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리바이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익숙함과 신선함 사이, 그 황금 비율을 찾아서. | 남노아,디자이너 토크,리바이벌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했던 지난 주말, 보다 열광적으로 새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목적지는 익선동. 요즘 가장 ‘힙’한 동네로 손꼽힌다더니 역시나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물론 이맘때쯤 봄나들이를 나서면 어느 정도의 붐빔은 감수해야 한다는 인내심과 양보심이 발동한다. 익선동에는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된 한옥들을 소박하게 개조한 레스토랑과 액세서리 가게들이 즐비하다. 다채로운 벽화와 모던한 간판들이 어우러진 좁은 골목을 돌아다녀보니 커플들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또 SNS 사진을 업로드하기에 그만인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두 가지 다 내겐 해당사항이 없었지만 말이다.)그 골목 어디쯤에 친구의 지인이 하는 만두 가게가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해오던 냉동만두 사업을 오프라인 형태로 가져온 것인데, 이날의 행선지 중 하나가 바로 그 만두 가게였다. 몇 번 친구에게 그 만두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지만 냉동실에 넣어만 놓고 맛을 본 적이 없어(요리엔 전혀 소질이 없다) 이를 조리된 형태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살짝 부풀었다.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그곳이 단순한 만두 가게가 아니라 아버지가 해오던 사업을 이어받아 새로운 형태의 모습으로 선보인 곳이라는 것. 그 부분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만두를 다양한 레시피로 소개한다든지, 만두와 궁합이 잘 맞는 다른 메뉴를 함께 판매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만일 그 냉동만두를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한 가게에서 어여쁜 패키지에 포장해 판매하는 데 그쳤다면 집에서 보던 만두를 밖에서 마주한 반가움도 잠시, 또다시 이걸 어떻게 처치해야 하나 고민했을 것이 분명하다. 만두 가게를 나서며 문득 가업을 원래 모습 그대로 이어받지 않고 또 다른 해석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가게가 이 동네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함께.라프 시몬스가 선보인 캘빈 클라인의 봄 광고 캠페인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아메리칸 클래식’이란 캠페인 슬로건은 그대로였으나 언더웨어 또는 데님을 입은 남녀 모델이 앤디 워홀, 스털링 루비, 리처드 프린스 등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광고 컷, 그리고 새로운 로고는 기존의 캘빈 클라인과는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더 이상 캘빈 클라인의 공격적인 섹슈얼리티에 매료되지 않던 요즘이라 그 모던함이 외려 생기롭게 느껴졌고, 다시금 그 데님과 속옷을 취하고픈 마음까지 들었다. ‘미국에 대한 오마주’를 주제로 한 쇼 피스들은 또 어떠했던가. 경찰복, 작업복, 청바지 등 미국을 상징하는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룩들은 캘빈 클라인의 오래된 유산과 라프의 미니멀한 감성을 덧입고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컬렉션으로 등극했다.나는 이것이 요즘 홍수처럼 쏟아지는 클래식의 변주 혹은 복고의 재해석이라는 범주 안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며 과거를 추억하고 복고 패션에 열광한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하게 하는 것보다 새롭게 재해석해 또 다른 감성을 전달하는 것에 감동을 느낀다. 마치 오래전 잊고 지냈던 첫사랑이 매력적으로 변한 모습을 마주하곤 또다시 설렘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변화하는 것에 익숙하며 경험하지 못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 신세대와 달리 기성세대는 이미 경험했던 것들을 다시 추억하고 되새기며, 동시대와 맞물린 해석을 통해 트렌드를 좀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미 지나간 것을 재해석하는 일은 익숙함과 신선함 사이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리바이벌을 내세운 일부 제품들은 오래전 그 모습과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반복을 되풀이하고 있다. 동일성의 반복은 현상 유지나 그 시간의 추억이 아닌 퇴행의 징후일 수 있다. 적어도 그것이 패션 상품일 때는 말이다. 흘러간 유행이 다시금 돌아왔을 때에는 현시점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결국 “얼마나 공감을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추억하면 그만이니, 그것이 다시 돌아올 땐 보다 멋진 형태를 띠고 있어야 새로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봄은 늘 이맘때쯤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해마다 조금은 달라진 풍경과 감성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