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발견한 작품의 오라
터프하게 놓여 있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공예 작품과 MMCA 청주 개방수장고의 조각을 감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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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청주공예비엔날레 & MMCA 청주
작품 이면의 틈. 청주의 전시장과 수장고에서는 온갖 형태가 틈새에서 나고, 펼쳐진다.
  초대국가전 태국 전시장에 설치된, 작가 피나리 싼피탁(Pinaree SANPITAK)의 <마라이 토왈>. 축하와 애도의 상징인 태국의 전통 꽃 장식 ‘마라이’를 재해석한 패브릭 조각을 선보였다.
  성파 스님의 작품을 전시한 특별전 《성파선예전》에서 선보인 <별들의 향연>. 까만 옻칠 위에 자개 가루를 뿌려 우주를 표현했다.
  2025 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서 대상작으로 선정된 작가 이시평의 <Log 일지(日誌)>의 일부. 레드오크 목재에 녹슨 금속을 굴려 녹이 스며들게 만든 목공예 작품.
  MMCA 청주 개방 수장고에 배치된 조각가 정현의 작업. <무제>, 2022, 나무,철, 250x160cm.
잡지사에서 일하다 보면 공예에 매혹되는 경험이 꽤 자주 생긴다. 작가를 인터뷰하거나 전시를 취재할 때뿐만이 아니다. 브랜드의 오랜 유산이나 철학을 보여주는 전략으로 공예가와의 협업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22년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프리츠한센 150주년 기념 전시에서 나주 샛골에서 무명을 쪽염색하는 정관채 염색장이 프리츠한센의 에그 체어를 조각보처럼 감싼 작품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기억한다. 그후 다양한 작가를 알고 싶어 공예 디자인 페어를 찾기도 했지만, 상품화된 제품이 많았다.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안고, 아무 연고 없는 도시 청주로 향했다.
벌써 14회를 맞이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를 마련했다. 무려 72개국 1천300여 명 작가가 2천5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미지의 작가를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은 채 비엔날레가 열리는 문화제조창으로 향했다. 이름만으로도 낯선 문화제조창은 첫인상 역시 생경했다. 족히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시멘트 굴뚝이 건물 사이 솟아 있다. 이곳은 1946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도시의 경제를 이끈 담배 공장, 연초제조창이었다. 부지의 총면적은 12만㎡에 달하는데, 현재는 MMCA 청주와 넓은 야외 광장을 곁에 두고 공예비엔날레가 열리는 한국공예관 건물이 있는 본관과 특별 전시가 이루어지는 동부 창고 등 여러 개의 건축물로 이루어진다.
‘세상 짓기’라는 다소 방대한 주제로 열린 본전시장에서는 전 세계 공예가들이 문명의 역사, 미학, 기후변화, 종의 멸종, 전쟁의 폭력과 여성의 노동 등 다채로운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 쏟아졌다. ‘보편문명’으로서의 공예, ‘탐미주의자’와 ‘모든 존재’를 위한 공예, ‘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예까지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넓은 전시장을 돌다 보니, 한국 공예가와 다른 나라의 공예가가 협업한 작품들에 유독 눈길이 머물렀다. 사운드와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 윌 볼턴은 제주 전통 옹기 장인 강승철과 협업한 신작 <보로롱>을 선보였는데, 제주 화산토로 제작한 무유약 옹기 안에 8채널 사운드 스피커를 넣어 소리라는 감각을 자연물과 결합시킨 시도를 도모했다. 또한 교토에서
3대째 전통 나무 물통(오케)을 만드는 공방의 후계자인 목공예 작가 나카가와 슈지는 대나무를 엮어 다다미방 같은 <키-오케 다실>을 만들었다. 나아가 그 안에 한국과 일본의 다섯 공예 작가 컬렉티브인 ‘코-멜트’가 12가지 차 도구를 배치해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지는 차 문화의 미학을 선보였다.
특별전의 일환으로 초대 국가전이 열린 태국 부스는 기획자의 역량이 돋보였다. 방콕 짐 톰슨 아트센터의 큐레이터인 그리티야 가위웡은 ‘유연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라는 동시대적인 주제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고유한 문화를 지켜내는 태국 공예가들을 조명했다.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가 리크릿 티라바니자는 <무제(도자기를 빚는 야이방)>라는 3시간 30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는데, 조상 대대로 점토를 빚는 나콘라차시마 시 초호 마을의 옹기장 방 쏜마이 할머니의 일상을 담아냈다. 영상 옆에는 할머니가 만든 토기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도시의 삶보다 한결 느린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창작하는 이들의 삶을 목격하며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 흔히 공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하게 흠 하나 없는 풍경과는 다른, 작품 이면을 볼 수 있는 발견이었다.
1만 보 이상을 채우고 스마트 워치의 알림이 울릴 즈음, 바로 옆에 자리한 MMCA 청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설전이 열리는 1층 개방 수장고에는 말 그대로 한국 근현대 조각의 역사적인 작업들이 툭툭 놓여져 있다. 1965년 작 권진규의 <말>, 1988년 백남준이 시멘트로 만든 <보이스 모자>. 쉬이 보기 어려운 조각들이 철제 선반과 바닥에 놓인 광경은 터프하고 쿨하다는 표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몇몇 작품들은 사진만 붙은 채 ‘보존처리중’이라 쓰여 있고, 일부는 MMCA 과천이나 서울로 대여 중이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번째 분관으로 문을 연 MMCA 청주는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로서의 역할을 위해 설립된 곳. 5개 층에는 전시실은 물론 10개의 수장고와 유화 보존 처리실, 작품 분석실이 자리한다. 의외인 점은 3층에 마련된 단채널 비디오 아카이브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가들의 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작가 남화연의 <작전하는 희곡 2009 서울>, 작가 김희천의 2015년 작인 <바벨>까지 두 편의 영상을 감상하는 재미를 누렸다. 장르의 변주를 주고 싶을 때 이곳을 찾아 환기하길 추천한다.
몇 해 전 로에베 공예상이 제정된 초창기,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조너선 앤더슨을 인터뷰한 적 있다. 어떤 작품을 대상으로 꼽냐는 질문에 그는 “작품에서 나오는 에너지, 한 공간에 단독으로 있더라도 혼자 그 공간을 채우고 위엄과 존재를 가지는 작품인지 고심한다”고 답했다. 모든 표현 요소의 적정한 균형감을 갖춘 작품만이 공간을 마법 같은 에너지로 채울 수 있다며. 당시 그 답을 들을 때만 해도, 그건 모든 좋은 예술 작품에 통하지 않나, 싶었지만 나는 청주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천 점의 작품이 빼곡한 전시장에서도, 철제 수장고에서도 어떤 작품들은 어엿하고 오롯하게 에너지를 띠고 있었다. 쟁쟁한 시장의 논리가 감도는 페어와는 달리 오직 감상만 하라는 식으로. 그날 밤 나는 수많은 작품들의 기운에 압도되어 달뜬 상태로 서울로 돌아왔다. 매끈하고 아름다운 디스플레이를 벗어나, 각양각색의 형태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을 때 가을의 청주를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는 11월 2일까지 열린다.
청주공예비엔날레 & MMCA 청주 충북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3D 프린팅과 AI가 공예에도 적용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손과 자연의 감각이 오롯이 담긴 토기나 섬유 공예 작업에 마음이 동한다.
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청주공예비엔날레, MMCA 청주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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