대화를 하다 조금 지루하다 싶어지면 꼭 이렇게 말한다. “이분은 참 말이 없으세요.” 물론 이런 스스로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침묵과 정적은 모두가 피해야 할 ‘절대 악’ 아니었던가. 좀더 유연하게, 사려 깊게, 위트 있게 나도 ‘말’하고 싶다. 사랑 고백만큼 잊혀지지 않는 누군가의 충고가 기억난다. “그렇게 안에만 담아놓고 살면 나중에 이상한 곳에서 터질지도 몰라.” 그녀의 불길한 예언처럼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단어는 ‘크레이지’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행동을 종종 일삼고 거기서 희열을 느낀다.(지난달 ‘광인일기’라는 제목의 잡문에다 충분히 풀어냈으니 이하 생략.)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요즘, 늦은 새벽에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올라오는 을 종종 듣는다. 그 옛날 자정 넘어가는 시각에 혼자 울고 웃었던 의 ‘헉소리 상담소’가 돌아온 것만 같아 무척 반갑다. 12주차 고민 상담엔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임경선이 이렇게 말했다. “내성적인 성격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스스로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이 잘 알고 있어야 해요. 남이 주인공인 어떤 무대에서 ‘월 플라워’가 되기보다는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그 정도의 힘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무리 속에서 ‘블러 처리’되곤 했던 나의 모습을 오버랩시켜보며 ‘은근한 자기 표현의 힘’을 근육처럼 길러보고 싶어졌다. 물론 연극 대사를 감정 없이 읽는 것처럼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서지 않는 강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동경이 있다. 책 은 그들에 대해 촘촘하게 설명한다. 한 마디로 설명하면 ‘절제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이랄까? 두서없이 맘에 든 문장을 나열해보면 이렇다. “말과 태도를 절제하면 소진되지 않는다. 에너지를 비축해둘 수 있고, 정말 필요하고 긴급할 때에만 쓰는 것이다.” “내면의 힘은 절제의 뿌리가 된다.” “세련되게 절제하려면 과도하지 않고 건전한 자존감이 필요하다.” “세심하게 낮추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들과 강함 유대감이 생긴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과 말이다.”타고난 ‘콤플렉스’와 ‘스크래치’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서열’과 ‘계급’이란 단어를 일상에서 숨 쉬듯 실감한다. 인사하는 제스처, 사람을 쳐다보는 태도, 질문하는 본래의 의도, 말의 톤과 종결 방식 등 지극히 사소한 순간에도 ‘동등’한 관계와 그럴 수 없는 관계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나는 ‘저자세’로, ‘보살의 마음’으로 ‘날 쏘고 가라’는 노선을 택할 때가 있다. 그런 스스로가 가엾다가도 싫어진다. 그런데 이란 책을 읽으면서 내성적인 성격,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 것, 군중 속에서 감정과 말을 절제하는 것이 가진 미덕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문장에 특히 공감하며. “히든 챔피언은 재촉하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을 의심하고, 약점에 주의를 기울이며,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히든 챔피언은 자연스럽게 절제하는 사람이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은밀하게 ‘위너’가 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