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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긴 호흡'이 재출간된 이유

에디터가 밑줄 그은 문장은?

프로필 by 손안나 2025.10.27

느낌의 영역


마음산책이 창립 25주년을 맞아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긴 호흡>을 새로 출간했다. 거기에 담긴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생의 증거다. 글쓰기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생애 대부분을 도심에서 보내는 삶. 직업으로서의 글쓰기. 마감 기간에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원고를 쓴다(고 적고 쥐어짠다고 읽는다). 종종 의심스럽다. 이것은 기록을 위한 기록일까. 말하자면 요즘의 내게는 시가 결핍되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메리 올리버적 세계를 주입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고백하자면, 이러한 진단 또한 사후적이다. 세상에서 중요한 발견은 대부분 우연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내게 메리 올리버와의 만남도 그랬으니까. 퓰리처상 수상 시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라는 구절. 너무 익숙하기에 펼쳐볼 생각조차 미처 하지 못했던 그의 산문집에 손이 간 건 순전히 가와우치 린코 때문이다. 벌써 10년도 넘게 그녀의 개인전을 쫓아다니고 도록을 모아온 내가 가와우치 린코의 작업을 표지로 발매한 신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메리 올리버는 자연의 경이를 예찬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순히 광활한 야생의 한가운에서 안분지족을 노래하는 태도는 아니다. 가와우치 린코에게 빛이 자신과 세계를 잇는 매개라면 메리 올리버에겐 자연이 그런 존재다. 작가로서의 자신과 글쓰기 세계의 연결 고리로서.

무엇보다 작가가 스티플톱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밀레이 전기를 낼 것이며 거기엔 타인의 복잡하고, 힘겹고, 빛나는 삶에 대한 조심스럽고 배려 있는 연구를 통해 얻어낸 모든 것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 전기는 확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최대한 진실하고 귀중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을 그리는 것과도 같다. 어떤 별들이 누락되거나, 잘못된 자리에 놓이거나, 잘못 해석되거나,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 누구든 타인의 삶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러기를 희망해야 한다. 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이 어둡다. 나는 가공할 힘을 지닌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이해되거나 오해될 열정적인 말들을 듣는다. 나는 심장이 몸의 문간에서 긴 돌계단을 내려가 홀로 이 세상에서 나가는 걸 느낀다.”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는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 그 자체가 아닌 심장이 몸의 문간에서 긴 돌계단으로 내려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비록 시로 도약하지 못하더라도 내 삶에 잔존하는 애틋한 기록들. 충분히 예찬하고 싶어졌다.

Credit

  • 사진/ 마음산책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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