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오션의 우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프랭크 오션이 모두의 오랜 기다림을 넘어서는 앨범을 만들어냈다. 그의 우주가 담긴 앨범<Blonde>의 부클릿. | 프랭크오션,뮤직,음악

뛰어난 이야기꾼, 기발한 멜로디 메이커, 텀블러 세대의 트렌드세터, 패션 리더, 연기자 이상의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가진 가수, 퍼렐의 영향을 잔뜩 받은 ‘L.A. 괴짜 아이들 클럽’ 오드 퓨처(Odd Future)의 멤버, 그리고 1990년형 BMW E30을 타고 다니는 자동차광. 62만 장 이상의 판매고와 그래미상을 비롯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2012년의 는 프랭크 오션을 단순한 인기 뮤지션 이상의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는 그가 사무치게 추억하는 그 여름과 그 사랑의 색깔, 주황색 이야기다.2012년 7월 4일, 그는 텀블러에 편지를 게재했다. 4년 전 여름, 자신에게 파도처럼 찾아온 첫사랑, 그 남자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보낸 바쁘고 고된 창작의 시간 동안 함께해준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글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선정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양성애자’라고 불렀다. 아마도 그를 성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 양쪽을 다 기웃거리는 사람으로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는 그가 성적 쾌락의 측면에서 양쪽 성을 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랭크 오션은 그렇게 표면적인 사람이 아닐뿐더러, 목표가 매우 높고 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불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불멸, 즉 영원히 기억될 작품, 영원히 기억될 이야기, 영원히 기억될 삶을 추구하는 그에게는 성적인 욕망과 비교할 수 없는 크고 깊은 영적 갈망이 있지 않을까? 육체와 달리 영혼에는 성별이 없지 않을까? 그의 영적 갈망을 채워줬을 영혼, 그 남자에 대해 프랭크 오션은 이렇게 말했다. “4년 전 누군가를 만났다. 나는 19살이었고 그도 19살이었다. 그해 여름을 함께 보냈다. 하루의 대부분을 그와 그리고 그의 미소와 보냈다. 그의 대화를 들었고 그의 침묵을 들었다.(중략) 그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는 내 인생을 바꿨다. 그때 나는 내가 만났던 여자들, 여자친구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들었던 노래들을 추억했다. 첫 여자친구에게 들려줬던 노래들. 그러나 그때 내가 사랑이라 여겼던 감정은 지금의 내가 쓰는 언어로 쓰인 감정이 아니었다.”흑인 음악계의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정서 속에서 프랭크 오션의 자기고백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를 좋아하는 팬들, 그리고 그를 통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 파트너들은 조마조마해했다. 그러나 이 고백을 통해 죽은 것은 오로지 프랭크 오션의 두려움뿐이었다. 그는 이 고백을 통해 더욱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의 영혼과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창의력의 원천이자 우리가 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한 무기인 ‘용기’와 ‘솔직함’을 통해 그는 한 차원 높은 세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썼다. “자유인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프랭크 오션의 신보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작년에 예정했던 발매일이 다가오자 웹사이트에는 그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흑백 화면이 업데이트됐다. 전 세계의 팬들은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그의 신보를 기다렸으나 해가 지나도 앨범은 공개되지 않았다. 팬들의 기다림은 분노로 바뀌어갔다. 프랭크 오션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앨범이 아니라 앨범 작업을 할 스튜디오일 것이라고 비꼬는 글이 트위터와 레딧을 달궜다. 나 역시 프랭크 오션도 어지간한 완벽주의자거나 결정장애자인가 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리 예고되었던 ‘Boys Don’t Cry’가 아닌 ‘Endless’라는 타이틀의 비주얼 앨범(아트 필름)이 나왔다. 애플뮤직을 열고 를 틀었다. 30분 동안, 별 내용 없는 흑백의 영상을 슬픔과 아름다움에 젖어 보았다. 최신형 기계의 성능을 시험하듯이, 한 차원 높은 사운드와 음악적 기교를 세세하게 숨죽여 들었다. 이토록 누군가의 작품에 몰입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인스타그램은 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나는 감상자의 마음과 경쟁자의 정신이 뒤섞인 채로 그날 하루를 보냈다. ‘You Are Love’의 감촉과 마지막 곡 ‘Higgs’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폭풍 같았다. 하지만 ‘Thinkin Bout You’ 같은 싱글 곡이 없는 아트 필름이라니,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그런데 며칠 뒤, 프랭크 오션의 진짜 정규 앨범 가 애플뮤직에 나왔다.라는 아트 필름의 수록곡들에 이어 17곡의 최신작이 추가로 등장한 것이다. 음악의 질에 대해서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 상업 아티스트이자 대중 가수의 위치에 오른 상태에서 이렇게 예술성의 함량을 높이는 선택을 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다. 패션과 마찬가지로 음악에도 다양한 소재의 소리가 있다. 마치 최고의 패션쇼처럼, 이번 앨범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더불어 첨단 소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코드 진행에서의 훌륭한 점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너무 난해하면 듣기 거북하고 너무 뻔하면 재미가 없는데 이번 앨범의 몇몇 코드 진행에서는 ‘기가 막힌 한 수’가 군데군데 보인다. 그동안 밝혀온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취향만 보아도 그가 ‘최고’를 좋아한다는 것, 기준이 높고 깐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나 이번 앨범에서도 아주 깐깐하게 ‘최고’들과 작업을 했다. 최고를 달성함에 있어서 희극보다 비극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최고로서의 삶 속에는 필연적으로 비극이 깔려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우주에는 한없이 짙은 슬픔과 우울이 깔려 있다.음악뿐만이 아니다. 앨범과 함께 잡지 도 나왔다. 잡지를 파는 팝업스토어가 네 곳의 도시에 문을 열었다. 잡지에는 카니예 웨스트의 시, 그와 작업한 사람들과의 온라인 교류 기록 스크린샷 등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가 영향 받은 음악 리스트와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각종 인터넷 매체에 퍼져나가는 등 정식 발매일 전후로 인터넷이 프랭크 오션의 바다에 빠져 헤엄쳤다. 자신의 예술을 영화, 음악, 사진, 글로 융단폭격 하다니... 예상치 못한 결과물의 양과 질이 놀라울 뿐이었다. 자세히 보면, 앨범 제목은 지만 커버에는 로 철자를 다르게 했고 앨범 커버도 두 가지가 있으며 트랙 리스트도 잡지에 들어 있는 CD 버전과 스트리밍 버전이 다르다. 앨범의 철자, 앨범 커버, 수록곡의 순서 등 여러 가지 의도된 혼란들이 눈앞에 벌어진 셈이다. 그 혼란들을 정리하고 나서 앨범을 들으니 이번엔 그동안 가라앉아 있던 여러 색깔의 감정들이 먼지 떠오르듯 떠오른다. 이 모든 감정의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또 다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프랭크 오션은 자신이 오랫동안 이 세상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Pink+White’에서 언급한 ‘불멸(Immortality)’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 생각으로 꽉 찬 며칠을 헤매게 하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했다. 과연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원형 계단을 만든 이유는 뭘까? 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 걸까, 아니면 자신의 첫사랑에게 기억되고 싶은 걸까? 를 들으며 계속 궁금해할것이다. 그와 함께 2016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TRACK LIST 1. NIKES (Prod by Frank Ocean)킥드럼 끝에 가루 날리는 듯한 소리가 껴 있다.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준다. 필터 걸린 패드와 오르간, 깨끗하고 또렷한 드럼, 목소리의 세 가지 악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피치업된 소리가 나오다가 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매력 포인트다. 악기 구성은 세 가지지만 진행에 있어서는 반복을 최대한 피했다. 2절 나올 때는 샘플 사용, 기타 소리가 추가된다. 그러나 이때 드럼이 빠짐으로써 한 구간에 악기가 4개가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4:13부터 나오는 화음들을 들어보라. 얼마나 난해하고 정교하고 아름답게 구성하는지.2. IVY (Prod by Jamie XX & Rostam)상대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이어서 배치한 것에서 트랙 리스팅 센스를 볼 수 있다. 1~2절과 후렴 부분에서 보컬에 다른 질감을 줬다. 요즘에 유행하는 짧은 딜레이 혹은 짧은 리버브를 통해 스테레오감과 미래적인 느낌, 금속적인 느낌, 얇고 선명한 HD 같은 느낌을 줬다. 2:58 구간의 리버브 효과 등 역시 리버브를 아주 잘 활용했다. 가사는 이별을 추억하고 후회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그러면서 아파하고 분노하는 내용. 노래 자체는 소풍 가듯 나긋나긋하게 부르고는 맨 마지막에 때려 부수는 소리로 자기의 격한 감정을 표현한다. 2:20 에서 2:35까지 얼마나 보컬이 드라이한지 들어볼 것.3. Pink+White (Prod by Pharrell Williams)이 노래에서도 보컬의 질감에 변화가 많지만, 일단 이 얘기는 접어두고 곡의 내용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 노래는 엔이알디(N.E.R.D.)의 ‘Inside The Clouds, Waiting For You’가 연상된다. 퍼렐의 감성이 프랭크 오션에게 전이된 것인지, 자연에 대한, 자연 재해에 대한 감상이 담겼다. 많은 비유를 사용하여 단번에 해석하기 어렵지만 신과 우주 앞에서 작고 유한한 인간의 삶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역시나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0:50 부분의 멜로디 라인은 굉장히 세련되고 창의적이다.4. Be Yourself모든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 당연하지만 다음 곡을 위한 셋업.5. Solo (Written by Todd Rundgren)드럼이 없는 곡.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함께 너무나 아름다운 코드 진행과 멜로디를 들려주는 명곡이다. 이 앨범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고급스러운 멜로디를 들려준다.6. Skyline to (Prod by Tyler The Creator)괴기스러우면서도 꿈같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선수인 타일러 더 크레이터가 프로듀스했다. 드럼이 거의 안 들리도록 절제했고, 여러 가지 색의 사운드로 분위기를 만든 것이 이토록 꿈같은 노래가 나온 비결이다. 1절이 끝나고 나오는 간주는 이 앨범의 백미, 2:43 부분의 화음은 이 앨범에 나오는 최고의 화음 중 하나다.7. Self Control (Feat. Yung Lean, Austin Feinstein)본인의 목소리가 지루해질까 봐 다시 피치업된 목소리를 등장시켰다. 역시 드럼이 없고 기타와 보컬만 나오는 감성적인 노래다. 이 노래의 포인트는 창의적인 더빙이다. 과감한 오버랩(0:46), 갑자기 다시 나오는 피치업된 소리(0:57), 먹먹한 소리(2:31), 금속성 질감(2:55), 드라이한 소리로 돌아갔다가(3:19) 낮은 목소리가 겹쳐지며 소리가 넓어지는 부분(3:20), 다양한 질감의 보컬 사용 등이 포인트다.8. Good Guy짧은 곡인데, 역시 드럼이 없다. 보컬의 질감, 그리고 노이즈가 매력적인 곡.9. Nights모처럼 드럼이 나오는 노래. 드럼과 샘플, 패드 소리, 추가적인 양념에 해당하는 소리들로 이뤄졌다. 꽤 반복적인 곡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1:40) 드럼이 바뀌고 신시사이저 소리가 전면에 등장, 미래적이고 차가운 분위기로 바뀐다. 곡을 마무리하는 듯하다가 다시 뒤통수를 치면서(3:30)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변신한다. 피치업된 소리도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이쯤 되면 곡이 어느새 어두운 앰비언트 트랩으로 바뀌어 있다. 아우트로에 오버랩 된 더빙도 또 한번 등장.10. Solo (Reprise)안드레 3000(Andre 3000)의 재능에 굉장히 창의적인 트랩(드럼이 끝내 터지지 않는)을 섞었다.11. Pretty Sweet비틀스의 ‘A Day In The Life’의 마지막 부분을 연상시키는 아이디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딜레이 걸린 드럼 소리는 아웃캐스트의 음악을 연상시킨다.12. Facebook Story생략.13. Close To You스티비 원더가 보코더로 부른 버전에서 영감 받은 것이 분명한 인터루드. 제임스 블레이크, 카니예 웨스트, 챈스 더 래퍼 등이 시도했던 보코딩 기술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했다.14. White Ferrari보컬의 질감이라든지 오버랩, 덫녹음 등 기법에서 아주 다양한 맛을 낸 곡. 1:20에 나오는 매끄럽지 않은 오버랩 및 더빙. 1:25부터는 보컬이 다른 질감으로 바뀐다. 뒤에 깔리는 보컬들도 모두 질감이 다르고 1:33에 나오는 추임새에도 다른 질감을 넣었다. 1:58부터는 훨씬 넓은 공간감으로 바뀌고 보컬도 금속성 있는 소리를 표현한다. 2:44에 왼쪽 스피커에서 샘플 조각 소리가 나온다. 이후에도 몇 번 더 나온다.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우리 뇌가 노래에 익숙해져서 지루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하려는 것.15. Seigfried이번에도 드럼이 없는 곡. 전체적으로 깔려 있는 노이즈. 고급스러운 스트링 편곡. 그러나 우울함. 랩 파트에서 미묘하게 소리가 일그러지고 후반부에서는 개끗한 소리로 바뀐다. 아우트로에서 스테레오감 있는 소리와 드라이한 소리, 딜레이 걸린 소리 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4:39 부분에서의 미묘한 더빙도 포인트.16. Godspeed드럼 없이 오르간과 보컬만 있다. 2:02에 나오는 음향 효과로 우리가 작은 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후에 뭉뚝한 토이박스 소리 위로 킴부렐(Kim Burrell)이 노래한다. 노래에 음악적 무게를 주기 위함이기도 하고, 자기 목소리에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17. Futura Free 계속 언급해왔던 덫녹음, 소리 편집 등의 기법이 이 곡에서도 두드러진다. 1:48부터는 아예 두 가지 버전의 가사가 겹쳐진다. 뒷배경에 룹된 소리라든지 말하는 소리 같은 것들이 깔려 있는데, 톰 요크의 프로젝트 밴드 아톰스 포 포 피스(Atoms For Peace)의 음악 같은 느낌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